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매년 250여 개의 영화제가 개최된다. 웬만한 지역이면 하나 이상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수혜자 입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양질의 각국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혜택들이 낮은 처우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면 어떨까. ‘21세기 자막단’의 김미애 대표도 그중 한 명이었다. 10여 년전 영화제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그녀는 처음에는 영화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낮은 처우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영화제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고민이 묻어 있는 사업이 바로 ‘21세기 자막단’이다.

‘21세기 자막단’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자막제작 및 상영을 위탁하여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존에 보유한 필름의 물리적인 손상없이 스크린에 자막을 덥입히는 기술을 활용하여 청각장애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마침 취재를 위해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는 8명의 직원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1세기 자막단’에 대해 설명해달라.

“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영화들은 필름을 임대하는 방식이라 한글 자막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영화에는 자막을 따로 제작하고 영상과 자막을 한 화면에 겹치게 띄우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21세기자막단은 여기에 사용하는 자막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타임코드(자막게시 시간정보) 작성, 번역 의뢰, 감수 등 자막 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들이 이 안에 포함된다. 그전에는 영화제 내부 사무국에서 직접 하던 업무이다. 이걸 21세기자막단이 대신하는 것이다.”


-일종의 외주업체인가?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실비와 인건비를 제외하고 실질적인 수익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맡아서 진행하는 영화제들은 이미 기존에 책정된 예산 안에서 진행된다. 주최 측 입장에서는 외주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처음이기 때문에 별도로 책정된 예산이 없다. 앞으로 비용 대비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예산 편성이 달라질 거라고 본다. 또 그렇게 만드는 게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키고 싶은 건지 자세히 설명해달라.

“청각장애인은 한국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볼 수는 있겠지만 영상만 보고 와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위해 필름에 자막을 넣는 것도 어렵다. 비용뿐 아니라 일반인의 거부감도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다. 21세기자막단은 필름에 직접 자막을 덧입히지 않고 화면에 자막을 송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제에 쓰이는 영화필름의 손상을 막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이를 활용하면 필름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공연, 세미나, 교육, 개인용 영상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의 문화접근장벽을 낮추는 데 활용하면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런 장벽들을 하나하나 낮추고 싶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20대 때는 영화제 일이 그저 좋아서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제는 시즌이 있어서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다. 계약직이다 보니 안정적인 생활이 안 되고 소득도 일정치 않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후배들이 생기고 이 후배들을 책임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후배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주고 싶었다.”


-SGS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를 통해서 얻은 것을 말해달라.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자막제작 실무는 알고 있지만 기업 운영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PPT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본 적도 없었다. 교육을 통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설득하는 기술을 키웠다. 직접 발표하는 나 자신을 보면 신기하다.

관련 전문가와 밀도 있는 관계형성을 도와주는 것도 좋았다. 워크숍 기간에 ㈔씨즈의 김영식 국장님이 비즈니스모델 멘토셨다. 우리 사업모델에 관심을 많이 주셨고 수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계기로 ㈔씨즈의 광진구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센터에 지원해서 들어왔다. 

가장 좋았던 점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동료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가 중시하는 사회적 파급력은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경영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에서도 여러 가지 조언을 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도 없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SGS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에서 후배들을 위해 아쉬운 점도 얘기해달라.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만큼 이미 일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실무를 보다 보면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을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또 커리큘럼 안에 사회적 미션 부분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기업도 기업이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지 않으면 일반 기업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장기적으로 국내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 콘텐츠를 외국에 소개하려면 한국어에서 외국어로,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한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인력풀이 협소하고 품질이 보장된 곳이 없다. 해외 영화제를 가 보니 자막이 없는 채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도 많더라. 우리의 운영 노하우를 그쪽에 전달해주고 교류가 생기면 한국어와 그쪽 언어 간의 인력풀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 곳곳에 인력풀을 만들고 싶다.”


문화산업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소외계층의 문화접근권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 김미애 대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생각해봤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부디 ‘헤피엔딩’이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나눔나우와 SGS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의 공동취재 형식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양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SGS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는 예비사회적기업가 양성을 위한 삼성, 경기도, 성균관대의 공동 사회공헌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