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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감동시선

류시화 -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신발 뒷굽이 닳아 있는 걸 보면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거리를 걸을 때면 나무의 우듬지를 살피는 걸 보면

그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 가끔 생의 남루를 바라보는 걸 보면

그는 밤을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샤갈의 밤하늘을 염소를 안고 날아다니는 걸 보면

그는 이따금 적막을 들키는 사람이다 눈도 가난하게 내린 겨울 그가 걸어간 긴 발자국을 보면

그는 자주 참회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거절한 모든 것들에 대해 아파하는 걸 보면

그는 나귀를 닮은 사람이다 자신의 고독 정도는 자신이 이겨내는 걸 보면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많은 흉터들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이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면

그는 홀로 돌밭에 씨앗을 뿌린 적이 있는 사람이다 오월의 바람을 편애하고 외로울 때는 사월의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그는 동행을 잃은 사람이다 때로 소금 대신 눈물을 뿌려 뜨거운 국을 먹는 걸 보면

그는 고래도 놀랄 정도로 절망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삶이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걸 보면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의 부재가 봄의 대지에 맥박 치는 걸 보면

그는 타인의 둥지에서 살다 간 사람이다 그의 뒤에 그가 사랑했으나 소유하지 않은 것들만 남은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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