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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만남기록

헤드플로 전하상 대표 "자기문제만 해결할 수 있어도 사회적기업은 필요없어요."

소셜벤처 헤드플로는 2010년 소셜벤처 대회 서울강원권역 대상팀이다. 유니버셜한 교육환경과 사회적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청각장애인 교육프로그램과 소셜벤처 인큐베이팅을 주된 사업으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편집자주

이런 상상을 해보라.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친다. "저기요, '좋은 회사'을 찾고 있는데요. 어떻게 가는지 아세요?" 당신은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헤드플로 전하상 대표를 만나기 전에 그런 막막함이 있었다. 과연 좋은 기업의 기준은 무엇일까.

좋은 기업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압구정역 3번출구로 나와서 직진 CGV를 지나면 커피빈 옆에 작은 골목길이 있다. 이길을 쭈욱 걸으면 정면에 동신빌딩이 나온다. 여기 3층이 바로 오늘 만날 좋은 기업 '헤드플로'의 사무실이다. 여기서 보너스, 만약 1층에서 "어디 가시는데요?"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3층 헤드플로요' 라고 해보라. 씨익 웃는 경비아저씨의 미소는 덤이다. 

많은 기업이 직원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직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까.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대부분 이와 비슷한 답을 하리라. '당연한거 아니에요? 기업성과를 올리기위해서는 직원과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야 하고 그래야 이윤이 발생하고...'. 그렇다, 기업들은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원만족도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원들의 만족도는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닫고, 구성원들은 월급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히고 있다고 느낀다. 

사회적기업과 NGO는 어떤가. 우리는 같은 질문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고 하면서 정작 내부적으로는 경직되어 있고,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 되기도 하는 것이 여러 사회적기업과 NGO가 처한 현주소가 아닌가.

헤드플로 홈페이지 http://www.headflow.net/


그런데 여기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게 제일 우선이라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해요. 돈이야 못 벌면 알바하죠, 뭐" 라고 무심한 듯 말하는 사람들. 대표부터 직원까지 이렇게 말하니 정말 수상하다. 비즈니스에 대한 마인드가 없는 거겠지. 또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거야. 이런 의구심이 자연스레 밀려온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성과로 한국의 소셜벤처를 대표하고 있는 헤드플로 아닌가. 

헤드플로가 생각하는 좋은 기업의 답은 '직원이 행복한 일터'이다. 헤드플로는 이미 여러 기성 언론을 통해 다뤄져왔다. 그들은 수십개의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헤드플로의 대표인 전씨가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으로 인해 어린시절 겪었던 좌절과 이를 딛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사업모델은 줄곧 모범사례로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헤드플로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 포트폴리오보다, 전씨와 헤드플로가 내세운 '미치도록 행복한 배움과 일터'라는 슬로건에서부터 드러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조직문화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더 묻고 싶었다. 그게 내가 그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전하상 대표는 '헤드플로(Head Flow)'의 사명(社名)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냈다.

"'Head Flow'는 경제학의 'Cash Flow(현금흐름)'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차용해왔어요. 이제 '돈의 흐름'보다 '사람의 흐름'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Flow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흐름'과 '몰입'이요. 저희한테는 이 두 가지가 다 맞아요. 성과도 결국 저희가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으면 자연스레 나오는 거 아닐까요?" 전씨는 회사이름조차 내부구성원을 중심에 두고 지은 것이다. 멋진 이름이라고 하자, 대뜸 끼어든다. "그렇죠? 사실 그냥 지었어요, 멋지잖아요? 하하" 역시 이 사람 괴짜다. 성과를 위한 몰입이 아닌 몰입하면 성과는 자연히 따라온다는 말, 사소한 순서의 차이가 작지 않게 다가왔다.

다채로운 전씨의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짓게 하는 힘이 있었다.


흔히 ‘재미있다’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와 일맥상통한다. 하기 싶지 않을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 사람을 없으니까. 허나 조직이라는 게 어디 각자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을까. 조직이란 일정부분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비록 같은 꿈으로 모였다고 할지라도 조직의 비전과 대표의 비전 그리고 각 구성원 비전이 세부적인 부분과 방향성에서는 일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게 모두 같을 수는 없어요. 모든 구성원이 같은걸 하고 싶다기보다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재미있어하는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해요. 그 과정에서 적절한 피드백이 들어가면서 서로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거죠." 

그는 이어서 말했다. "재미있게 일한다는 것이 항상 웃으면서 일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개발을 많이 하다보니까 죽겠는데 이 과정 자체가 큰 틀에서는 엄청 재미있어요. 졸려 죽겠고 쉬고 싶고 그렇지만 거기서 답을 실제로 찾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잖아요? 재미있게 하고자 하면 재미있는 겁니다. 저는 컴퓨터 전공도 아니고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데 정말 어려워요. 그럴 땐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과정이 쉽다는 게 절대 아니에요. 과정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이 말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 포기하고 나니 세상이 밝아졌다고 했다. 손을 놓고 보니 더 좋은 거 같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강하지 않다고 했다. 이는 어쩌면 그가 어린 시절의 좌절을 겪으며 터득한 교훈일 것이다. 

"그냥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걸 해야겠죠. 이순간에 가장 후회하지 않을 것이요.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돌이켜보면 후회한 적은 거의 없어요."

