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특별한 청춘을, 선한영향력의 힘을 믿는 청춘을 만나고자 했다.-편집자주

처음 Food Movement Korea의 강보라 디렉터를 처음 만난건 청년사회적기업가 독서모임에서 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와 대비되는 수수함, 무엇보다 침착하게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에겐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매력이 있었다. 인터뷰는 그녀의 부친이 운영하는 인사동 골목의 한 식당에서 '맛있고 건강한 음식'과 함께 이루어졌다.

인터뷰 당일 강씨는 평소보다 들뜬 표정으로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보라씨,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봐요?" 라고 묻는 내게 잠시 숨을 고르더니 흥분기가 덜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요. 화준씨, 북한 어린이들에게 양질의 영양을 공급하게 되었어요!"그녀는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 해나갔다.

우연히 푸른나무라는 한국의 NGO단체가 북한 어린이와 1대1 자매결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접하고 메나릴리프(Manna Relief, 저개발국가 아이들에게 영양소를 공급하는 국제구호단체)에 연결해줬는데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푸른나무가 후원하는 북한 고아원의 어린이들이 영양소 결핍을 해소할 수 있게 될꺼에요. 1:1 방식이라 돈이 허투루 세어나가는 일도 없을거에요. 2,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그 혜택을 볼 예정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꿈을 하나하나 성취해나가는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환희가 느껴졌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Food Movement Korea를 시작하게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주실래요?

"처음 시작은 음식문화에 관심있는 뉴욕의 청년들과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거였어요. Food Movement Korea는 제가 2011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작했고요. 뉴욕에서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무브먼트라는 개념보다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좋은 음식 먹고 운동하는 수준으로 그룹을 형성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 사이에서 변화가 생겨났죠. 우리끼리만 나누기엔 아깝다. 다른 사람과도 정보를 나누자 한거죠. 그렇게 우리끼리만 즐기던 모임이 생산적인 활동이 된 거죠.

Food Inc Party in Newyork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지지하는 청년들과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젊은 감각에 맞게 트렌디한 방법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알렸죠. 파티형식으로 만찬을 꾸며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건강한 음식’ 이라는, 다소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더욱 재미있게 받아들여 주신 것 같아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어요. 건강한 음식문화를 어떻게 좀 더 트렌디 하게, 재미있게 접목시킬 것인지를요. 결국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까? 궁리 하는 거죠.(웃음)"

-저개발 국가 아이들을 위한 영양섭취 문제, 특히 건강한 음식문화 같은 것에 젊은이가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게 흔한 일은 아닐텐데요. 혹시 특별한 계기같은게 있나요?


"전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어요. 어릴 때 부터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죠. 뭔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해내는걸 좋아했어요. '이거 왜 이래야해?' 하고 반문하던 애였어요. 별명이 항상 C형이었어요. 실제 혈액형은 오형이지만요.(웃음) 고등학교때까지는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잘 나왔죠. 그런데 문제는 수능을 잘 못친거에요.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학교도 잘 안 갔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안 가고 남자친구 학교가서 수강하고...그렇게 십대 때 찾아오지 않은 사춘기를 대학시절에 겪었죠.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면서 타락의 길로 갔었어요. 안 좋다고 하는거 다 해보구요. 정말 낮에 생활하는 것 보다 밤에 생활하는걸 더 좋아했구요. 대부분의 과목에서 F를 받아 짤릴지경까지. 마음이 잡히지 않으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에서 대학을 다시 가야하나 유학을 가야하나 생각하다 유학으로 마음을 굳혔어요. 반은 도망치는 심정이었죠. 부모님께 저 디자인 쪽으로 관심도 있고 잘하는 편이니까 기회를 주세요. 하고 말씀드렸어요. 미국만 가면 변할거라 생각했어요. 남들이 도피라고 해도 '뉴욕! 꿈의 도시! 난 할수있어!'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마음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도피로 유학을 가는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미국이라는 곳이 획기적으로 내 인생을 바꿔주는건 절대 아니잖아요. 더 힘든 나날의 시작이었죠."

