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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만남기록

희망제작소 이재흥 연구원 "왜 선한 일을 하는 단체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야 하죠?"

지금은 서울시장이 된 희망제작소 前상임이사 박원순의 곁에는 늘 이재흥 연구원(31세)이 있었다. 저 청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바로 그를 만나러 평창동 희망제작소를 찾았다.

광주 태생인 이씨는 대학 재학 시절 '광주자원봉사단'을 통해 시민사회영역에 발을 들여놓았고 참여연대를 거치며 박원순과 인연을 맺었다. 이씨의 화두는 '사회적경제 생태계'였으며, 그 중심에는 '중간지원조직'과 '사회적기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일반적인 젊은이에게서 느끼기 어려운 깊이가 있었다. 그리고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가 갖는 문제의식은 예리하고 아팠다. 

그럼 지금부터 희망제작소의 이재흥 연구원을 만나보자.

-어떻게 이쪽 일에 관심을 갖게 되신건가요?

"누구나 그렇듯이 진로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제2의 사춘기가 보통 대학 때 찾아오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모든 고민의 주어가 '나'더라구요.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뭘해야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이럴까? 주어가 다 '나' 인거에요. 모든 생각의 중심이 항상 '나' 뿐이구나. '우리'라는 개념이 없다. 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구나. 앞으로 '우리'를 위한 일을 해보자. 그러면서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됐어요. 그때 마침 광주에서 공익근무를 할 때였고, 인터넷에 '광주'와 '자원봉사'를 검색해서 만난 곳이 '광주자원봉사단'이었어요.(웃음)

광주자원봉사단은 외형상은 흔히 말하는 자원봉사단체에요. 보육원이라든가 그런 일들을 하죠.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이 있고, 다섯 달 후에 만들어진 단체에요.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바로 그런 역사적 염원을 담고 탄생한 단체였어요.(참고. 광주사람들이 가졌던 살아남은자의 부채의식에 대한 내용은 한홍구 교수가 쓴 현대사 책 '지금 이순간의 역사'에 잘 기술되어 있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그런데 이 단체가 굉장히 어려운거에요. 돈도 없고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다보니 여러모로 불안하죠. 지속적으로 신입회원이 들어와서 활동하려면 홍보나 마케팅도 해야하는데 그런 것도 당연히 없고. 활동하는 2년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참 많이 울었어요. 왜 선한일을 하는 사람들 단체들이 많은데 왜 이 사람들을 돕는 곳은 없을까. 내가 그 일을 해야 겠다. 그런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거 같아요."

-그럼 광주자원봉사단을 거쳐 바로 희망제작소에 몸 담게 되신건가요? 

"그런건 아니에요. 그 이후에도 참여연대와 문화재 보존활동 등을 했어요. 러시아 유학시절에는 고려인 대상으로 한글교육과 전통문화 전수하는 일을 했고요. 그런데 이 단체들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외부 지원이 끊기면서 거리로 나앉기도 하고. 거의 밤새면서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그래도 쉽지않더라고요. 이런 활동을 돕는 이들은 많지않고 여유도 없고.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점점 확고해진거죠.

그런 와중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때마침 희망제작소라는 존재를 알게 된거에요. 그렇다보니 입사 후 처음 맡은 일도 전국 NGO/NPO를 지원하는 활동이었어요. 전국 시민단체의 정보를 취합하고 다각도로 돕는 중간지원조직이죠. 지금도 2층에 가면 있어요.(희망제작소는 5층 건물을 통째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저야 사회적기업 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담론이 이 시대에 녹아드는 과정에서 맡게 된것이죠."
 
이씨의 얘기를 듣고보니 그가 사회적기업에 몸담게 된 이유를 막연하게 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뜻있는 조직들이 무너지는 원인을 외부적으로는 중간지원조직의 부재, 내부적으로 자생력의 부족(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 같은)에서 찾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는 '중간지원조직'과 '사회적기업'이라는 두가지 화두가 한 뿌리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거군요. 근데 희망제작소는 '사회적기업'이 아니라 '소기업'이라고 하잖아요. 인큐베이팅센터도 '소기업발전소'이고, 어떻게 다른거죠?