재미를 중시한다고 할지라도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가 생각하는 성과란 무엇일까. "성과는 기본이죠. 굶어 죽잖아요. 근데 재미도 기본이잖아요. 둘 다 없으면 여기서 괜히 일할 필요가 없는거죠. 성과도 있으면서 동시에 재미까지 추구하는 겁니다. 재미가 없다면? 안하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는 않거든요." 그에게 성과와 재미는 선택의 문제라기 보단 그조차도 적절한 조화를 찾아 극복해야할 '놀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그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걸 증명해나가는 게 그에게 주어진 숙제일테지만, 그는 분명 이조차도 즐길 것이다.

직원이 타이핑해주는 인터뷰 질문을 응시하고 있는 전하상 대표


그는 특별히 팀에 대한 애정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헤드플로가 가진 팀워크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저 자신은 문제가 많아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저희 팀이라면 다르죠. 저희 팀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팀에 대해서 만큼은 겸손하지 않았다. "팀이라는 건 신뢰에요. 쉽게 생각해보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같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싸운다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서로 비전이 같으니 반목할 이유도 없고, 힘든 과정도 다 같이 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죠."

그가 이토록 아끼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모인걸까. 대부분이 창업동지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모두 정식 채용절차를 거쳐 함께 하게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특별한 채용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크게 두가지를 봐요. 첫째는 '헌신도'를 봅니다. 하지만 헌신도는 설득하지 않는게 원칙이에요. 오히려 겁을 줘요. 이건 힘든 일이야. 어려운 점에 대해서 얘길 많이 하고 겉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 어렵다. 이렇게 겁을 많이 줘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분야만 하고 다른 것들은 포기할 만큼 여기에 올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요. 다른 기회는 포기하고 이것만 해야겠다해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낼 수 있거든요.

둘째는 능력입니다. 저희는 학력은 의미가 없다.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잠재력이 중요하다. 실행능력이라는 것은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죠. 큰 회사라면 학력이 높고 경력이 많으면 뭍혀갈수 있지만 저희는 달라요. 저희 같은 경우 IT개발이 50%를 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실행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얼마나 실행력을 갖추고 있느냐를 많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장애인인데 남들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면 보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열정을 가진 건 정말 대단한 거에요. 장애인이란 건 교육기회를 많이 접할 수 없다는 뜻인데 그렇게 기회가 부족한데도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추구하는 목적에 더 맞는거죠."


일전에 헤드플로에 면접을 봤던 구직자에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전하상 대표의 인터뷰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면접보다는 같이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고, 헤드플로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도 면접자의 비전을 찾아주려고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고 했다. 전씨는 무조건 회사의 비전을 강요하고 그걸 전할려고 하기보다는 면접자의 비전에 더 집중하고 헤드플로와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량을 가졌지만 헤드플로와 비전이 불일치 하는 구직자에게는 다른 곳을 소개해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게 너무 신선해서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고 했다. 전씨가 얼마나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진 비전을 중시하는지 느낄수 있었다.

헤드플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헤드플로는 IT쪽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소셜벤처이다. 그가 가진 비전과 IT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저희는 컨설팅에서부터 동기부여, 실기실습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사실 직접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IT기술의 어떤 작은 기능 하나가 많은 혜택을 줄 수도 있죠. 십만명한테도 줄 수 있죠. 그리고 청각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게 또한 소프트웨어죠. 

소프트웨어는 구성요소등에서 경험을 느낄수 있게 만든다는 건데,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도와주는 사람의 마인드와 소프트웨어의 프로세스가 모두 중요하죠."

그가 IT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는 IT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는 환경, 특히 장애가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IT에 주목했다. 이런 전씨의 문제의식은 그가 바라보는 예비사회적기업가들로 이어졌다.  

"많은 분들이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적기업을 하겠다 하면서 물어보시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니즈파악이에요. 그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나는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그것을 먼저 파악한 후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는게 중요해요. 예를들면 적정기술을 한다면서 아프리카나 남미를 한 두번 가보고는 그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안된다는 거죠. 니즈베이스로 내가 만약 저들과 같이 살아간다면 어떨까 고민하는게 중요해요. 

왼쪽부터 헤드플로 전하상 대표, 조유선씨, 최정금 기자, 나눔나우 송화준 대표


또 자기 스스로의 문제를 풀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해요. 우리 스스로의 문제도 못풀면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도 문제거든요. 자기문제만 해결할 수 있어도 사회적기업은 필요없어요. 사회적 문제가 없어져요.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사회적기업가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분명 선량하다.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탈북자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 탈북자와 생활해본 적이 없고, 미혼모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가진 문제의식은 피상적이고, 해결방법은 현실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선의를 그저 격려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의가 선행을 낳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전하상 대표와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됐다. 그에게서는 어떤 그늘이나 좌절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분명 그에게도 그늘과 좌절이 있을 것이다. 그의 힘은 바로 그걸 극복하고 승화시킨 밝음과 열정에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매력적이었고, 그의 웃음은 더 빛났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취재를 다녀온 후 이 인터뷰 기사를 쓸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말보다는 표정과 제스쳐로 더 많은 것을 담아내는 사람이었고, 또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매력을 글로 담아낼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면 도덕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그저그런 뻔한 이야기처럼 독자들에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를 통해 전씨가 가진 비전과 열정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 송화준, 최정금 편집디자인 따뜻한그림책 기사 및 취재문의 social@nanumnow.com

※본 기사는 상반기 중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읽어보신 후 기사 하단에 댓글 또는 이메일로 피드백을 주시면 적극적으로 수정보완하겠습니다. 꿈을 찾아 방황하는 청년들이 읽고 많은 도움이 될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