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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언론보도

[월간조선 topclass]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으세요 -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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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지하철 2호선에서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연히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이라면 객차 안에서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들에 둘러싸일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사락거리며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려온다. 팔짱을 끼고 있던 젊은 남녀도 재잘재잘 말하다 이내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린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책을 읽고 있잖아. 우리도 조용히 해야겠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책 읽는 지하철’ 모습이다.



‘책 읽는 지하철’ 캠페인 벌이는 송화준 나눔나우 대표


올해 1월 시작한 이 캠페인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사람들은 2호선 한 바퀴를 돌면서 책을 읽는다. 송화준 대표의 소셜 커뮤니티 ‘나눔나우’와 ‘북피알 미디어’, 비영리 재능기부 모임 ‘매아리’가 함께한다. 세 곳의 협력으로 캠페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가고 있다. ‘책 읽는 지하철’은 송화준 대표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지하철이 사실 책읽기 참 좋은 공간이거든요. 너무 조용한 곳보다 소음이 약간 있을 때 더 집중하기 좋지 않나요? 지하철은 바퀴가 달리는 규칙적인 소리 때문에 더욱 집중하기 좋습니다. 지하철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에 책읽기만한 것도 없는데, 다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잖아요? 지하철을 책 읽는 공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읽는 지하철 칸에 탑승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쭈뼛주뼛하시더라고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분도 이내 주머니에 집어넣고요.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웃음)”



‘책 읽는 지하철’은 객차 안을 도서관처럼 만들기 때문에 지하철문화를 바로잡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른바 쩍벌남, 개똥녀, 담배녀 등 지하철에서 생기는 문제가 많잖아요? 그게 내 책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니까요. 책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도 소란을 부리지 못해요. 지하철 책읽기가 공공의 문화의식을 높이는 데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송화준씨는 ‘책 읽는 지하철’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부터 ‘책’과 인연이 깊었다. 그가 만든 소셜 커뮤니티 ‘나눔나우’는 SNS를 통해 책 이야기를 나누는 ‘북나눔나우’와 ‘사회적기업가 포럼’ 등 책과 사회적 기업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격주로 독서모임과 사회적 기업가 포럼을 열고, 한 달에 한 번 출판사 스터디 모임 ‘오픈스터디’도 이끈다. 책과 만나기 전까지 그의 과거는 어두웠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는데, 주변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마음의 문을 닫았고, 가족들조차 자신을 버릴까 두려웠다.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낸 후 스무 살 무렵에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 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려 있던 그가 마음을 연 것은 한 독서 모임을 통해서였다. 단순한 독서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점차 마음이 회복되었다.


“저에게 책은 사람과 연결해주는 고리예요. 술자리에서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갈 수는 없잖아요?(웃음)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내게 돼요. 내면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서로 본질적으로 만나는 거지요. 독서 모임에 가면 책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은 제게 소통이었어요. 책을 통해 비로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그는 2010년 말 sns로 책 이야기를 나누는 ‘북나눔나우’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마다 책에 대한 글을 올렸어요. 사람들이 행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일찍 전하고 싶었거든요. 다음날 글을 올릴 생각에 전날 밤 잠이 안 올 정도였지요. ‘북나눔나우’를 통해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책을 매개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북나눔나우는 점차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커뮤니티가 되어갔다. 이에 용기를 얻어 그는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만들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책을 좀 더 일찍 접했다면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과거 자신과 같은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접했던 사회적 기업이 떠올랐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꿈을 나눌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사회적 기업가 포럼’을 구상해냈다. 매번 세 명의 사회적 기업가가 사례를 발표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조를 짜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이 포럼은 학생, 직장인 모두에게 개방된다.



“대구・부산 등 먼 곳에서 찾아오시는 분도 많아요. 심지어 몽골에서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모입니다. 비슷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자리지요. 포럼 중에 한 어린 친구가 ‘제 꿈을 찾은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눔나우를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 사회에 독서문화를 퍼뜨리고 소외계층을 도우며 새로운 사회적 생태계를 만든다는 게 목표였다. ‘책나눔 소셜댓글캠페인’과 ‘책나눔파티’ 개최 등을 통해 4000여 권의 책을 전국 각지의 소외지역에 전달했다.


“제가 보낸 책 한 권을 한 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읽잖아요? 제 노력으로 누군가 책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참 벅차요.”



‘오픈스터디’도 만들었다. 출판사 관계자들끼리 세미나를 하는 모임인데, 독자와 소통하는 법을 나눈다. 마케팅, 브랜딩, 소셜미디어 활용방안 등도 공유한다. 어떻게 하면 독자와 책 사이를 가깝게 만들 수 있을까, 배우는 자리다. 나눔나우가 지향하는 바는 뚜렷하지만 수익 면에서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눔나우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수익을 내려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제까지 해온 활동을 바탕으로 소셜 콘텐츠 기획사처럼 운영하면서 기업에 소비자와 소통하는 모델을 만들어주는 일도 할까 합니다.”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그의 꿈이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 있는 것이 도서관인 것 같아요. 온전히 나의 것이면서 모두의 것이 되지요.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저마다 다른 감동을 받고 가잖아요? 사람들에게 책 읽을 기회를 주면서 ‘나만의 장소’이기도 한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