"어떻게보면 차이가 없어요. 소기업은 크기를 이야기하는 단위잖아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중소기업 가운데서도 더 작은 소기업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겠다. 이런 기업들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거죠. 반면, 사회적기업은 일종의 주제 또는 분야를 말하는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영리활동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화준씨(본인)처럼 사회적인 목적 실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이 많아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사회적목적을 실현하는 작은 단위의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를 보면 일부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하나의 큰 구조를 이루고 있잖아요. 그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이것과는 다른. 더 작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많아져야 되겠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에요. 그리고 이들이 어떤 형태든 간에 블록을 형성했으면 좋겠다. 그게 저희가 말하는 '사회적경제'입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이재흥 연구원

그리고 기업들만이 사회적경제의 구성요소는 아니거든요. 기존에 있는 대기업, 정부기관, 대학, 마을 공동체 등 이런 다양한 객체들이 어우러져 있는 게 중요해요. 단순하게 기업들끼리만 연계한다면 그건 이익집단이죠.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적경제 생태계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사회적경제 블록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사업부문을 보면 이런 각각의 객체들과 연계사업들이 존재해요. 더 나아가 글로벌한 네트워크라던지 교류협력사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결국 '사회적경제 생태계'군요. 마찬가지 의미에서 희망제작소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중시하는건가요?

"화준씨는 한국에 NGO가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2006년도 기준으로 2만6천개에요.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 굉장히 많은거죠. 근데 잘 조명이 되지 않아요. 끽해야 알고 있는게 '참여연대'나 '경실련' 정도? 일본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NPO(참고. 비영리단체를 지칭할 때 한국은 NGO 일본은 NPO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가 2006년 기준으로 3만 6천개 정도에요.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 조직이 300개가 넘었어요. 반면, 한국은 중간지원 조직이 20개도 안되요. 희망제작소처럼 컨텐츠를 제공하고, 아름다운재단처럼 기금으로 돕는 다양한 유형의 중간지원조직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선에서 직접 사회적기업를 지원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현재 사회적기업에 용어에서 부터 많은 혼란들 있어요. 우리는 보통 같은 용어를 쓰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를때가 많죠. 예를 들면, '사랑'이요. 어떤 20대 젊은 남자는 불꽃같고 동물적인 것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할거에요. 또 누군가는 안정감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끼죠. 그런데 같은 연인이라도 나이대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다 달라요.

사회적기업이란 단어도 서로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이 다 달라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부가 사회적기업을 개념화하고 인증제도로 만든데다가 인증받지 못한 기업이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을 쓰면 벌금을 1000만원 내야해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에요. 그런 맥락에서 여러문제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해요. 과연 무엇이 '사회적기업'인가 부터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사회적기업의 핵심은 인증을 받네 안 받네 문제가 아니라 좋은 일을 지속적이고 독립적으로 해 나가는 기반을 갖췄느냐의 문제거든요. 좋은 일만 했더니 지속이 안되는 거에요. 제가 예전에 몸담았던 단체들처럼 뜻은 좋지만 망한다는 거죠. 이게 핵심이이라고 봅니다."

-문제의식이 흥미롭네요. 인증제도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래요?
 
"음, 사회적기업이 발달하는 과정을 한번 생각 해볼게요. 어떤 사람이 저처럼 절감을 해요. '나도 이렇게 눈물 흘려봤어.', '이 문제 아니면 난 죽겠어.', '저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게해주고 싶어(탐스슈즈처럼).'. 또는 '나도 무하마드 유누스처럼 빈민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조직을 형성하게 되죠. 그런데 그 조직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이 사람들도 생계가 있으니까. 외부지원을 받고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알려야 해요. 그러면서 점점 진화 발전을 하는거에요. 기능적인 분할을 하기도 하고, 어떤 파트에서는 집중적으로 외부자원을 끌어오는 역할을 맡기도 하고. 그런데 처음부터 이 단계까지 자발적으로 혼자 해나가는게 어렵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형성되지 않거나 조직이 셋팅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잖아요. 꼭 필요한 활동들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일정정도의 외부지원은 필수적인거에요. 박원순 같은 사람이야 자신이 가진 사회적자원(인적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 뚝딱 만들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안잖아요.

