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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감동시선

한용운-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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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길이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들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惡)한 사람은 죄의 길을 쫓아갑니다.
의(義)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