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서 책 읽니
책 읽는 지하철
책이 좋아 책 읽는 모임에 들었다가 스스로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책을 읽고 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하다 낸 아이디어 하나. ‘책을 읽는 것부터 같이 하면 어떨까’다. 모임 장소로 오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착안, 지하철을 책 읽는 장소로 정했다. 각자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함께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글 김영리 | 사진 김연지 | 일러스트 손요나
‘책 읽는 지하철’은 이렇게 시작됐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시대에 수 명 때로는 수십 명이 같은 칸에서 책을 읽는 광경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다 출판사, 국제도서전, 서울시 등과 함께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언젠가 열린 플래시 몹 퍼포먼스에는 100여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지하철 한 칸에서 100여 명이 책을 읽는 광경이라니.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는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다. 모두 9명의 기획자로 구성된 책 읽는 지하철은 다양한형태의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책이 좋아, 함께 책 읽는 시간이 좋아 개인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그들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대표기획자 송화준 씨(이하 송)와 기획자 정은빈, 박주연 씨(이하 정, 박)가 함께했다.
독서모임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송 : 스물네 살 때부터 독서모임을 했는데, 하면 할수록 책을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을 하러 올 때 대부분 지하철을 타고 오기 때문에 거기서 읽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면 멀미가 나는 등 한계가 있으니까.
각자 읽고 모이는 거랑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송 : 책을 못 읽고 오는 이유는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읽고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책을 안 읽고 오면 그저 다른 사람들이 읽은 내용을 듣는 것밖에는 안 되지 않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독서모임은 친목모임으로 변한다. 모임을 유지하면서 더 대중적이고 열린 모임을 만들려면 책을 읽는 것부터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책은 혼자 읽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분위기에 따라 책 읽을 때의 집중도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주변에 함께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열려 있는 공간에서 읽을 때 훨씬 좋다. 그런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플래시몹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느낌을 ‘짜릿하다’고 표현하더라.
플래시몹을 하는 게 단순한 캠페인의 목적을 넘어 참여하는 사람들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송 : 그렇다. 캠페인은 부차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캠페인이 아니라 놀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오면 함께,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는데 동참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출판사나 특정 단체랑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함께 기획하고 있는 아홉 명은 어떻게 모인 사람들인가.
송 : 함께하고 싶어서 내가 제안한 사람, 책 읽는 지하철에 참여했던 사람, 북 큐레이터(책 읽는 지하철에 매주 배달되는 신간을 읽는 모임)의 구성원, 산학협력을 하고 있는 대학의 학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모임은 언제 하나.
송 : 정기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번, 책 읽는 지하철도 한 달에 한 번이다. 독서치료나 독서법 등을 공부하는 독서스터디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모임들이 운영되고 있다.
읽는 책의 선정기준이 따로 있나.
송 : 그때그때 다르다. 기본은 물론 있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와서 읽는 것이다. 독서모임의 구성원은 같은 책을 읽어도 괜찮지만, 책 읽는 지하철에만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어 그렇게 정했다. 물론 특정 단체나 출판사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정해진 책을 읽는다. 다만 출판사는 우리의 특성과 잘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제하는 편이다.
특성과 잘 맞는 경우는 어떤 건가.
송 : 최근에 한 것 중에는 <걸 온 더 트레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기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책인데 뉴욕에서도 지하철 플래시 몹을 진행했다고 하더라. 담당 출판사가 한국에서도 해보려고 방법을 찾다가 우리가 오래전부터 지하철 플래시몹을 해왔던 것을 알고 제안을 했다. 이렇게 스토리가 있거나 독서 캠페인 같은 경우에는 진행한다. 단순히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지양하는 편이다. 참가자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이후의 토론은 어떻게 진행되나.
송 :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고 이야기한다. 지하철을 타면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는데, 전부 읽는 건 어렵다. 우리 목표는 책을 함께 읽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도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온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랑 함께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이 좋은가. 쉽게 상상이 안 된다. 오히려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될 것같은데.