그는 사회적기업 화두로 넘어가자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게 자기 스스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정부의 일을 대신해주는 거거든요. 이렇듯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을 해야하는 거에요.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죠. 이들의 활동이 정부가 하는 일이랑 같다는 거에요. 게다가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와 달리 액션도 활발하고 더 열심히 잘 할수 있고요. 그러니까 돕는 것은 당연해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시각이 있어요. 정부에는 이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다. 또 그러고 싶어하구요. 왜냐하면 이들의 활동이 정부에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게 되면 정치적인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래서 감독하고 휘하에 두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인증제도를 도입하고 마크를 딱 붙이죠.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만 돈을 마구 대주는 거에요. 

근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엄마가 용돈을 계속 주면 돈 벌 생각이 안 들잖아요. 캥거루족들 처럼. 그게 제일 무섭다는 거에요. 2009년에 인증사회적기업에 1차 인건비를 100% 지원했어요. 대표적으로 지원받은 곳이 위캔쿠기 같은 사회적기업들이죠. 그러니까 안 움직이게 되는거에요. 생각을 안해서가 아니라 용돈을 계속 주니까, 배부르고 등 따스우니까 안 움직이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사회적경제를 만드는 운동을 했던 원주의 최혁진 전문가가 말하기를 '죽음의 키스' 라고 그래요. 과도한 지원은 독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거에요. '너희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해? 그러면 완결성 있는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와 봐.' 또는 '너네가 뭔가 아등바등한 결과라도 가져와봐. 그러면 우리가 너희를 믿고 투자를 할게.'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계속할지말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단체들에 돈을 막 다 대줘요. 창업지원, 인건비 100%, 그러니까 망하는거죠. 지원에 중독되서 망하는거에요. 돈이 중요한 것을 모르고 핵심적인 것들을 놓치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인증제도에 문제가 있다는거에요. 인증 그 자체나 지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그런 시각이나 그런 철학이 굉장이 나쁘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실제 사회적기업 전문가들 사이에는 사회적기업의 인증제도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이 많이 존재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허가권한을 가지는 인증제도에서 벗어나, 신고하면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는 등록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갈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의 상황은 자발적시민단체를 가장한 관변단체처럼 사회적기업도 그렇게 '관변기업화'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같이보면 좋은 글-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 '사회적기업 등록제'를 허하라

-희망제작소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어떤 분들은 '그럼 너희는 뭐가 달라?'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꺼 같아요.

"일단 희망제작소는 정부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아요. 저희는 독립된 민간의 싱크탱크죠. 그런데 저희를 제외하고 정부지원을 받지않는 인큐베이팅센터는 단언컨대, 없어요.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기관조차 사회적기업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거죠. 예를 들면, '하자센터'는 서울시 위탁기관이에요. 게다가 노동부에 '청년 등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공모해서 사업을 가져온 거구요. 그러니까 그네들도 일반 사회적기업과 똑같아요. 결국 패턴에 굉장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함께일하는재단'도 마찬가지에요. 100% 노동부에서 지원이 나와요. 그럼 목을 메잖아요. 당연히 여기에 거스르기 어렵죠. 
 

[인용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맨 왼편이 이재흥연구원, 그 옆이 박원순 상임이사

그런데 저희는 민간에서 자발적인 네트워크나 자원들을 끌어와서 하잖아요. '정부지원도 좋지만 여기서 목을 매는 구조가 되면 절대 안된다.' 이게 박혀 있는 것이죠. 물론 저희도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할 때 '정부지원은 일체 받지 말아라.' 이걸 강요하기는 어려워요. 정말 다들 어렵잖아요. 정부지원이 있는데 안 가져가면 바보죠. 그래도 '거기에 함몰되지 말아라.' 그렇게 얘기는 합니다. 그런 가치철학이나 정신 그리고 경영 스킬을 주입하고 저희가 가진 네트워크 등의 자원을 연결시켜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전국 50여개 지자체장들과 목민관 클럽을 형성하고 있어요. 또 호민관 클럽이라고 국회의원 네트워크가 있고, 기업 CEO 100명 이상의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어요. 이외에도 전국의 다양한 시민단체들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저희한테 인큐베이팅받는 사회적기업들은 좋은 사업모델과 역량을 갖고 있다면 바로 연결해서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거죠. 저희가 '희망별동대'라고 청년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 할 때도 이런 부분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합니다." 

