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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Cover Story] 책 읽는 풍경 사라진 지하철

스마트폰에 점령 당한 열차, 책과 담 쌓은 현대인의 초상화


빼앗긴 사색의 시간, 짧고 단순한 재미만 좇는 세태


깊이 생각하는 능력 점점 잃어… 일상 속 문제의식마저 마비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책읽는지하철' 독서모임 회원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들은 지하철 독서가 몰입에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책읽는지하철 제공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한 승객이 차량에 오르려다 흠칫 두리번거린다. 자리를 잡고 있던 승객들이 차량 안에서 죄다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일반적인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깜짝 놀라는 게 당연했다. 한 독서단체가 2013년부터 서울지하철에서 벌인 플래시몹(일정한 장소, 시간에 사람들이 행하는 집단 퍼포먼스)이다. 20~30대 청년들이 주축인 ‘책읽는지하철’은 한 달에 한 번 서울지하철과 부산지하철, 경춘선 등에서 회원들이 책 읽는 플래시몹을 벌여왔다. 책읽는지하철 인터넷 카페 가입자 1,100여명 가운데 적게는 50명, 많게는 120명까지 월례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인 대학생 이하나(22)씨는 “분위기에 맞춰 책을 꺼내는 승객들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며 “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책 읽는 장소로 잡은 것은 스마트폰한테 지하철 독서 문화를 빼앗긴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책읽는지하철 대표 송화준(32)씨는 “지하철의 미세한 움직임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책 읽는 데 집중력을 높인다”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측면이나 독서공간으로, 지하철만한 곳이 없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독서장소로 집(54.5%), 직장(17.8%), 장소불문(11.1%), 출퇴근이나 이동 시(10.8%)로 돼 있지만 지하철만 놓고 본다면 100명에 한, 두 명 될까 말까다. 지하철은 스마트폰의 세계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지하철 풍속도는 격변의 연속이다. 종합일간지→스포츠지→무료신문으로 풍속도 주인이 바뀌는 와중에도 책은 틈새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았지만 스마트폰 시대는 블랙홀 수준이다. 16일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8시. 기자가 한 량에 70명이 탑승한 신도림행 1호선 지하철 10량을 살펴본 결과 책을 읽는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승객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게임, 인터넷 검색, 동영상 시청을 주로 했다. 이는 스마트폰 중독만 아니라 일종의 독서습관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나타난 성인의 주요한 독서장애 요인으로 ‘일에 바빠서’(39.5%) 다음으로 많은 게 ‘책 읽는 게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17.1%)가 꼽혔다. 


하지만 독서습관을 들이는 데 지하철만한 장소가 없다. 독서광들은 그렇게 말한다. 서울 인헌동에서 북카페 몽실을 운영하는 주연지(47)씨도 지하철에서 책 읽기 예찬론자다. 카페를 열기 전에는 책을 읽으려고 지하철을 탈 때도 있었다. 주씨는 “괜히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며 “나이든 아저씨가 신간 추리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게 너무 신기하고 멋있어 보여 도촬을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회사원 김인순(38)씨는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주로 책을 읽는데 적당히 흔들리고, 적당한 소음이 있는 지하철에서 제일 몰입이 잘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이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깊이 있게 사고하는 능력을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을 위한 책읽기’의 저자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씨는 “청소기가 고장 나야 매뉴얼을 꼼꼼히 보듯이 일상에 문제의식이 살아있어야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독서를 하게 된다”며 “웹툰이나 스포츠 기사 같은 데 중독되다 보니 책을 읽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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