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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ㅡ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 ㅡ몰라요.
왜 땅굴을 팠지? ㅡ몰라요.
언제부터 여기에 숨어 있었나? ㅡ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 ㅡ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 ㅡ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 ㅡ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ㅡ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아직 존재하는가? ㅡ몰라요.
이 아이들이 당신 아이들인가? ㅡ네, 맞아요.
간단하게 시 하나 올리고 시작. 비슬라바 쉼... 발음하기도 힘든 이 분. 아무튼 비슬라바 씨는 폴란드 출신으로 상당히 현실적인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노동문제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면 되는지 언어과 글자를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자신의 일상을 소박하게 일기처럼 적어낸 시들도 꽤 있는데,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거나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전업시인의 삶을 살면서도 꽤나 열심히 일하시는가보다. 딱 내가 어렸을 때 소망했던 삶을 살고 계시는, 그런 사람이다. 1923년도에 태어났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살아계신다고 한다... 수명이 거의 촘스키와 동급이로군. 그녀는 당당하게 여류 시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탔다. 사실 매우 편파적인 노벨상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시가 단순히 현실의 어려움만 담아낸 게 아닌 탓이리라.
위의 '베트남'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녀의 시는 읽을 수록 미묘한 분위기가 풍겨난다. 일단 굉장히 쉬운 듯해 보이는 무언가를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시에서 표현되는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그녀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현실에서 무엇을 담아냈는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대중들이 자신의 생각을 시로서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쓰려는 그녀의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단점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시 자체의 특성인 운율과 여유로움, 예술성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 하지만 리얼리즘 혹은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문학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고퀄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를 읽기 위해 역사를 깊이 알 필요도 없으니, 시사시에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일단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초상화라고 하는데... 그림이 왠지 공포스럽다. 표정이 담담한 삐에로라.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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