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Ⅱ/기타

[차수정]'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그 남자 그 여자:이미나]


나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서랍정리를 하다가 보물을 발견한 듯 '어!' 하며 집어든 '그 남자 그 여자' 
나온지 한참 된 걸로 알지만 아직 보지 못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설레설레 콩닥콩닥 찌릿찌릿


<웃지 않은 사람은 우리 둘뿐>
-그 남자-
그녀와 나는 아직 이름도 서로 모르지만
거의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이!
그러니까 서로 얼굴만 잘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죠.
보통 그녀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 밖을 내다보곤 하지만,
오늘은 많이 피곤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어 버립니다.
졸고 있는 그녀의 고갯짓은 거의 예술입니다.
오른쪽으로 끄덕끄덕, 왼쪽으로 끄덕끄덕
그러다 가끔 휙~ 하고 목운동을 한 바퀴 하기도 하고.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저러다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이러언~
차라리 창문에 머리 부딪혀서 잠을 깨는 편이 나을 뻔했나 봅니다.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순간,
그녀는.. 제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저~ 앞으로, 한 바퀴를 굴러가더라구요.
사람들은 다들 웃고 난리가 났죠.
무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나.
웃지 않는 사람은 우리 둘뿐입니다.
아, 마음 아파.
얼마나 창피할까요?

-그 여자-
'아.. 머리 감기 진짜 귀찮다. 그냥 모자 쓰고 나갈까?'
하지만 결국은 머리를 감았어요. 
오늘도 버스에서 내 뒷자리에 않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럼요! 아무리 귀찮아도.. 머리, 감아야죠.
비몽사몽 젖은 머리로 집을 나서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그 사람.
내가 이틀에 한 번 감던 머리를 이젠 아침마다 감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음악도 안 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그 사람 콧노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은 오늘도 그냥 그렇게 말없이 내 뒷자리에 앉아만 있습니다.
그런데 술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감겨지는 내 눈꺼풀.. 졸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지만 결국, 정말 안될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끽~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는데.. 나는 왜 버스 바닥에 앉아 있을까요?
꿈처럼 들려 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차라리 괜찮아요. 하지만,
웃지도 않는 그 사람의 표정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불쌍하다는 표정? 한심하다는 표정?
..난 왜 이럴 때, 기절도 안 하나요?


리뷰어 차수정  천연염색체험샵 태후사랑 (십정1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