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집밥’이란 무엇일까. 필자에게 어린시절 기억 속의 집밥은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를 얘기하는 자리였고, 형 누나와 고기반찬을 놓고 싸우는 전장이었다. 그리고 못난 성적표를 손 아귀에 쥐고 가슴조리며 밥 숟가락을 들던 재판정이었으며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는, 또 내일도 변하지 않을 지극히 ‘평범한’ 엄마표 된장찌개를 앞에 두고 투정을 부리는 장이기도 했다.(지금은 그 ‘평범한’ 된장찌개가 얼마나 ‘특별한’ 된장찌개였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 상경하면서 집밥은 더 이상 그 집밥이 아니 었다. 집밥은 ‘자취방에서 케이블 재방송을 보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숨기고 허기를 떼우는 끼니’가 되었다. 이것이 비단 필자만 겪는 변화는 아닐 것이다.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이런 모습은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어른이란 어쩌면 이렇게 매일 혼자 외로움을 먹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 만난 소셜다이닝(Social Dining) ‘집밥’의 박인 대표는 아이러니 하게도 집밥을 거의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님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셔서 고등학교 때부터 홀로 한국에 거주했고 잦은 이사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학교에서도 혼자 밥먹는 일이 많았단다.
그런 박인 대표는 소셜다이닝 ‘집밥’을 하게 되었을까?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공유경제’에 대한 물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많은 분들이 ‘공유경제’가 뭔지 잘 모르실꺼 같아요. 사실 저도..(웃음) 공유경제가 뭐죠?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닌 거겠죠. 제가 이해하기로는 ‘사람 대 사람(P2P)’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과거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게 공유경제의 초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일 유명한 게 AirBnB(개인 집의 빈방을 여행자에게 빌려주는 사이트)잖아요? 집카(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서로 공유하는 서비스)나 그런 것들도 그렇고.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커뮤니티 생성이라고 다들 얘기를 하거든요. 이런 게 모두 신뢰를 기본적으로 깔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제에요. 어떻게 보면 공동체문화, 품앗이문화를 다시 부활시키고 원활하게 돌아가는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게 바로 공유경제라고 생각해요.”
- 그렇군요. 소셜다이닝(Social Dining)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해주실래요? 아무래도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개념일텐데요.
“소셜다이닝은 식사를 하며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는 모임이에요.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Symposion)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심포지엄은 원래 그리스에서 함꼐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였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그냥 강연회가 되었다고하네요. 이렇게보면,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건 전혀 새로운것이 아니였던거죠.
- 요새들어 새롭게 부각되는 것뿐,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라고 볼수 있겠군요. 그럼 소셜 다이닝도 공유경제 범주인건가요? 같이 밥먹는게…
“눈에 보이는 어떤 실물을 공유를 하지 않는데 무슨 공유경제냐,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되게 많이 헷갈렸어요. 집밥을 하게 된 계기가 공유경제를 하고 싶어서 였고, 방을 빌려주는 등의 것들은 이미 많이 하고 있으니까 나는 음식으로 해봐야겠다. 이렇게 해서 집밥이 된 거거든요. 그리고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밥을 하는 거보다 ‘같이 먹는 거’구나. 그러다 보니 ‘이게 공유경제가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다시 들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새로운 공유경제라는 게 굳이 물건을 공유해야 한다던가 하는 게 아니고 같이 커뮤니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간의 신뢰를 기본으로 가는 경제시스템을 공유경제라고 생각하고 그럼 소셜다이닝도 공유경제구나 확신을 갖게 됐죠. 실제 해외사례를 봐도 소셜다이닝은 공유경제의 범주로 인정받고 있고요.”
- 많이 헷갈렸어요. 무언가 실물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말이 이상하긴한데 뭐라고 해야할까 오히려 ‘공유경제스럽다고 가슴이 말하는데, 머리는 공유경제 맞나?’ 이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시간의 공유? 사람의 공유? 이런 생각도 해봤고요.
“저도 헷갈리고 많이 고민을 했어요. 자동차나 집, 요즘은 각종 전자기기까지 렌탈업체가 많잖아요. 그럼 렌탈이 공유경제인걸까. 렌탈도 공유를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럼 렌탈이 정말 공유경제인가요?”
- 음…
“바로 Yes란 말이 안 나오잖아요? 렌탈은 많이 돌려야 하고 누가 와도 상관 없이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이런걸 집중하는 경제이잖아요? 근데 공유경제는 이런 것보다 목적자체가 부의창출보다 개인과 개인이 문화를 형성하면서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동체 정신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다른 거다. 그렇게 생각해요.”
- P2P(개인간 거래)와 공동체가 핵심이란 거네요. 렌탈하고는 다른…
“맞아요. 정리를 잘해주시네요. 전 주저리주저리 말했는데.(웃음) 목적이 어디 있고,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완전 다른 거죠.”
- 아직 베타서비스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는거 같더라고요. 페이스북 그룹에 보면 다들 굉장히 열성적이고요. 몇 명 정도 집밥의 소셜다이닝에 참여하셨는지 궁금해요.
“모임자체는 100회를 눈앞에 두고 있고 한 모임마다 10명에서 최대 30명 정도 모이니까 한 7~800명 정도 거쳐간 거 같아요. 페이스북 그룹 같은 경우는 원래 없었는데, 모임 참여하셨던 분들이 집밥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계속 온라인으로 교류하고 다음 모임을 얘기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걸 보고 오셨던 분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엄마그룹’ 같은 게 있어야 겠다 해서 만든게 지금의 집밥 페이스북 그룹이에요. 뒷북을 친 거죠.”
