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금융. 우리에게는 이제 ‘마이크로 크레딧’보다 이 용어가 더 익숙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금융정책으로 발표되면서 이는 민간의 영역이 아닌, 정부정책의 영역으로 복지의 영역이 아닌 금융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소금융은 2년을 넘기면서 이명박 정부의 서민지원정책 중 성과를 남긴 정책으로 자평되고 있다. 그러나 미소금융의 현재는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엄청난 속도의 대출증가, 효과는?
미소금융으로 마이크로 크레딧이 확대, 재편되면서 기금은 대폭 늘어났다. 아직까지 10년 간 2조원 대출을 목표로 연 2000억을 대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 올해 6월 30일까지 대출된 액수는 1251억원. 지난해 전체 대출액 797억원을 한참 넘어선 금액이다. 현 속도대로 하면 연말까지 2500억원 가량 대출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렇게 될 때, 목표치의 25%를 초과하게 된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의 대출증가를 반기는 청와대의 분위기와는 달리, 실제 미소금융 전문가들과 마이크로파이낸스 민간단체들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첫째, 재원의 문제가 심상치 않다.
원래 미소금융은 10년가 2조원 규모로 설계되었다. 종자돈인 휴면예금은 미소금융 기획 당시 1조 2000억원이었지만 소액예금찾아주기 운동 동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찾아가면서 3984억까지 줄어들었다. 은행과 기업의 기부금도 생각처럼 많이 모이지 않아 원래 목표재원의 45%인 1조원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6월 현재 남은 돈은 7019억원. 1년 7개월만에 3000억원이 소진된 것이다. 즉 10년이라는 기간을 버티려면 기업 및 재단의 기부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지역점포와 다른 복지사업자 지원에만 쓰이는 휴면예금은 년 평균 384억씩이 나가고 있어 년간 200~300억씩 다시 쌓인다 해도 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및 은행 역시 연간 기부금은 440억이지만, 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신한금융, 기업은행 등 5개 금융사 지점이 올 상반기 대출금액은 259억원이다. 즉, 연간 500억이 넘게 나갈 것이 예상되면서 KB금융, 하나금융, 신한금융, 포스코는 조기출연을 약속했고 실행하고 있다. 내년에 쓸 돈을 끌어쓰는 것이므로 재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남아있는 재원으로 10년을 대출해줄 수 있는가도 문제지만, 그 재원으로 인건비, 사무실유지비 등 운영자금으로 15%가량이 소모되기 때문에 더욱 빠듯하다. 여기에 미소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 전국지점망을 운영하게 될 시 더욱 많은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10년 2월 발간한 ‘금융소외 해소를 위한 정책서민금융 개선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지점망을 200~300개 수준으로 운영할 경우 인건비 부담은 600억~700억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가지, 재원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것은 연체율이다. 6월 현재 전체 연체율은 2.5%지만 지역 지점은 6.1%로 꽤 높은 수준이다. 그나마도 지금 집계되는 연체율은 지난해 초기 나간 대출이므로 규모도 작고, 관리가 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규모도 가파르게 늘었고 지점에는 전문가 직원없이 자원봉사자들이 상담과 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관리소홀이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연체율 상승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체율은 미소금융 사업의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대출해주었던 자금을 회수하여 또 다른 필요한 곳에 대출을 해주면서 사업을 진행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출 평균 잔액이 2조원이고 연리 4% 대출금리를 가정하고, 대출상환율이 85%라면 연간 이자수입은 680억에 그친다. 앞서 언급한 인건비를 충당하고 다른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쉽지 않은 금액임에 틀림없다.
둘째, 지역밀착도가 떨어진다.
