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 위 자신의 모습이 흉측한 괴물로 변했음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는 것도 잠시,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그는 어떻게든 외판원 일을 나가려고 애를 슨다. 하지만 벌레의 모습으로 일은 커녕 일상적인 일을 하기에도 벅찼고, 여태껏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해온 그에게 이제는 반대로 가족들이 그를 도와야 한다.
자명종이 울지 않았단 말인가? 시계가 네 시에 제대로 맞춰져 있는 것이 침대에서 보이는 걸 보니 울렸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러나 가구를 온통 뒤흔드는 이 시계소리를 듣고도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 편안히 잠들지야 못했으나, 아마 그래서 그만큼 더 깊이 잠들었나보다.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11쪽)
잠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앞으로도 5, 6년간은 지금처럼 외판원 일을 해야한다. 그렇기에 눈물겨운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변신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일을 위해서 기차를 탈 생각을 한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란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떡하지, 이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라는 생각을 하기 일쑤이다. 너무나 괴기한 비일상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일만 생각하는 잠자의 모습, 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자심의 이상이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하던 일을 나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강했던 이유는?
뭐겠어, 이유는 돈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대략 18, 19C 정도이다. 한참 대량생산설비가 돌아가던 때이다. 물건은 많이 찍어놓고 이 물건을 처리하자니 가까운 거리에서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각지로 외판원들을 보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제품을 팔아야했다. 사실 일할 사람은 넘쳤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몸이 아프고 심지어 벌레가 됐다 해도 외판원직을 잃지 않으려 기를 썼던 거겠지.
후일 그레고르가 돈을 많이 벌어, 온 식구의 낭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감당하기도 했건만 말이다. 사람들이 익숙해졌던 것이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 역시도, 식구들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기꺼이 가져다주었으나, 특별한 따뜻함은 더 이상 우러나지 않았다. (39쪽)
그리고 세상은 자유시장경제가 자리잡게 된다. 자유시장경제란 뭐냐, 쉽게 말해서 돈으로 해결가능한 세상이란 뜻이다. 자연스레 돈의 가치는 올라간다. 처음에는 잠자가 벌어오는 돈에 감사하던 가족들이지만 어느덧 그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잠자의 돈을 당연하다는듯 받아들인다. 아내가 한 달 중 가장 기쁠 때가 월급날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잖은가.
요즘 시대에 외도가 늘어난 이유는 무얼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겟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바빠서 생기는 작은 소통의 단절에 서로 미안해하면서도 그것이 거듭됨에 따라 생기는 그 공허에 익숙해진다.
「내보내야해요」 누이동생이 소리쳤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이제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살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테지요. 그랬더라면 오빠는 없더라고 계속 살아가며 명예롭게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이 동물은 우리를 박해하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분명 집을 독차지하여 우리로 하여금 골목길에서 밤을 지새게 하려는 거예요. 보세요, 좀, 아버지」 (70, 71쪽)
돈을 얼마나 벌어오냐가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기도 한다.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긴 자본주의사회이고, 능력이 곧 재산이며 바로 월급, 연봉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히 쉬어야 할 가정에서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야 할 곳이 바로 가정이다. 아무리 학교 성적이 안 좋아 선생님께 혼나더라도, 일을 잘 못해 상사에게 욕을 먹었다 하더라도 가정에선 '자식'과 '남편'으로서, 오로지 그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남편에게는 그런 건 없다. 이미 존재체 '액수'라는 옵션이 달렸기 때문이다. 아니, 주객전도는 한참 전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오늘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산보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들은 이렇게 일을 그만두고 쉴만한 자격이 있었을뿐만 아니라 절대로 휴식이 필요하기까지 했다. (76쪽)
심리학 실험을 보면 참 우습다. 나는 저렇게 남에게 동조하지 않을텐데, 나는 다름 사람과 달리 나만의 뚜렷한 주관이 있는데, 하며 피실험자의 행동을 보고 마구 웃는다. 하지만 막상 실험에 참가하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이다. 많은 사람에게 동조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상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며 잠자의 가족에게 쯧쯧 혀를 차면서도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떳떳하게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가 제 일 하나 못하고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만 있다면? 그래서 TV 프로그램 <세상의 이런 일이>에 가끔 나오는,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을 돌보는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이다. 손가락, 그대로 접어서 자신을 향하게 해야하지 않을까.
(2011년 8월 31일 ~ 9월 2일, 2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