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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독서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를 읽으며 쓰는 반성문

 참 오래된 일이지요. 어린시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던 때가 생각납니다.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나고 이제 잊혀질 때쯤 마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이 나온다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또 이렇게 출판되기도 전에 가제본을 받아서  읽으니 그 마음이 자못 특별합니다. 


우리가 경복궁을 바라볼때 느끼는 열등의식에 대하여


  "한국인의 문화의식에는 이중적인 면이 많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민족적·애국적 자부심이 강한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집트, 그리스, 중국의 거대한 문화 유산을 보면 우리 문화는 독창적인 것이 적고 스케일도 작으며 초라하다고 말하곤 한다.

  경복궁에 대해 내가 줄곧 듣는 정말로 기분 나쁘고 화나는 말은 "자금성에 비하면 뒷간밖에 안된다"는 식의 자기비하다. 나는 이런 말을 한국인에게서 들을 뿐 외국인들한테선 들어 본적이 없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역사적 콤플렉스에다 유난히 스케일에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경복궁에는 자금성에서는 볼 수 없는 또다른 미학과 매력과 자랑이 있다.

 사람들은 은연중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축소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것은 1420년이고 경복궁이 완공된 것은 1395년이니, 경복궁이 25년 먼저 지어진 것이다.


 경복궁은 자금성에 비했을 때 물론 스케일이 작다. 실제로 경복궁은 14만평으로 자금성 24만평의 약 60퍼센트 규모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중국유학 경험이 있는 저는 자금성에도 가본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그 어떤 감흥을 떠나서 규모에 한없는 초라함과 중국에 대한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일본 친구가 한국에 놀러오면 경복궁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자금성을 떠올리고 기대하면 실망할꺼다"라며 지레 먼저 걱정하고, 명동으로 친구들을 이끌곤 했지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서양친구는 경복궁에 데려가도, 중국·일본친구는 명동같은 쇼핑타운을 데려가는게 하나의 바람직한 여행 코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천박한 역사인식에서 나온것인지...

 

 이글을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외국 친구들이 놀러오면 꼭 이책을 들고 경복궁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멋드러지게 가이드를 하고 있는 저를 생각만해도 기쁩니다.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걸.



국가의 중대사가 거행되는 공간인 '근정전'의 이름에 관한 일화


근정전 전경 (출처:경복궁 홈페이지)


  정도전은 임금은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중대사를 치는 가장 핵심되는 공간에 '근정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임금께 부지런함에대해서 아래와 같이 아룁니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참으로 놀라운 정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쉬어야 할때 편안히 쉬는것을 부지런함에 포함시킨 것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복궁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엇갈린 시각


 "문화재청장을 지내면서 내가 가장 속상했던 것은 고궁에서 국제대회 환영만찬이 열리는 것을 '특정인들이 사사로이 사용한다'며 이를 허가한 문화재청을 일부 방송사에서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나온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고궁에서의 만찬은 하나의 국제적 의전이다.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의 환영만탄을 고궁에서 베푼다. 그리고 고궁이 없는 나라에서는 박물관이나 예술관 로비에서 연다. 이를 통하여 국제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그 나라 문화 전통을 체득하게 하는 것인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나라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그동안 구제대회라면 으레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돈만 있으면 열 수 있는 특급호텔의 마찬과 고궁과 박물관에서의 환영만찬은 격이 다른 것이다."

 저역시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보고 기사의 논조에 동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보기만 하는 공간에서 환영만찬을 한다고 하니 한편으론 괘씸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또 저러다 문화재가 훼손되면 어쩌나 씩씩거리기도 했었지요. 이글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음에 비슷한 소식을 접했을때 또 그러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니 멋쩍어 졌습니다.

우리는 왜 경복궁을 소중히 하고 복원해야 하는가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 왕궁이 남아 있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이 큰 상실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베를린왕궁 복원사업이 웅변해준다. 왕궁은 그 민족, 그 나라의 역사적·문화적 정통에 대한 확인이자 상징이다. 우리에게 경복궁은 정녕 그런 존재다. 이 점은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보는 시각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자금성, 프랑스 베르싸유 궁전, 오스트리아 빈왕궁, 헝가리의 부다왕궁 앞에서 느낀 감정과 똑같은 맥락에서 외국인들은 경복궁을 보면서 우리 역사의 만만치 않은 저력과 현재적 삶의 역사적 뿌리를 보게 된다.

 상처받은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후손도니 자의 임무이며 그 임무를 다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밝게 드러난다. 경복궁을 더 아름답고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복궁 복원현장 (출처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mogaha&logId=2110252)


  특히 중국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보면, 한류를 얘기하며 한없는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경복궁과 자금성을 얘기하면 한없이 초라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중국의 자금성은 문화대혁명 당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어 마오쩌둥(
毛澤東)이 철거하려했던 부정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때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정치가로 추앙받는 유명한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가 마오쩌둥을 설득해서 자금성을 보존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한편 우리의 경복궁은 지키고자 했던 우리 선조의 뜻과는 별개로 일제에 의해 훼철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때 훼철된 역사로 인해 현재의 경복궁이 더 왜소하게 느껴지는 면도 크지요.

 지금에 와서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했던 중국인들은 오히려 그 부정했던 역사와 문화유산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고, 선조가 애써 지키고자 했던 경복궁 앞에 우리는 경복궁이 열등의식의 발로가 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고 선조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서를 읽으면서 경복궁의 가치를 재발견한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이 외형적인 복원과 더불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