희망별동대는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하는 청년사회적기업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다. 희망제작소는 청년들에게 '자금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팀으로는 중견기업의 지분투자를 받은 공정여행사 '공감만세'와 기업체의 후원과 강연회 모금을 통해 사업기반을 마련한 '행복한카페' 등이 있다. 이들은 정부지원이 아닌 희망제작소의 교육과 네트워크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탄생했다는 것이 최근 생겨난 여타 사회적기업들과의 차이라고 볼 수있다.

사실 희망제작소하면 박원순(現 서울시장)을 빼놓을수 없다. 본인 역시 박원순 상임이사 시절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이씨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에 대한 빠질 수 없다. 이씨에게 박원순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희망제작소와 박원순, 이재흥과 박원순 서로를 떼어놓고는 설명이 안될텐데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나요?
 
"박변(그는 예전의 상사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박변'이라고 불렀다.)하고는 참여연대 활동할 때 부터 알고 지냈어요. 뭐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요. 희망제작소를 놓고 보면 희망 별동대를 비롯해 아까 말씀드린 사업들이나 소기업 발전소도 처음 기획은 다 그분이 한거거든요. 사회적 경제라든지 소기업 활성화라든지 청년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같은 것들이 다 박원순 변호사의 핵심화두였어요. 가장 근거리에서 일을 많이 했죠. 옆에서 굉장히 많이 배웠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런 것들을 비롯해서.

요즘 보면, 다들 사회적기업이 대체 뭐냐 떠들잖아요. 사회적기업 용어 아냐. 아는 척도 하고. 해본 사람 나와봐라. 저는 그게 웃겨요. 사회적기업가 학교에 사회적기업가가 없고, 인큐베이팅센터에 사회적기업가가 없어요. 그런데 희망제작소에는 박원순이 있었어요. 그리고 희망제작소 자체도 사실 사회적기업이거든요. 그게 달랐던 거죠."
 

-사회적기업가들에게 한마디

"저희는 싱크탱크지만 머리로만 하지는 않거든요? 이슈페이퍼만 만들어내지는 않아요. 현장을 발로 뛰어요. 2층 NPO센터를 제가 만들었다고 했는데, 거기 있는 2만 6천개 NGO, NPO 제가 다 가봤어요. 적어도 제가 못가면 시민기자단을 운영해서 우리 기자단이라도 대신 보냈어요. 그런 다양한 네트워크나 현장의 목소리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사회적경제에서 핵심은 민간의 자발적 생태계거든요. 그것은 사회적기업들만의 생태계는 아니에요. 사회적기업, 중간조직, 정부, 지자체, 민간 영리기업, 대학 등이 어우러져서 자발적인 네트워크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인데, 그 중심역할을 사회적기업가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네들과 서로 교류하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촉진을 하고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그러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리드하고 확산시키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죠. 제가 실제로 하는 일을 보면, 지난달에는 보스톤 아이비리그에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투자자를 만나고 왔어요. 한국에서는 공무원들을 만나요. 서울시 공무원을 만나고, 또 시민사회 대표 인터뷰하다가 오늘 오후에는 풀무원하고 비즈니스 미팅을 해요. 그리고 저희가 직접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있고, 지난 주말에는 농촌마을 이장님들 만나고 왔어요. 이렇듯 만나는 사람의 폭이 광범위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때 커뮤니케이션이 되야 하잖아요. 어떤 패러다임에 움직이는지 알아야하고, 무슨 이슈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조언을 해 주거나 리드를 해줘야하죠.

그런데 대부분 사회적기업가들은 내 의견만 있거든요. 내 목소리만 있어요. 내 꿈만 있고, 상대방에 대한 공부가 없어요. 그런것들이 되게 핵심적으로 사회적기업가들에게 필요하고 그런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 줘야 사회적경제가 제대로 움직인다. 왜냐하면 사회적경제의 주인공은 사회적기업가기 때문에."

이연구원과 인터뷰 하는 내내 그리고 글로 옮기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거 같다. 나는 과연 이 곳에 몸 담을 자질이 있는걸까. 나는 과연 바르게 가고 있는걸까.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족하면 채우면 되는되지.' 하고 탁탁 털고 일어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각자의 소중한 꿈을 지켜가는 것이다. 우린, 그러니까 청춘이다!


기사 송화준 정리 최정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