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베오울프(문지스펙트럼:외국문학선11)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이동일 (문학과지성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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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은 이세상의 모든 재물이-지금 이세상 도처에서 벽이 바람에 부딪치고, 하얀 서리에 덮인 채 서 있으며, 집들이 폭풍우로 허물어지고 있는 것같이-황폐하게 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를 깨달아야 하느니라. - p. 339~340


 일단 책이 겉모양부터 누렇게 뜬 것이 매우 고전적인 맛이 있다. 오른쪽에 베오울프를 원문 그대로 올린 것도 신기하지만, 역자가 번역을 하면서도 (원문)란에 시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결과를 올려준 게 가장 흥미로웠다. 딱 하나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면 시를 산문처럼 그냥 쭉 열거해서 올렸다는 것 정도? 게르만 신화 특유의 잔인성으로 인해 장면 곳곳에서 피가 많이 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세상사를 대화체로서 제법 현실감있게 썼기 때문에 세련된 면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 구절. 그런데 아무리 수도승이 필사했다고 하지만 걸핏하면 하느님 운운하는 구절은 좀 많이 불편하다. 분명 그 시절 게르만 민족들은 베오울프 이야기를 할 때 자기네 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했을 텐데.

 무엇보다도 이 놈들 영웅이라면서 왜 이렇게 돈을 밝히는지... 황금이 쌓여있는 용의 보물창고를 보고 죽겠다는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간 정신이 아연해졌다. 자신이 죽은 이유가 자신의 백성 중 한 사람이 저 금을 탐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책에서는 베오울프가 죽은 이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음을 '방랑자' 등의 시를 붙임으로서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한창 잘나가는 용사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이 <방랑자>라는 시를 읽으니, 허무함과 씁쓸함이 더 고조되는 것 같다. 방패와 투구의 장식에서 드러나는 애니미즘이라던가, 소소한 데에서 게르만의 전통적인 풍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괴물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교훈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베오울프와 관련된 책으로는 <그란델>이라는 이름의 심리적 소설과 동일한 제목의 소설이 또 한 권 있는데, 원본을 읽었으니 다른 책들도 좀 더 읽기가 쉬워지리라 기대해본다.

참고로, 셰이머스 히미는 그저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던 문서들과 민담들을 엮어서 하나의 시구로 번역을 했을 뿐이다. 그는 이로 인해 노벨문학상을 탔다. 서양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귀중한 시를 되살려낸 일은 어쩌면 용을 잡는 일만큼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