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지하철

1974년에 개통된 지하철. 이름은 비록 지하철이지만 이 지하철만큼 지상의 풍경을 극적으로 확 바꾸어 놓은 시설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역세권이냐 아니냐에 따라 상가 임대료와 권리금은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고 아파트의 평당 가격 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고 부동산 업체의 매물 정보도 ‘○○역에서 도보로 ○분’처럼 역을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고 있습니다. 일 평균 690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이제 단순한 대중교통 시설로 치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지하철 안의 익숙한 풍경 혹은 낯설음

지하철에 탑승을 하게 되면 우리는 재빨리 지하철 안을 스캔합니다. 빈자리가 있는지 혹은 사람이 덜 붐비는 곳은 어딘지, 그리고 이내 빠른 걸음으로 위치를 잡게 됩니다. 그리곤 잠시 고개를 돌려보면 졸고 있는 사람, 지인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 혹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가장 압도적으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은 단연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승객이 많든 적든 그곳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찾기란 고차원 방정식을 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사진처럼,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 일시에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전두환 씨가 자진납세할 만큼의 희박한 가능성입니다.

 


▲지난 7월 20일 ‘책 읽는 지하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독서하는 모습

 

만일 지하철을 탔는데 다들 책을 들고 독서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요.

-‘내가 잘못 탔나’ 하며 전철 안을 살펴본다.

-남이야 책을 읽든 말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가방에 있는 책을 슬며시 꺼낸다.

-‘이거이 뭔 시츄에이션’ 하며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책 읽는 지하철’의 구성과 운영

위 사진처럼 단체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행사는 올해 1월부터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열린 7월 20일 행사는 7번째 시도인 셈입니다. 허나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지하철을 도중에 탑승하게 되면 자리를 잡기도, 책을 펼치기도, 함께 모여 있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도림역을 출발지로 하는 2호선 열차가 하루 몇 차례 운행되는 것을 활용하여 텅 빈 지하철에 올라 단체로 자리를 잡고 책을 읽게 됩니다. 올 1월에는 80명 정도였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 지난 7월에는 120명 정도가 부기(참가자 애칭)가 되었습니다.

이 행사의 운영은 볼런티어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고 참가 신청과 주요 공지사항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ookMetro)을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무국이나 흔한 사무실 하나 없습니다. 기름기를 쫙 뺀 슬림한 형태입니다.

이번 ‘와’에서는 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송화준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송화준 씨는 책과 관련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독서모임을 한지는 5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SNS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책커뮤니티 <나눔나우>를 운영하면서 서울 불광동에 소재한 ‘서울혁신파크’ 내 ‘서울 청년 일자리 허브’ 프로젝트 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이유로 이런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정신적 트라우마랄까, 제가 저 자신을 표현하는데 상당한 고통을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독서치료 목적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계기에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까 책이라는 것은 자기를 투영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체를 통해 나를 투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실제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학습, 훈련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책은 지혜의 보고라기보다는 세상 혹은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 채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지금도 책이 하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 진행을 하고 있는 송화준 씨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왜 플래시 몹 방식을 채용하게 되었는지요.

지금 사람들이 알아주고 있는 것이 ‘책 읽는 지하철’이어서 그렇지 이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일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책 읽는 지하철’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독서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다 좋은데 책을 읽고 와야 하는 것이 장애라면 장애더라고요. 그래서 책 읽는 과정자체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임팩트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책 읽는 지하철’의 기획이 나오게 된 것이죠.

제가 독서모임도 하고 출판사와 함께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그분들께 저의 구상을 내비쳤더니 양쪽 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팀을 구성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책 읽는 지하철’은 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놀이라고 하면 어떤 의미에서 너무 가벼우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 개념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봤는데 처음엔 캠페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캠페인이라는 말은 오히려 계몽적이기도 하고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해서 의도적으로 배제를 했습니다. 그 다음엔 플래시 몹이라는 말을 쓰시더라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벼우면서도 즐거움이 내재되어 있는 듯해서 이제는 플래시 몹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금도 저희는 베타 테스트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변화를 주고 있기도 하고요. 처음엔 ‘우리끼리(출판사와 독서모임) 즐겁게 놀자’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초기부터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첫 번째 행사 때부터 80명 정도가 참여를 했습니다. 이후 점점 참여인원이 많아지다 보니, 뭐 행복한 고민이겠습니다만 주최 입장에서는 일종의 관리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1,2회 때는 사전에 조를 구성해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그 후 다시 조별 모임을 진행했는데 3회 때부터는 테마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3월은 학기가 새로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은 후 학교에 가듯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모임을 가졌고 4월에는 봄소풍 개념으로 진행을 하려 했는데 비가 와서 소풍은 못 갔습니다만 서울시에서 연락이 와서 박원순 시장님과 함께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 때문에 주 참여층인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하면서도 가정과 연결될 수 있는 작가를 생각하다 보니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와 함께하게 되었고 6월에는 도서관련 가장 큰 행사인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달이기 때문에 전시회에 함께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초기에는 독서모임의 연장선상에서 사람간의 만남을 중요시했는데 4월부터는 행사 자체에 포커싱이 되어 진행된 것이죠. 그래서 외부적으로는 더 많은 홍보와 노출이 되었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 참가자간의 소통에는 장애가 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죠. 외부에 많이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책을 매개로 참가자들간의 격의 없는 소통과 관계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는 최초의 생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번에 평택에서 중학생 40명이 단체로 참여를 합니다. 선생님이 기획을 하셔서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고 모임을 갖은 후 대학로에 가서 <동백꽃> 연극을 본다고 합니다. 이것이 저희가 생각했던 기획의도를 제대로 구현하는 형태라고 생각해요, 주최 측에서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저희는 시간과 공간 등 기본 툴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참가자들이 채우는 것이죠.

