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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미네 시게토시(永嶺重敏)의 ‘독서 국민의 탄생’(송태욱 옮김. 푸른역사, 2010)은 메이지 시대(1868~1912) 일본 국민이 활자 미디어를 읽는 습관이 몸에 밴 ‘독서 국민(reading nation)’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기차역의 노숙자들마저 책을 읽고 있을 정도라는 일본인들의 높은 독서열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저자는 메이지 시대 첫 30년을 거치면서 철도망이 대대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도쿄와 오사카의 신문·잡지 등 활자 미디어가 전국에 유통됐고, 여행 산업의 발전, 도서관 설립 등 정부의 독서 정책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서구 열강에 뒤지지 않는 ‘독서 국민’이 형성됐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독서 국민이란 ‘신문이나 잡지·소설 등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다. 

메이지 초기에 일본인들이 가장 친근하게 여긴 탈것은 인력거였다. 당시 도로 사정은 극히 나빴다. 게다가 인력거 바퀴는 나무 테에 철판을 덧씌워 진동이 심했다. 결코 승차감이 좋은 탈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덜컹대는 인력거를 새로운 독서의 장으로 활용했다. 인력거라는 차내 공간은 손님 1, 2명과 인력거꾼으로 이루어진 닫힌 공간이다. 메이지 초기 일본인의 독서 방식은 음독(音讀)이었으므로 손님이 신문을 읽으면 듣는 사람은 인력거꾼이다. 인력거꾼 가운데는 손님에게 신문·잡지를 읽어줄 것을 적극적으로 부탁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손님이 읽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끌고 가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인력거를 끌고 가는 도중이라도 질문을 하고, 내용이 이해되면 손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식이었다. 

인력거꾼이란 먹고 살기 위해 흘러 들어가는 막장과도 같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사회 최하층인 인력거꾼들이 일하는 시간의 막간을 이용해 신문·잡지를 일상적으로 읽을 정도로 독서 습관이 모든 일본 국민의 몸에 배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정부도 신문읽기를 권장하고 도서관들을 설립했다. 특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승리 이후에는 ‘1등국=문명국’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전체 국민의 지적 수준을 높이려고 대대적으로 독서를 장려했다.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 사회에 팽배했던 자신감이 독서열을 자극한 셈이다. 침략을 당한 우리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 뻗어나가고 있던 국운상승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들은 이미 19세기 말에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조선 왕조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였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출퇴근길에 늘 대학생들을 접하는데, 젊은이들의 차내 풍속도는 최근 들어 현저히 바뀌었다. 7, 8년 전까지만 해도 좌석에 앉아 책을 읽는 대학생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후 그런 풍경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쩌다 가물에 콩 나듯 책 읽고 있는 대학생 차림 젊은이를 보면 반가울 정도다. 책과 점점 멀어지는 우리 젊은이들의 풍속도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밝지 않은 장래를 말해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얼마 전 서울의 지하철 2호선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대신 책을 손에 쥔 승객들이 등장했다. ‘책 읽는 지하철’이라는 단체의 지하철 책 읽기 플래시몹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지하철에서 함께 책을 읽고 시민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활동이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운동이 대대적으로 확산돼 우리와 대학생 모두에게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독서국민의 탄생’과 국운상승의 기회가 다시 오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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