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이승연 기자] 9월이 돌아왔다. ‘천고마비의 계절’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임에도 이달의 시작에 맞춰 한달간 읽어 볼 책의 목록을 정해보는 건 메마른 문화 감성에 기름칠을 하는, 제법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의 독서 의지를 방해하는 ‘시간이 없어서…’ 고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독서 공간인 ‘책읽는 지하철’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책따’를 아십니까?’ 이 뜬금없는 질문은 지난 3월 보도된 뉴스의 헤드라인이다. 당시 뉴스를 접하며 ‘‘책따’가 뭐지? 근래에 유행하는 줄임말 같은 건가?’ 싶었지만,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책 읽는 학생들을 비아냥거리고 따돌리는 현상’이라는 설명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책을 읽는 사람을 이른바 ‘꼰대’ 취급을 하게 됐을까.
사실 이런 단어가 생기게 된 것이 어이가 없다가도, 언젠가 왔을지 모를 정해진 수순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독서를 하는 모습이 어느 순간 생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과 같이 책이 주가 되는 곳에서는 당연한 장면이지만, 지하철과 버스 같은 교통수단이나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 대신에 책을 든 사람이 보이면 한번쯤 관심 있게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시험기간인가? 일 서류? 종교관련 서적인가?’ 생각하는 자신에게 회의감도 든다.
문학소년, 소녀를 동경하던 시절은 이제 먼 옛날이 되어버렸을 지 모르는 지금, 다시금 종이책을 사각거리며 넘기는 감각을 되찾고, 함께 책을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책읽는 지하철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보이는 세상
지난 8월22일 토요일,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홀 안에서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 상기된 표정을 뽐내고 있었다. 대략 70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독서 모임 ‘책읽는 지하철(북 메트로)’ 플래시몹 캠페인에 체험하고자 하는 참가자들이었다. ‘책읽는 지하철’은 ‘모임 장소를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지하철) 시간 내에 함께 읽는 책에 대한 즐거움을 알고, 신나게 수다를 떨자’에서부터 시작된 독서모임 캠페인이다.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은 참가자들은 어색함에 눈 앞에 책을 넘겨보기도 하고, 함께 온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오후 2시30분. 시간이 되자 플래시몹 행사가 시작을 알렸다. 행사에 대한 전반적인 참여방법과 함께 스케줄을 공지하고 난 뒤, 각 조(읽고 싶은 책에 따라 나뉜)마다 플래시몹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투입된 행사 관계자들의 진행 하에 참가자들이 자기소개 타임을 가진다. 이름(대신 별명을 말하기도 한다)과 행사 참여 계기, 책을 선택한 이유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독특한 사진 콘셉트를 정하는 등 미션에 대한 간단한 회의를 거치고 나자 조금은 웃음기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책’과 ‘독서’라는 공통적인 관심사 아래 모인 사람들은 이곳에선 10~20대의 학생도, 직장인도,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도 아닌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참가자일 뿐이었다.
▶내 가방 속 작은 책을 꺼내주세요
펭귄클래식 작은책, 사진발췌 ⓒpholar-책읽는 지하철
책읽는 지하철 참가자들은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받은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서서 혹은 자리에 앉아 손에 펼쳐든 종이책이 모여 이색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스마트폰을 보던 탑승객들은 이런 풍경에 놀란 듯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고, 지하철에 막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 역시 어리둥절한 채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5호선에 내린 뒤 2호선 탑승 구간. 짬을 내 미션을 수행하는 팀원들의 모습이 자못 웃음을 자아낸다. 계단에 줄줄이 올라서 책을 들기도 하고, 마치 꽃이 핀 듯 책을 펼쳐 보이기도 하는 등 어떤 조가 가장 독특한 인증샷을 선보일까 하는 궁금증을 안은 채 다시금 지하철의 본 행사장(영등포구청역)에 도착했다. 행사 중간까지 따라다닌 기자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힘입어 입구 한편에 서서 책을 펼쳤다. 그러자 옆의 노약자석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부르시며 “주말에는 노약자석이 많이 비어있으니 앉아서 읽지 그래요”라는 따뜻한 양보를 건네기도 했다.
이번 책읽는 지하철 행사 취지에서 주목해볼 것은 단순히 스마트폰에 빼앗긴 독서의 자유를 되찾자는 것뿐만이 아니다. 문서화된 책을 읽는 것이라면 태블릿PC로도 충분한 세상 아닌가. 하지만 차디찬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종이를 넘기는 감성, ‘아날로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작은 책’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느껴보자는 목적 또한 상기하기 충분했다. 문고판 크기의 작은 책의 가치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큰 효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배터리 방전 없고, 데이터 걱정 없고,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문학 지식도 쌓게 되는 데 이만큼 매력적인 물건도 없지 않을까.
책읽는 지하철 플래시몹, 미션 수행 방법
‘책읽는 지하철-작은 책이 맵다’ 플래시몹은 10명씩 나뉘어진 각각의 조가 교보문고에서 출발을 한 뒤(광화문역), 영등포구청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고 책읽는 지하철의 본부인 합정역에 도착하기까지(대략 1시간 20분) 각각 선택한 책을 읽으면 1차 미션이 클리어 된다. 그 후에 참가자는 개인, 혹은 조별로 찍은 인증샷을 SNS를 통해 공유를 하고, 책읽는 지하철 본부에 모여 독서토론 및 이야기를 나누면 전반적인 행사가 마무리가 된다.
Mission1 지하철에서 작은 책 읽기
Mission2 참여 인증샷 SNS 공유 #책읽는지하철 #작은책이_맵다 #교보문고 #펭귄클래식
Mission3 개성 넘치는 조별 사진
Mission4 조별 이야기 “책 읽는 지하철은 ○○○이다”
책읽는 지하철은…
‘책읽는 지하철’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시작된 플래시몹 행사다. ‘도심 속 책 여행’이라는 슬로건 아래 스마트폰에 밀린 책의 위상을 회복하고, 지하철에서의 책 읽는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2030대가 주축이 되어 스마트폰에 중독된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히 책을 펴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하철 중심의 책 읽기 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독서 장려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책읽는 지하철’ 행사는 ‘교보문고’와 출판사 ‘펭귄클래식코리아’와의 공동 캠페인으로 진행돼, 펭귄클래식에서 후원한 문고판 크기의 문학작품 서적을 선보였다. 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책읽는 지하철’ 홈페이지(www.bookmetro.org)와 트위터(twitter.com/bookmetro_org)를 통해서 한달에 한번 들려오는 캠페인 소식을 기다려보도록 하자.
[글 이승연 기자 사진 책읽는 지하철,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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