-계속된 방황의 시기군요. 디자인에서 음식으로 관심 영역이 변화한 계기라면... 

"저는 미국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주경야독을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조금씩 적응하고 이젠 자유다 생각했을때 저에게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어요. 포도막염 이라는 병이었어요. 그 전부터 증상이 조금씩은 있었던거 같은데 전 누구나 그 정도는 눈이 아픈 줄 알았어요. 일종의 무감증 이었겠죠. 의사가 영양결핍으로 인해 포도막염이 더 악화됐다고 하더라구요. 빛을 못 보고 집에서도 커튼을 치고 있어야 했어요. 이걸 잘못관리하면 실명까지 갈 수 있다더군요. 원인이 불분명해서 완벽하게 고칠 수도 없다고요.

그전까지는 내 몸이 아픈 건 정신력 문제라 생각했어요. 피곤해서 공부하기 힘들었어요. 소화도 잘 안되고 여러가지 다 안 좋았어요. 정신력도 약해진 것 같고 스트레스도 너무 심하고 여러가지가 겹쳐져서 참 힘든데 어디 기댈데가 없는거에요. 기댈 곳을 찾다보니 술이나 뭐 그런데 손을 댔고 그러다 결국 몸이 상한거죠.

전 제가 살면서 그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집값도 내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림도 준비해야하는데 눈이 아프니 아무것도 못하는 거에요.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른들이 하는 말 있잖아요. '건강이 제일 중요해.' 그런 말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학생이었어요. 편식도 많이 하고 인스턴트도 많이 먹고... 정크푸드, 인스턴트, 가공식품 등,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섭취한다고 어떤 즉각적인 변화있는건 아니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었죠. 

이젠 이걸 어떻게 낫게 할 것인가 여러가지 정보를 찾아보았죠. 그때부터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먹는 것을 바꿔가야겠다고 생각한거죠. 포도막염은 자가면역질환이에요. 정상적인 포도막을 내 면역체들이 공격 하는 거에요. 아군이 아군을 제대로 못 알아보는 격이죠. 이건 속부터 치유가 되야 하는 병이었어요. 면역체계가 정상화 되야 비로소 병이 낫는 거에요. 세포 하나하나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것이 음식이잖아요. 자동차가 기름을 연료로 해서 달릴 수 있듯이 사람들은 먹는 것을 연료로 하는 거거든요.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않으면 세포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기 때문에 이상한 질병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먹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바꿔가기 시작했어요. 채식을 하기 시작했고 밥도 현미밥으로 바꾸고 주 영양소를 고려해서 채소를 색깔 별로 챙겨서 먹기도 했죠. 

그렇게 2009년도 여름 쯤부터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좋은 음식을 먹고 나서부터 몸이 좋아지자 이걸 혼자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을 했죠. 가을정도에 친구들에게 '우리 좋은 거 찾아 먹으러 다니자' 제안했어요. 계처럼요. 그렇게 시작된거죠."

-본인은 직접 경험을 했으니까 그렇다쳐도 친구들은 음식의 중요성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꺼 같은데, 처음부터 다들 적극적으로 동참하던가요?

"그건 아니에요. 사실 먹던 음식을 갑자기 바꾸는 건 어렵죠.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는 일도 어렵구요. 친구들의 머릿 속에 확 박히게 설명을 해줬어요.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리더기질이 발휘 되었죠.(웃음) 예를들어 콜라를 너무 많이 먹는 친구에겐 이렇게 말해 주는거에요.

"콜라 안에 인 이라는게 들어있어. 그거 너 먹으면 니 칼슙을 빼간다? 그게 0.1% 만 빠져도 집중력이 흐려져 그래서 니가 그렇게 매일 피곤하고 집중이 안 되는 거야. 너 계속 많이 마시면 계속 정신이 흐려진다. 같은 시간에 공부하고서도 더 큰 효과를 내고 싶지 않아? 그럼 콜라정도는 끊어."


