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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언론보도

[중앙일보] 지하철서 가볍게 독서를, 4년째 플래시몹 송화준…매주 12개 독서모임, 책 사랑방 주인 박종원

|‘책 읽는 지하철’ 대표
경춘선 김유정역 문학촌에선 책 읽는 생태계 조성 실험도

지하철 안에서 만난 ‘책 읽는 지하철’의 송화준 대표. 지하철이란 매개를 이용해 ‘즐겁고 가벼운 독서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 보세요. 지하철 안에서는 모두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이죠(웃음). 하루 한 번이나마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에 지하철은 완벽한 공간 아닌가요?”

지난 28일 합정역을 떠난 6호선 지하철 안에서 만난 독서 캠페인 단체 ‘책 읽는 지하철’의 송화준(33) 대표가 말했다. 송 대표는 지하철이란 매개를 이용해 ‘즐겁고 가벼운 독서 문화’를 퍼뜨리는 컬처 디자이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송 대표가 회원들과 함께하는 ‘책 읽는 지하철 플래시몹’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영상 속에서 흰 티를 입고 한 손에 책을 든 20여 명은 아무 지하철이나 골라 탄 후 30분 정도 ‘코 박고’ 책만 읽는다. “지하철에서 20~30분 책을 꺼내 읽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20명 정도 되면 앞에서 떠들던 여고생들이 구석 자리로 옮겨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눕니다. 가방에 읽을거리를 넣어둔 사람들은 꺼내 읽기도 하고요. 작은 움직임이 모여 지하철 을 독서하는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거죠.”

사실 송 대표 본인도 타고난 ‘책벌레’는 아니다. “한국인 평균 독서량이 1년에 한 권 정도 되나요? 제가 딱 그 정도였어요. 단지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 군 제대 후 독서토론모임을 나가면 좀 나아질까 싶었죠. 2005년께 ‘청춘독서모임’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스피치 훈련’을 위해 시작한 독서모임은 책 읽기의 재미를 알게 했다.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발제한 ‘이 주의 도서’가 꽤 어려운 인문학 책일 때도 있었지만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할 거리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니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헤세의 『데미안』처럼 고전 교양도서를 아직 못 읽었다는 것이 처음으로 후회됐다. “왜 그런 책도 읽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어요.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독서가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즐거운지 느낄 기회를 별로 안 주는 것 같더라고요. 펍에서 책 읽기, 지하철에서 반짝 책 읽고 내리기 등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이 즈음이었죠.”

4년째 플래시몹을 해오고 있는 송 대표는 최근엔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경춘선 ITX ‘김유정역’ 일대에 책 읽는 생태계를 조성 중이다. 역이 있는 실레마을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임대해 2층 다락을 책방으로 꾸몄다. 마을을 소개하고 김유정 문학을 알리는 웹사이트도 곧 선보인다. “그간 활동이 지하철 안에서 머물렀다면 이제는 지하철이 멈춰 서는 역으로 한 발짝 나아간 거라고 할 수 있죠. 1년에 100만 명이 김유정역 인근에 놀러 온다는데, 문학촌에 한 번 들르게 할 수 있다면 책 읽는 문화를 디자인한다는 의미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서점카페 ‘북티크’ 대표
금요일엔 밤샘 독서모임도 … 책 통해 문화 교류하는 공간

서울 강남에서 동네 책방 북티크를 운영하는 박종원 대표는 “판매가 아닌 소통이 ‘작은 책방’의 임무”라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박종원(34) 대표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 논현동에 ‘동네 책방’을 열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 밀려 작은 책방들은 대부분 사라져버린 지 오래인 2014년 12월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며 책과 더 가까워지게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대형 서점엔 책을 사러 가고 도서관엔 책을 읽으러 간다면 ‘북티크’는 책을 ‘만나러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박 대표는 과거 7년간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다. “독자층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 책을 팔기에만 바빴어요. 새로운 독자는 생겨나지 않고, 당연히 책도 잘 안 팔리죠. 베스트셀러 중심의 광고들은 독자에게 책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출판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1년간 준비한 사업계획은 2014년 3월 예비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으로 선정됐다. 그는 “한국은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기보다는 꾸준히 늘지 않고 있다”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공부 목적으로 책에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이 독서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책에 다가가는 과정이 습관화돼 있지 않을 뿐이죠.” 그렇게 그는 책을 멀게 느끼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 ‘북티크’를 탄생시켰다.

‘책(Book)’과 ‘부티크(Boutique)’를 합성한 ‘북티크’는 언뜻 평범한 카페처럼 보인다. 가게 한쪽엔 스카프와 가죽공예 액세서리 등 패션 잡화들도 진열돼 있다. 박 대표는 “과거 허름하고 칙칙한 동네 책방의 이미지를 벗어나 남녀노소 모두 모여 책을 통해 문화 교류를 하는 세련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티크에서는 매주 12개의 정규 독서모임이 열린다. 참여자 대부분이 직장인이기 때문에 그중 절반이 주말에 몰려 있다. 월요일 ‘지적감성’ 모임은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책들을 서로 공유하고, 토요일 ‘Books to Movies’ 모임은 영화화된 책의 원서를 함께 읽는 식이다. 금요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진행되는 ‘심야서점’ 시간에는 독자들이 밤새 책을 읽으며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독서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책과 편안한 만남을 통해 책과 거리 먼 비(非)독자를 끌어들이고 ‘독서의 습관화’를 돕는 데 방점이 찍혔다.

박 대표는 특히 ‘독서모임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북티크에서 판매하는 책도 대부분 각 모임의 리더들이 추천한 책들이다. “일반 서점처럼 많은 책을 들여놓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독서모임에서 인증받은 책이나 리더들이 추천하는 책 중심으로 구비합니다.” 손님들은 진열된 책을 살펴보는 순간부터 독서모임과 소통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북 컨시어지(Concierge)’도 도입할 계획이다. 호텔에서 투숙객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는 서비스 같은 ‘북 큐레이터’다. “‘책을 읽자’는 캠페인은 ‘공부해라’라는 잔소리와 같아요. 작은 책방에서만 가능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으로,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독자를 발굴해나갈 겁니다.”

글=김나한·백수진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