 

단체로 책 읽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한 사람이 하품하면 자기도 모르게 옆 사람도 따라하게 되듯이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하철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으니 처음엔 이질감에 쭈삣하고 어색해하지만, 책 읽는 모습에 동화되는 측면이 느껴집니다. 친구끼리 떠들다가도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저희 참가자 한 분이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를 하려고 했더니 그분이 ‘책 읽는 사람이 앉아가야 한다’며 끝내 사양을 하셨고 어떤 노약자분은 앉아 계시다가 ‘책 읽는 당신이 앉아라’하면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셨다 합니다. 이렇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독서가 아니라 읽지 않는 사람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 읽는 지하철’은 참가자들에게도 많은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이제 지하철을 타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평소 잠자면서 이동하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이젠 책을 읽어야겠다는 동기가 새롭게 부여된다고 합니다.

 

플래시 몹이라는 것은 군집행동을 통해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겠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데요. 지금의 방식은 극히 일부의 시민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메시지 확장성이 취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와 메시지가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구분을 한다면 지금은 참여자의 즐거움을 더 중시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저희가 하는 노력에 비해 더 많은 메시지가 전파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지하철이 갖는 특수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2호선에서 그것도 한 달에 한번만 하고, 서울이라는 지역에 2호선 지하철만을 이용해 하고 있습니다만 저희들은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은 2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는 지역이고 두 번째는 교통수단입니다. 이를테면 서울을 벗어나 ‘책 읽는 부산’ ‘책 읽는 광주’처럼 확산될 필요가 있고 교통수단은 지하철을 넘어 버스, 기차, 비행기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이런 매체적 확장을 위해 더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좀 알려주시죠.

저희는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 ‘함께 책을 읽으면 즐겁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 행사를 전문 사진사들이 와서 촬영 해 주고 있는데 앞으로 저희들은 사진전이나 포토 에세이를 발간해서 책과 관련한 소소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일반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본질은 우리가 즐겁고 우리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우리 비전 안에 다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더 재미있기 위해 나아갈 것이고 책 읽는 순간을 즐길 것입니다.

참여자들이 평상시에는 20-30분만 타고 가도 지겨웠는데 1시간 넘게 책을 읽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벌써 내리게 된 것이 아쉽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희는 스마트폰에 빼앗긴 즐거움을 찾아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의 비전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화준 씨와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7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 40분경에 모임 장소인 신도림역 출발 지하철 4-1번 탑승구에 섰습니다. 참가자의 연령대는 20~30대가 주를 이뤘고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구면인 듯한 사람들은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처럼 초짜에다 낯가림이 있는 사람들은 쭈삣거리며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열차가 들어오고 참가자들은 자연스레 지하철 세량에 분산되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책갈피와 스티커를 나누어주던 운영진이 간단한 공지사항 안내를 할 때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참가자들은 각자 가져온 책을 펴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로 유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참가자 중에 가장 연장자인 듯한 안수길 씨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수길 씨는 「우주 속으로 걷다」라는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이 모임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요.

이 행사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소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 있는 것에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우리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에 적극 공감해서 참가하게 되었다. 어차피 읽는 것이긴 하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하면 내가 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신선해서 좋다.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보면 깊이 있는 고민과 사고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책을 멀리하고 종합적 사고를 잘 못하면 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균형을 잘 갖추었으면 좋겠다.

 

 

정거장을 지날 때 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이젠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실내 온도는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새로 타는 승객의 반응을 살펴보려 부지런히 좌우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에게 특이점을 발견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승객의 반응을 발견하는 것은 기실 어려운 일일뿐더러 어쩌면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텝업>이라는 영화에는 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기업에 맞서 플래시 몹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정확히 과녁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처럼 극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극적이기 보다는 비루함에 더 닿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에서 독서하는 풍경이 익숙치 않은 모습이긴 하나 그렇다고 깜짝 놀랄 일도, 그것이 잠자고 있는 감성을 갑자기 깨우는 죽비도 아닙니다. ‘책 읽는 지하철’은 비록 플래시 몹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작심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의 시선은 시민들의 반응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은 얼마나 즐겁게 참여했냐 이지 시민들의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혹여 시민들이 그런 즐거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면 그것은 이 행사의 덤이자 결과물일 뿐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오히려 내적 동력을 심각하게 떨어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 읽는 지하철’의 다양한 노력과 행위들은 즐거움으로 수렴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모습으로 지치지 않고 진행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