- 그렇게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밥을 통해 친해지고 또 계속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뭘까요. 소셜다이닝에 오시면 어떤 부분을 좋아하세요?
“처음에 인터뷰 의뢰를 거절한 이유가 너무 사회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란 말이 어렵게 느껴지고 저한테 어렵게 다가오더라고요. 너무 거창한걸 쫓다 보면 나중에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에 빠질 때도 있었고요.
그냥 소박하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 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게 성격에 다 묻어 나온 거 같고요. 사람들이 밥상문화를 부활시키고 뭐 이게 바로 사회적기업이라고 하시고.
그래서 저도 생각을 해봤어요. 요즘 묻지마 범죄도 횡행하고 한국사회가 삭막하잖아요. 힐링이 엄청 트렌드고. 그런거 보면서 여기서 힐링을 얻어 가는 거 같다,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만들어놓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걸 내가 왜 했지? 사람들이 왜 이런걸 좋아하지? 이미 번개식사 같은 것들도 있었는데.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본거죠.
사람들이 이런 피드백을 많이 주세요. 난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길 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었고 위안을 얻었다. 뭐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이런 피드백들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거죠. 그리고 이런 가치가 있구나 하고 저도 다시 발견하는 거에요. 집밥의 재발견.”
- 어떤 분들이 주로 이용하시나요. 연령층이나 분야 같은?
“연령층이 정말 다양해요. 17살 고등학생부터 50살 아주머니까지 있으니까. 집안에 화를 당해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고 싶어서 신청을 했다. 남편이 실직을 했는데 용기를 얻고 싶어서 왔다. 저도 놀랐어요. 이런 게 가능하구나. 그럴 데가 없으니까요. 옛날 생각해보면 반상회나 부녀회가 많았잖아요. 근데 이런 공동체가 다 없어졌어요. 그 탈출구를 여기서 찾으신 거 같아요.”
- 홈페이지 보니까 집밥 정의가 독특하더라고요. ‘집에서 먹는 밥이 집밥이 아니라, 같이 먹는 밥이 집밥이다.’ 집밥이 갖는 정서적인 면에서 집밥의 진짜 의미를 찾으신 거 같아요. 설명 좀 해주세요.
“회사를 관두고 한동안 백수로 있었어요. 혼자 집에 누워있다 보면 우울해지잖아요. 회사 다닐 때는 맨날 밖에서 먹었는데 혼자는 그렇게 못하겠라고요. 그렇다고 집에서 혼자 먹기도 싫고 그때 이웃집 아줌마랑 밥을 나눠먹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진짜 연락해서 집밥을 퍼다가 날라서 먹었어요.
그러다가 코업에서 먹고 두 번째가 하자센터였고 세 번째가 행복나눔재단.. 이상한거 받아주는 데는 그런데 밖에 없거든요.(웃음) 제가 싸들고 가면서 뭐하는 거지? 그때 느낀 게 이게 집밥(집에서 지은 밥)이 아니라 도시락을 가져가도 재미있겠다. 중요한 건 같이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먹고 이런 느낌이 중요한 거구나. 그렇게 된거죠.”
- 그렇게 된거군요.
“네. 그래서 이런 걸 뭐라고 하나. 찾아보니 ‘소셜다이닝’이라고 하더라고요. 멋있잖아요? ‘소셜다이닝’ 뭔가 멋있어보이고.(웃음) 그래서 사이트도 만들고 그랬던 거죠.”
- 어렸을 때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이 인도에서 사업하셨어요. 언니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혼자 살았어요. 가족이 다 앉아서 밥을 먹은 적이 없었으니까. 혼자 먹는 거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렇다고 사람들을 좋아하냐. 이것도 아니에요. 나랑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가족같이 이야기하고 그런 게 좋은데 세미나 같은 경우는 명함교환하고 나면 끝나버려 허무하고 동아리 같은 경우는 절차가 복잡하고 서로다 알고 있고. 나는 뻘쭘.. 사람 많이 만나면 힘들어서 집에서 충전 해야하거든요.”
- 저도 소통에 서툴렀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저 같은 경우는 책을 통해서 극복을 하게 되었고 그게 제가 나눔나우를 시작하고 책모임을 하고 책기부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거든요. 박인 대표님께도 그런 도움이 되었던 게 있나요?
“인간관계에 대해 숙제가 많아요. 어렸을 때 이사 다니고 인도도 다니고 솔직히 학창시절 왕따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집밥을 만들고 지금 보니까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요.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었구나. 점심시간에 혼자 먹는 느낌이 각인이 되었던 거에요. 솔직히 말하면 제 콤플렉스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하면 제가 치유가 될 거 같아요. 그래서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나의 꿈은 이거다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저도 그 과정에 있고요.
전 힘들 때 여행을 갔어요. 여행을 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하나도 몰라요. 나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먹잖아요. 그때 기억들이 되게 좋아요. 소셜다이닝이 그때 기억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아는 사람이 더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지금 고민을 가족들과 이야기 못할 때가 많아요. 어떻게 얘기 하겠어요. 나를 내려놓는 방법은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 고민을 막 이야기했어요. 그 때 그 느낌?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혼자서 제주도여행을 일주일정도 다녀왔거든요.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제 고민이 보잘 것 없어지는 거죠. 우리의 모든 고민은 하찮아지는 거죠. 어려운 문제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상대가 나를 모르니까 오히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문제자체를 봐줄 수 있다. 그러하기에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소셜다이닝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어쩌면 필자가 즐겨하는 책모임도 그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우리는 이렇듯 가까운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또한 많은 것을 얻는다. 소셜다니닝 ‘집밥’의 존재이유다. 앞으로도 집밥이 우리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기사 송화준 정리 이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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