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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끄적이다

[화준, 우문일상]2015년 06월 02일 - 우물을 파다

오늘은 마당에 우물을 팠어요. 너른 마당에서 유일하게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 마른 풀을 태우고 나서 생명이 죽은 곳이었지요. 잡초의 한이 서렸기 때문이고 사실관계를 놓고 보면 잡초의 씨앗도 타버려서 그리된 게지요. 우물파기의 시작은 식구 한빛이가 만든 텃밭 수로였습니다. 우물을 만들어서 수로와 연결하면 어떻겠나 얕은 꾀를 낸 거지요. 수로를 따라 흐른 생명의 물을 먹고 상추도 자라고, 토마토도 자라고, 딸기도 자라고, 고구마도 자랄 겁니다. 생명의 무덤에서 생명의 근원이 된 거지요. 

아직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물이지만, 멀건히 바라보며 거북을 한마리 풀어볼까. 하릴없이 온사방에서 우는 개구리는 찾아줄까. 뻐꾸기는 목이라도 축이고 갈까. 상상해봤습니다. 밤에는 찾아주신 소중한 분들과 초 한대 띄우고 은은한 이야기 나눠볼까 꿈도 꿔봤지요. 생각만해도 참 따뜻해서 서울살이에 언 가슴이 잠시나마 평온해졌습니다. 당신께서 오셔서 비친 달이 참 예쁘다 속삭여주시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거 같습니다. 

-춘천 우문하우스에서 달 밝은 밤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