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비 내리는 게 좋았다. 시원하게 쏟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번뇌도 씻겨 내려가는 듯하여 잠시나마 개운해지곤 했다. 근데 춘천집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고 나선 비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 자연의 비는 스며들고 품어진다. 이전에는 내리는 비를 보며 ‘청소’가 떠올랐다면 지금은 ‘생명’이 떠오른다. 내일 아침에 쑤욱하고 성큼 자라 있을 아이(텃밭에 심은)들이 먼저 떠오른다. ‘씻김굿' 같던 비가 '엄마 품' 같은 비가 되었고, ‘개운함'은 ‘따뜻함'으로 치환되었다. 포장도로와 하수구, 대지와 농작물의 차이겠지. 오늘 내린 비가 메르스는 씻어내고, 지친 농작물은 품어주는 비였으면 좋겠다. 말이나마 간절히.
-경복궁역 카페 '나무사이로'에서 찍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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