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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휴먼경제-사회연대은행 공동기획 ③마이크로 크레딧과의 10가지 인연 1 "단순히 돈이 아니에요, 비빌 언덕이죠"

 본 기사는 휴먼경제와의 파트너쉽에 의해 발행되었습니다. 원문보기

누구나 인생에서 피치 못할 좌절을 겪을 수 있다. 또한 태어나보니 가난의 악순환 속에 갇힌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주기 위해 체계를 만들고, 기관을 설립하고, 정책을 수립해온 한국의 '마이크로 크레딧'이 있다. 어느덧 한국의 마이크로 크레딧(마이크로 파이낸스)는 10년의 역사를 맞았다. 지금까지 마이크로 크레딧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와 미래의 과제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국의 대표적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인 사회연대은행과 공동기획으로  "희망으로 가는 사다리, 마이크로 크레딧"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_편집자 주

no.1 장금이네

"가게를 못 비우는 자영업자들에게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주죠"

서울 남가좌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반찬가게 장금이네가 있다. 고미숙 대표는 지난 2009년 사회연대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한번 IMF로 음식점 사업이 크게 실패한 후, 작은 반찬가게를 차려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지만, 입지가 지하인 터라 뾰족한 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 대표는 좋은 입지를 찾아 올라가기 위해 영업에 투입할 자금이 필요했다.

문제는 한번 사업에 실패한 후, 신용등급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 데다, 다른 정책자금들을 통해 창업자금 빌리는 것 역시 담보가 없으니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인이 ‘사회연대은행’을 알려주며 한번 지원해보라 권했다. 사회연대은행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을 만나는 방법은 가장 먼저 서류를 통과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서류가 얼마나 잘 작성되었는지 보는 것은 아니었다. “각계 전문가들이 심사하죠. 얼마나 진솔한 내용을 담아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꾸며낸 말을 적는 경우도 많다는데 잘 골라내는 것 같아요. 실패율이 적은 걸 보면.”

고미숙 장금이네 대표가 반찬을 정리하고 있다. 지하상가지만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HUMAN경제

고 대표는 작은 영세사업장을 그것도 지하에서 운영하다 보니 세상과 통하는 길이 신문과 뉴스뿐이라고 했다. 어떨 때는 화장실을 한 번도 못가는 날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달에 한두 번 꼭꼭 방문하는 사회연대은행의 담당자들은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존재다. “사회연대은행에서 관리하는 다른 가게들과 비교분석 해주기도 하고, 제가 잘하는 걸 다른 곳에 알려주기도 하죠. 다른 가게의 사례를 들으면 희망이 생겨요.” 사회연대은행의 이러한 방문관리 시스템은 시간내서 강의를 들으러 나가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고 대표는 미소금융과 달리 돈만 빌려주지 않고 사후관리까지 꼼꼼히 해주는 마이크로 크레딧의 프로그램들을 장점으로 꼽았다. “실패하지 않게 하려고 물심양면으로 애쓴느 것이 보여요. 빌려준 돈으로 장사를 잘 하나 보려고 나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요. 그러니 돈이 엉뚱한 데로 흘러들어가지 않죠.”

지상으로 가게를 옮길 꿈을 꾸고 있는 고대표는 사회연대은행의 ‘복지금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있다며 서류과정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다음 과제로 꼽은 고대표의 손님맞이가 분주했다. “열무비빔밥에는 볶지 않은 나물 넣어야 해요. 음식도 궁합이라는 게 있으니, 비빔밥에는 무친 나물 넣어야죠.”


no.2 스시생

"살려야 하는 사람들을 진짜로 도와줄 수 있는 금융정책이 필요하죠"

도곡동에 위치한 초밥집 스시생은 아담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정류장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인터넷에 좋은 후기들도 적지 않게 올라와있다. 그러나 스시생이 여기 자리잡을 때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호텔에서 일식조리사로 일했던 김윤상대표는 여러 차례 일식당 사업을 열었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일단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니, 재기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작은 가게를 여는데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신용불량 상태에서도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김 대표가 놀란 것은 대출자를 선정하는 선발과정. “한국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죠. 의지가 없는 사람을 걸러내고 실패확률을 줄이는 방식에 놀랐습니다.”