어떻게 보면 강하고 무서울 수 있지만 정확한 이유를 얘기 해주는 거죠. 친구들도 정당한 이유니까 액션이 바뀌는 거에요. 'Food, Inc(푸드 주식회사)' 같은 영화들도 보여주고 고기유통과정을 신랄하게 얘기해주곤 했어요. 그렇게 친구들에게 설득하다보니 저한테 스킬이 생겼죠.

하지만 먹을 때 마다 얘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 계속 듣길 원하지 않거든요. 저 또한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 하니까 안 좋은 에너지가 계속 생겨 나는거 같았구요. 서로 힘든 거에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게 내가 말을 안 해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거죠.

백마디 말보다 한번 직접 경험하고 얘기하는 게 더 좋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영상을 보여주게 되었어요. 빔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Food, Inc'를 보며 좋은 음식을 같이 먹었어요. 제가 굳이 안 좋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Oh My God!' 하면서 충격을 받고 많은 친구들의 액션이 바뀌었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프로그램이 시스템화, 체계화 되더라구요. 


친구들에게 보여주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세대의 청년들에게도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건강관련 세미나나 행사들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근데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어요. 그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재미가 없어서.(웃음)

바로 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을 건강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사람. 이게 내 할 일이다 라는 것을 찾게 된 거에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트렌디'하게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현실화 시킬 방안을 찾다보니 가슴이 뛰더라구요. '그래, 젊은세대를 위한 건강프로그램 만들자!'라고 결심했죠"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실래요?
 
지금까지는 음식 자체의 영양소 불균형에만 초점을 많이 뒀다면, 앞으로는 조직리빌딩과정을 거쳐서 비영리적인 것과 영리적인 것 두 가지를 함께 이끌어가려고 해요. 에이전트로써 영리적인 부분도 추구할 거에요. 핵심은 건강한 문화라는 이슈아래 좋은 것과 좋은 것을 서로 잇는거죠.

무엇보다 건강은 아시아에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탐스슈즈(소비자가 신발을 1켤레 사면 1켤레를 오지에 기부하는 사회적기업)는 그 슈즈의 판매로 인해 생기는 가치를 봤을 때 의미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그 이전에 디자인도 훌륭하죠? 아무래도 세계시장에서 패션을 선도하는건 서양이에요. 저희가 만약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서양아이들과 같은 아이템을 이용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힘들었을거에요. 한국이 일등 할 수있는 건 뭐야? 하고 생각해야죠. 저희가 생각하기에 그게 바로 '건강'이에요. 
 

각종 가공식품으로 인해 질병이 만연한 현대인들을 치료하기에 서양의학은 한계에 이르렀어요. 의학으로 안 되면 무엇으로 내 몸을 건강하게 하지? 그 물음에 대한 답 중에 하나로 나온 것이 '건강한 푸드' 였어요. 그럼 대체 건강한 푸드는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한국음식'이에요. 영화나 매스컴에도 많이 나와서 서양인들은 동양음식이 건강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많이 알고 있어요. 서양사람들이 패션으로 주름을 잡았다면 한국청년들은 음식과 건강으로 바꿔볼 수 있겠다! 저희는 그걸 캐치했던거죠."

자신의 아픔에서 세상의 아픔을 발견한 사람, 고난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은 사람. 강씨는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고, 자신을 지키는데도 실패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순간, 진정한 자신과 마주했으며 꿈과 건강을 선물 받았다. 

청춘, 당신도 방황하고 있는가. 난관앞에 좌절하고 있는가.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이 진정한 꿈과 마주할 때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꿈이 왜 나를 못알아보느냐고 외치며 곁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난의 벽에 부딛혀 몸부림치고 있는가, 눈을 뜨고 귀를 열자. 평생토록 몸서리 치도록 이루고픈 꿈을 만나자. 지금 이순간.

취재 송화준, 최정금 편집디자인 따뜻한그림책 기사 및 취재문의 social@nanumnow.com

※본 기사는 상반기 중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읽어보신 후 기사 하단에 댓글 또는 이메일로 피드백을 주시면 적극적으로 수정보완하겠습니다. 꿈을 찾아 방황하는 청년들이 읽고 많은 도움이 될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