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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왜 공익그룹 보라(구 나눔나우)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너(송화준)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솔직한 얘기를 하자니 한편으론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듯합니다.

<시작> 세상에는 정말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면 '나도 힘든데'라는 생각조차 죄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어린시절의 저는 그런걸 돌아볼 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렸습니다. 내 기억 속의 세상은 4,5살 무렵 부터입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참 행복했습니다. 무엇을 해도 칭찬받고 사람들 웃음의 원천이었죠. 그리고 6살 무렵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났습니다. 저는 친척집을 떠돌고 부모님도 흩어지고 울타리이자 말동무였던 누나형과도 같이 살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딜가나 구박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사업이 부도나고 그런거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저 나를 알던 사람이 나를 아끼고 웃어주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돌변하여 구박하고 때리는 현실 앞에 스스로를 납득시킬 어떤 타당한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건 내게 어떤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들키면 나는 버림받는구나. 꼭꼭 숨기자 그러면 예전처럼 나를 좋아할꺼야. 아니 적어도 버림받거나 맞지는 않을꺼야.' 그렇게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어렸습니다.

<선택> 이후 가족이 다시 모여 살게 되었지만, 저는 가족에게 조차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쪽짜리 인간으로 자랐습니다. 친구들과도 그런 얕은 관계만이 지속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첫사랑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이후 오히려 피해다니기도 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가족들도 나의 본 모습(?)을 알게되면 나를 버릴꺼야. 쟤네들도 깊이 알게되면 나를 싫어할꺼야, 떠날꺼야' 나에게 잘 할수록, 좋아할 수록 더 불안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계속 곪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초중고를 보내고 대학을 입학할 때가 되었습니다. 초중고는 그래도 나았습니다. 그저 주어진대로 살면 되었죠. 그런데 대학을 준비하다보니 달랐습니다. 어느 대학에 갈지 어떤 전공을 배울지 하나하나가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선택을 해도 그다지 행복할꺼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저를 극도로 괴롭혔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할꺼 같지 않은 삶을 지속해야 하는것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삶에 무슨 의미를 찾을수 있을것인가. 그런 삶을 중단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재출발> 스무살, 후유증과 치료를 위해 대학 입학과 동시에 휴학하게 되었고, 가족들의 보살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존재가 가족들의 행복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버릴꺼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이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보살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작은 누이는 대학생활도 중단한체 저를 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년 간의 요양생활을 보냈습니다.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는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도전과 좌절이 반복되는 몇년 간의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24살 무렵 독서모임과 사회적기업을 만났습니다. 독서모임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타자화 해서 보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기 때문에 책을 사람들과 함께 읽는다는 것은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흘렀습니다.

<청춘독서모임(구 북나눔나우)> 단순한 독서가 아닌 함께 읽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달아갔고 그것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치유받고 싶었습니다. 중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고 돌아와서 유학시절 친구들과 Facebook으로 소통하면서 소셜미디어가 그 다양한 방식중에 하나가 될꺼라고 생각했고 그렇게해서 2010년 말 북나눔나우을 시작했습니다. 책을 지금 나누자(소통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책을 나누는 재미에 푹 빠져 들었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내면이 계속해서 조금씩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게 어려운데 북나눔나우에만 오면 내 얘기를 하게되요.' 같은 말을 들을 때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책을 매개체로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회원들이 늘어났고,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커뮤니티가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열고 서로를 열어가면서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이들일까.', '내가 좀 더 책을 일찍 접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안했을텐데,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됐을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회적기업가포럼> 인생의 진정한 첫번째 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책을 오히려 못 보고 있는게 아닐까, 그들에게 책을 전해줘야 겠다. 그들과 함께 읽어야 겠다.' 이런 꿈을 꾸게 된거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니 예전에 자원봉사할 때 동료를 통해 접했던 사회적기업이 떠올랐습니다. 당시는 사회적기업이 대중화되기도 전이라 정보도 많지 않았고 내 힘으로 당장 실현할 수도 없는 일이라 1년 정도 공부하다가 유학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었습니다. 그런데 북나눔나우를 통해 꿈을 키우는 시점에 다시 사회적기업이 떠오른거죠. 마침 정부에서 사회적기업의 육성법이 시행되면서 사회적 관심도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많이 등장할 토양이 주어졌다고 느꼈고, 도전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낮은 이해와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놈이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봤습니다. 사회적기업의 본질은 정부에서 말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육성법의 지원제도가 아닌 뜻을 가친 사람들의 사회적 연대와 협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호흡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배우고자 만든 곳이 사회적기업가포럼이었습니다. 

<고백> 공익그룹 보라의 활동들이 '바른 독서문화와 소외계층 돕기', '사회적 생태계 조성' 같은 거창한 대의를 내걸고 이런 저런 프로젝트들을 3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지만, 사실 이 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들입니다. 내가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고, 나와 같이 힘을 합쳐갈 이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책이고, 왜 사회혁신이냐고, 남들 보기에는 궁금하기도 하고 두 개의 어떤 공통점이 보이는 것도 아니기에 의아하기도 할 겁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의 질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럴때마다 답이 궁색하기 이를데가 없었습니다. '그냥 좋아서요.' 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고 또 앞으로 더 행복할 거 같은 희망이 느껴집니다. 나로 하여금 계속 살아가고 싶게 합니다. 

공익그룹 보라가 추구하는 가치는 소셜미디어와 협력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멋있게 바꾸는 것입니다. 책을 통한 소통의 공간을 확대하고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면 당장 해야 한다. 이게 제 믿음입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세상의 필요로 하는 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조금은 더 행복해질꺼라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공익그룹 보라를 통해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공익그룹 보라 송화준 대표기획자 씀(contact@purpl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