현재 지점수는 121곳으로(수도권 56개소, 지방 65개소) 초기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상황이다. 재단은 올해 안으로 150곳을 만드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또한 지역적 특성을 적용하여 그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맞춤형 상담과 사후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로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해진 기준에 맞느냐, 아니냐만 따지는 도식적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미소금융 최초로 전통시장 이동상담소를 설치한 SK미소금융재단ⓒSK미소금융재단
기업과 은행이 실제로 미소금융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지역에 밀착하여 이용자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금융상품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금융실무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출실적 확대에 있어서도 단순히 대출기준을 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이용자들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다양한 형식의 상품을 개발하여 이용도와 자립기여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미소금융이 부실해지지 않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에 재단 측은 2011년 6월 13일부터 약 4개월간 전국을 2대 권역으로 구분, 140여개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미소금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소금융 관련 분야별 전문가를 육성하고, 미소금융 수혜자들의 자활․자립을 지원하는 교육을 진행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민・관 ‘거버넌스’가 구축되지 못한다면…
그러나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근본적인 미소금융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미소금융이 서민들을 위한 금융정책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CGAP*의 원칙에서 언급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소금융이 마이크로파이낸스 재원 확대에는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가 직접 모든 내용을 통제하려 하면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재단의 자체 평가에서도 자금지원 기반을 단기간 내에 구축하고 다수 자활 성공사례들도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사업이 대출실적, 연체율 관리 등 금융사업 위주로 운용되고 있으며 지점 운영이 지역사회와 제대로 연대하여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언급이 나오고 있다.
▲ 지난해 마이크로 크레디트 설명회가 열린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대강당에서 마이크로 파이낸스 김준환 본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실제 정부는 민간에서 활동한 마이크로 크레딧 단체들의 경험을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제하려는 흐름도 있었다. 2010년 민간 단체들을 지원하는 금액이 80억에서 43억으로 2009년 대비 반으로 축소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0.8월 기준)
민간 마이크로 크레딧 단체들은 고통받는 금융소외계층의 어려움을 정부보다 먼저 인지하고 해결하려 노력해온 만큼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고 교육에서도 강점이 있다. 다양하게 지역과 이용자에 밀착해온 만큼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안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노하우를 흡수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자금조달 및 사업관련 인프라 제공에, 민간은 사업수행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즉, 정부가 대출기준과 상품을 정해주는 식으로 가면 사각지대가 너무 많이 발생하고, 실제 이용자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상품들이 나와 연체율을 높이고 자활 성공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교수는 그 방안으로 기업・금융회사가 운영하는 미소재단 일부를 마이크로 파이낸스 투자펀드로 전환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확대하여 대출, 보험, 예금 등 금융서비스를 확산하며 기부, 정부자금, 회원예금 등을 통하여 기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금융서비스 부분이 보완된 제도다. 즉, 박교수의 안은 마이크로 파이낸스가 지역 미소재단 및 민간 마이크로 크레딧 단체에 자금을 공급하면서 보다 다양한 금융서비스 및 경영, 자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민간단체를 주어진 사업을 실무적으로 대리집행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직적 사고를 버리고,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민금융사업을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파트너로 바라보는 수평적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민관협치(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정부는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 금융질서를 해치게 되고, 서민들의 자활은 효과적으로 이뤄내지 못하게 되며, 민간에서 구축된 노하우는 유실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을 기다린다.
정부주도의 미소금융사업만으로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을 완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서민경제에 대한 종합적 지원프로그램이지 금융과 복지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안 되는 만큼, 민간영역과의 유기적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의 기부문화 형성 및 다양한 기금조성에 획기적인 안들을 내놓는 동시에, 수행기관들에 대해 다각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미소금융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전체 마이크로 크레딧 정책과 사업 발전에 대한 큰 틀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직접적인 운영비 보조금을 주기보다는 계약 내에 사업비를 포괄시키는 총괄계약방식을 추진해 수행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물론, 이를 감시할 감사체계를 튼튼히 구축하는 것도 함께 나서는 과제이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마이크로 크레딧이 안착화되려면,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자본 및 커뮤니티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복이용, 연체율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해외의 많은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지역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가 이 영역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도 있다. 전체 서민금융정책과 마이크로 크레딧 정책이 어떤 관계로 만나야 하는지도 정리되어야 한다.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은 아직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많은 만큼, 제대로 된 정형을 만들어낼 기회는 지금이다.
*CGAP(Consultative Group to Assit the Poor)의 원칙: 정부역할은 직접 자금을 쏟아 붓거나 직접적인 관여보다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정착하기 위하여 제반 법적,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고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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