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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끄적이다

[화준, 우문일상]2015년 06월 07일 - 오디의 추억

'오디'라고 들어보셨나요? 뽕나무에 열리는 열매입니다. 잘 읽은 오디는 세월을 품은 할머니 젖가슴처럼 검붉게 물듭니다. 크기도 촉감도 비슷하지요. 잘 익은 오디를 한 입에 쏙 넣으면 입안가득 달착지근한 향이 퍼집니다. 의학적으로는 항암효과와 노화방지 효과가 있고, 여자들이 관심많은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지요. 근데 이놈에겐 한가지 흠이 있습니다. 만지면 잘 묻어나고, 묻으면 잘 안 씻긴다는 거지요. 특히 오디 물든 옷은 빨아도 잘 안 지워집니다. 

어릴적 자란 시골집 옆산에는 뽕나무 밭이 우거졌었습니다. 저는 컵 가득 따갖고 다니며 계속 오물오물하곤 했는데 그걸 본 동네 아주머니들이 더러워진다고 먹지 말라고도 하시고, 엄마한테 혼날거라고 걱정도 하셨지요. 하지만 정작 저희 어머님은 그런 말도, 내색을 한번도 안하셨습니다. 오히려 마음껏 먹으라고 격려하셨죠. 어린 얘가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요.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하려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한소리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지나고 보니 어머님의 당연한 보살핌이 특별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라면 쥐어박았을텐데 말이죠. 저희 어머님은 항상 그런 분이었어요. 놀이터에서 흙 묻혀왔다고 혼 내는 일도 없었고, 중국집에 가서도 제가 짜장면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면을 더 건네주시고나서야 자신의 젓가락을 드시는 분이었지요. 어렵게 살았지만 4남매 모두 삐뚤어지지 않고 자란 것은 다 이런 어머님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막내 아들이 철없이 자란 것은 어머님 탓이 아닙니다.)

춘천에 오고보니 집 마당 오른쪽 돌담에 커다란 뽕나무가 하나 있더군요. 손이 시커멓게 되도록 마음껏 따 먹었습니다. 20여 년 만에 먹어보는 맛이었습니다. 강원도에 와보니 마을길 어귀어귀에 뽕나무가 참 많습니다. 춘천에서 자란 분들은 저와 비슷한 추억을 가진 분들도 많겠지요. 혹여나 여행길에 저희 집에 들르시면 서울 촌놈&촌X 분들께 저의 추억이 담긴 맛있는 오디 대접하겠습니다. 이제는 강원도 춘천이 제 고향 같습니다. 

-춘천 김유정역 우문하우스에서 화준 쓰다.

(아래사진 속 오디는 이미 제 뱃속에 있으니 너무 유심히 보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