정 : 그렇지 않다. 정말 재밌다. 나도 처음 할 때는 몰랐는데, 진짜 짜릿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한다는 기분도 좋고 단순히 내가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모습을 통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느낌도 좋다. 여러 명이 함께 읽으니 오히려 집중도 잘된다.
책 읽는 지하철을 통해 더 해보고 싶은 건 없나.
정 : 아직 아이디어단계이긴 하지만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코스튬플레이를 해보고 싶다. 책의 주인공들이 책 밖으로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와 카드, 토끼가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고 있는 거,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나.
책 읽는 지하철에 참여한 이후 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도 있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안 좋아했던 사람들 말이다.
송 : 처음에는 뭔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함께 책을 읽을 때 모두에게 생기는 집중력이 주는 감동이 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걸 경험해본 사람들은 ‘후에도 그 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괜히 기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 나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정기독서모임과 책 읽는 지하철 외에 또 다른 행사는 없나.
송 : 파주출판단지랑 함께 하는 ‘읽어밤’이 있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밤새 책을 읽는다. 지금까지 두 번 진행했는데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다.
정:읽어밤은 진짜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밤새 책을 읽는데, 지하철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포근하기도 하고 섹시 하기도 한. 낮에는 사실 집중해서 책 한 권을 읽기가 힘들다. 핸드폰도 들여다보게 되고, 카톡도 계속 오니까. 밤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 무조건 한 권은 다 읽고 간다. 거기서 오는 작지만 큰 성취감이 있다. 어떤 남성 참가자는 친구와 둘이서 읽어밤을 하기도 하더라. 그만큼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박 : 북큐레이터 모임도 있다. 신간을 읽는 모임인데, 보통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주말 동안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습관이 되니까 평일에도 한 권 더 읽게 된다. 책을 많이 읽게 돼서 좋다.
대체 모임이 몇 개나 있는 건가.
송 : 만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캘리그래피, 필사 모임도 있다. 올해는 새로운 모임도 생길 예정이다.
원론적인 걸 한 번 물어보겠다. 책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박 : 읽어밤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낮에는 평소에 하는 생각이나 일상에 쫓겨 집중을 잘못하지만, 남들 다자는 시간에나 혼자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된다. 그 느낌이 굉장히 특별했다. 책에 집중하게 되면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현실도피일 수도 있지만, 책 속에 빠져들게 되면 평소의 힘든 일이나 쫓기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이야기 말고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밌고.
정 : 소설은 소설대로, 지식은 지식대로 다른 사람의 세계와 생각을 압축해서 보는 건데, 그게 재밌다. 글씨와 글씨가 아닌 간격 사이에 빠져들어 가는 거. 그 공간 사이에 빠져들면서 다른 것들은 다 잊게 되는 그 느낌이 좋다. 그게 책인 것 같다.
송 : 그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책은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돕기도 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도 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게도 한다. 이게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로브 6호의 주제는 동네서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동네서점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송 :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외에는 참고할 수 있는 추천도서가 거의 없다. 책의 한계는 다 읽어보기 전에는 내가 이 책에 만족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면 추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야 하는데,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면서 그게 어렵다. 그런 점에서 동네서점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동네 형이나 누나처럼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책 분야의 편집숍이랄까. 책방 주인들도 저마다 개성이 넘쳐서 더 그런 것 같다.
정 : 지나가다 동네서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들어가 보게 된다. 사실 모든 콘텐츠가 다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다양성 자체가 정말 재미있는 것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어떤 영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퀄리티를 떠나서 ‘아, 이거 정말 재밌어 보인다. 나도 해보고 싶다. 나도 해볼까’와 같은 영감. ‘치킨 한국’이라는 말도 있는데, 너무 붐이 일어서 공멸하는 일만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 읽는 지하철의 미래나 목표를 그려주면 좋겠다.
박 :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 이거 뭐야’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그런 풍경이 펼쳐지면 스마트폰을 못 꺼낼 것 같다. 다음날에도 또 그러면 ‘나도 책을 읽어야 하나’ 생각이 들 것이고, 다음날에도 그러면 스스로 책을 챙기게 될 것이다. 이게 답인 것 같다.
※ 종이 책자는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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