스시생의 김윤상 대표는 무조건 식당을 차려서 실패하는 경우들을 안타까워하며,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수해줄 아이템과 비법들이 있다고 했다. 마이크로 크레딧의 자금이 충분히 확보되어 이런 비법을 전수해줄 기회가 꼭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HUMAN경제

김 대표는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난 후, 면접을 여러 차례 봤다. 사회연대은행의 실무자들, 간부들 그리고 외부전문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 자금을 기부한 지관, 지원프로그램을 주관한 강남구청 담당자까지 만났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초밥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기도 했다. 실제 기술보유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과정이었다. “누구에게 지원해주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상당히 치밀하죠. 지원 프로그램이 정말 세밀하게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돈만 빌려주는 은행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장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방문합니다.”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실제 사업을 해본 사람들, 창업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이 메뉴에서 집주인과의 관계까지 방문하여 세밀한 도움을 주었다. 김 대표에게 마이크로 크레딧은 특별한 곳이다. “신용등급이나 담보능력 등 자격 심사를 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은 그냥 은행이죠, 서민들이나 노숙자, 신용불량자들, 사업실패자들을 살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아요. 실제로 일어서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기관은 거의 없죠.”

김 대표는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금융정책’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서울시에서 대출프로그램을 개발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NGO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출해주는 것에 급급해 비전문가들이 ‘지원’을 책임질 수 없다면 미소금융은 진짜 의미에서 서민에게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NGO차원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이 넘어야 할 과제도 있죠. 현재 사회연대은행도 대출해줄 수 있는 금액 자체가 많이 부족한 겁니다.” 김 대표는 한달 동안 제한된 금액 안에서 구할 수 있는 가게를 찾느라 강남구를 샅샅이 뒤졌다. 강남구에서는 점포 권리금이 최하 2, 3천만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어있던 자리를 권리금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운을 만날 수는 없다. “담보없이 빌려주는 것이니 금액을 마냥 키울 수는 없고, 정부정책의 방향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에도 한계가 있으니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키워나가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겠죠. 정부가 이런 프로그램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축적된 노하우를 왜 그냥 둡니까.”


no.3 봉평메밀막국수

"수시로 함께 문제점을 의논해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오후 5시, 삼선동 봉평메밀막국수 집에서는 예약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불 위에 감자 삶는 솥을 재빨리 올려놓고 온 김연옥 대표는 마이크로 크레딧과의 특별한 인연을 쭉 풀어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마이크로 크레딧의 역할이나 사회연대은행의 활동을 쉽게 알기 어려운데, 어떻게 사회연대은행의 프로그램에 지원했는지 물었다. “남편이 매일 신문을 보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라고 생각하는 건 오려서 스크랩 해놔요. 사업이 어렵게 되었을 때, 그렇게 모아두었던 정보 중 사회연대은행을 생각해냈죠.” 김연옥 대표는 서류를 준비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적어넣었다. 깐깐하다는 심사과정은 요식업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노하우와 반드시 재기하겠다는 각오로 통과했다.

자기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김연옥 대표.ⓒHUMAN경제

“처음에는 작은 음식점이니 어려움이 있었죠. 모든 일이 각오 없이는 쉽지 않아요.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음식점이라 생각하면 안 되죠. 저도 굴곡이 있었어요. 한번 주저 앉고 나니 빚이 없어도 다시 일어나기 어려웠죠. 그럴 때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대출도 받고 매체에 홍보도 많이 되었어요.”

김 대표는 요리 자체보다는 경영방식, 홍보 등에 대한 강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대출을 거의 갚아가는 요즘도 사회연대은행 측 담당자와 수시로 통화하고 만남을 통해 더 좋은 영업방식을 찾아나가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수시로 물어보고, 수시로 답을 얻고 있어요.“

김 대표의 막국수 집에는 사회연대은행의 대출 프로그램에 새롭게 참여하게 된 창업팀이 교육을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내가 받은 만큼은 도와주고 싶어요. 물론 저도 아직 목표한 것만큼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까 있으니까요.”

사회연대은행의 팀원들에게 김 대표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게에 관한 건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살아남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해요. 영세 자영업은 쉽게 빚도 지게 되고 일수도 쓰게 되니까요. 내가 그렇게 잘 버텨나간 데에는 팀원들과 항상 의논할 수 있었던 덕이 있어요. 너무 고맙고 또 감사한 일이지요.”

김대표는 자신의 후계자로 한 두 명은 꼭 제대로 이 일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꿈이 있다. “돈 모아서 죽을 때 가져갈 건 아니니까요. 돈도 지원해주면서 저처럼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 일어나서 살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고 싶은 게 꿈이에요.”
 

no.4 무이네베트남쌀국수

"지속적 관리는 까다롭고 힘들지만, 결국 내 사업이 점검되는 거죠"

안산에 있는 무이네베트남쌀국수집에 들어서면 주인과 꼭 닮았다는 평을 듣는 국수집의 마스코트가 손님을 반긴다. 무이라는 베트남 이름이보다는 이제는 이서영이라는 한국 이름이 더 익숙한 28세의 당찬 여성이 이 국수집 주인이다. 이서영 대표는 2004년에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왔지만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시골에서는 먹고살 방법이 보이지 않아 5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안산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사회연대은행을 만났다.

이 대표와 사회연대은행의 인연은 좀 각별하다. 안산에 올라와 처음 장사를 하면서 목사님들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지원서류를 냈지만 두 번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사회연대은행 쪽에서는 대출보다는 지원금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조금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조마조마하면서 세 번째 서류를 냈고 좀더 좋은 장소로 가게를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꼼꼼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점을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의 장점으로 꼽은 이서영 대표.ⓒHUMAN경제

대출이 아닌 여성가장의 가게를 지원하는 기금이었기 때문에 편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2천만원이라는 돈 때문에 장사가 갑자기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장사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외국인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적 특성상 불법체류 단속이 심해지면 매출이 뚝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은행에서는 한 기업에서 출연한 지원금을 지급한 후에도 다른 측면에서 지원을 계속했다. 공식적으로는 두 달에 한번이지만, 담당 팀장이 자주 들러 매출과 영업이익을 체크하고 겪고 있는 어려움을 논의하고 있다.

“심사가 까다롭고 힘들고, 계속 체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관리가 되니 꼭 필요한 일이죠. 손님은 하루에 몇 명인지, 객단가는 얼마인지, 재료비는 얼마고 남는 건 얼마나 되는지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으니까요.”

말이 충분히 통하지 않는 어려움도,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지만 여기 저기 축제나 행사에서 찾을만큼 뛰어난 요리솜씨와 일에 대한 굳은 의지가 지금의 가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사업으로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꿈을 뒷받침하고 있다. “목사님들은 저에게 이 장사를 잘 하는데 집중하자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자꾸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출사업도 좋지만, 여성가장을 지원하는 지원프로그램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부담이 덜하니까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이서영 대표는 이주민으로서, 여성가장으로서, 창업자로서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마이크로 크레딧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no.5 김만희분식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은행이 아니라 비빌 언덕이죠"

주점 거리도 아닌데, 밤 10시부터 피크타임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10평 남짓한 분식점 앞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부터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들르는 사람도 다양하다.

“스포츠 신문에서 봤어요. 하하. 사회연대은행에서 그런 사업을 한다는 걸요. 그래서 서류를 받아다가 장사하던 왕십리 경륜장에서 작성해 접수했죠.” 김만희 대표는 분식 노점을 7년 동안 했다. 사업실패로 워크아웃 중이었기 때문에 사는 건 팍팍했다. 노점이 아닌 점포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면 불씨를 피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장사가 끝난 뒤 새벽에 부인과 밤을 꼬박새서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만만치 않았지만, 재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서류작성이라는 관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부가 연신 웃으며 일하는 김만희 분식. 불꺼진 골목에 유독 이 분식점이 환해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HUMAN경제

“사회연대은행에서는 두 번 대출을 받았죠. 1차는 2%대 금리였고, 2차는 6%대 금리였어요. 두 번째 대출이 금리가 좀 높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제 신용등급으로는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금리예요.” 김 대표는 워크아웃 과정에서 갚아야 하는 돈과 사회연대은행을 통한 대출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적금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성실히 상환해나갔다. 그리고 긴 워크아웃의 터널은 작년 9월에 끝이 났다.

김 대표는 미소금융에 비해 사회연대은행과 같은 마이크로 크레딧 NGO단체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정부정책이 미소금융 쪽으로만 쏠리니 대기업들의 지원금도 미소금융재단으로만 가는 것이 안타깝죠. 사회연대은행이 아니었다면 우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점포를 얻을 꿈도 못 꿉니다. 노점을 새벽 두 세시에 끝내고 아내와 동네를 돌면서 어디 얻을 만한 데가 없을까 보던 생각이 납니다.”

신용위원회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도 있는 김대표는 사회연대은행을 대통령이 잘 모르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잘 모를 수도 있겠죠. 청와대 행정관이 부연설명하더라고요. 그래도 우리처럼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인데 관심이 더 많다면 좋겠죠.”

김 대표 역시 스시생의 김윤상 대표처럼 지원금액 규모 확충을 과제로 꼽았다. “작은 가게를 얻고 나면 운영비가 없으니까요. 가게 자체도 금액이 만만치 않고요. 정부나 기업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서 지원규모가 확대될 수 있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