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에 적혀있듯 한국인이 쓰는 언어를 살펴보면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한국어로 사회화된 존재이니까. 일전에 읽은 '세상을 바꾸는 언어’(양정철, 메디치미디어)와 비슷한 취지의 책이다. 왜 재중동포가 아니고 조선족이냐(재미동포, 재일동포라고  표현하면서)는 문제제기 등 일부 사례는 겹치기도 한다.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내가 쓰고 있는 언어를 돌아볼 수 있는 이런 책들이 좋다. 내 안의 또 다른 차별의 언어는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하 발췌 요약

차별의 언어
국내도서
저자 : 장한업
출판 : 아날로그(글담) 2018.10.01
상세보기

어원상으로 우리는 ‘울타리’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는 속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과하게 사용하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배척할 수도 있지요. 22

주소를 쓰는 방식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가 드러납니다. 주소를 ‘내림차순’으로 쓴다는 점입니다. 이름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을 적은 다음 이름을 적습니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은 도, 시, 구, 동, 번지라는 다섯 개의 지역 집단과 한 개의 혈연 집단을 거쳐야만 비로소 나타납니다. 30

한국인은 국민 여동생, 국민 남동생, 국민 배우, 국민 가수, 국민 MC 등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는 국가주의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언어 사용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46

국내 사전에 따르면, ‘민족'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입니다. 즉 사전에서 민족을 정의하는 조건에 지역, 언어, 문화, 역사는 포함되지만 혈연이나 혈통은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혈연이나 혈통이 엄연히, 아니 오히려 다른 요소보다 우세하게 존재하고 있지요. 52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으로, 지도를 펴보기만 해도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가 넘나들던 곳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일본,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다문화적 공간이고요. 따라서 한국 문화는 본래 ‘다문화’고, 그런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이며 그런 사회에서 사는 한국 사람은 ‘다문화인’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한국인은 다문화 하면 바로 외국인이나 동남아를 떠올립니다. 94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가정’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외국인인 가정을 의미합니다. 이 가정의 정확한 명칭은 국제결혼가정입니다. 유럽에서는 국제결혼가정을 부를 때 ‘이민자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그 용어 속에 한국인 특유의 단일의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95

사전에서 ‘마누라’를 찾아보면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문제는 ‘허물없이’가 ‘체면을 돌보거나 조심할 필요없이’를 넘어서 ‘함부로’가 될 때입니다. 아내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마누라의 어원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누라는 몽골어 ‘마눌’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13세기 원 간섭기에는 고려 왕실에서 몽골어를 종종 사용했는데, 당시 마눌은 왕비를 가리키던 몽골어였답니다. 원 강점기의 고려 왕들은 원나라 마눌 앞에서 꼼짝 못했다고 합니다. 113

조선족이라는 말은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 중 하나의 이름으로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가 쓰는 조선족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은 재미동포 또는 재미한인, 일본에 사는 한인은 재일동포 또는 재일한인이라고 부르면서 유독 중국에 사는 한민족만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을 재중동포나 재중한인으로 바꿔 불러 보는 건 어떨까요? 181

고정관념은 영어 ‘stereotype’을 번역한 말입니다. ‘stereo’는 ‘딱딱한’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형용사 스테레오스에서 파생한 말이고, ‘type’은 ‘인쇄’와 관련된 말이지요.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곳은 인쇄소였습니다. 1922년 미국의 기자 리프만은 이 단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해 ‘머릿속의 인상들’을 가리켰습니다. 190

그렇다면 고정관념은 무조건 나쁠까요? 만약 고정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현실이나 현상을 접할 때마다 그것을 일일이 분석하고 판단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없애려 하기보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대상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91

편견은 영어로 ‘prejudice’입니다. 이는 라틴어 프라이유디쿰에서 파생한 말로, ‘미리 내린 판단’을 뜻합니다. 고정관념은 어떤 현실에 대한 일반화, 편견은 이 고정관념을 근거로 내리는 (대개 부정적인) 평가입니다. 198 

우리는 왜 퍼는 ‘쌀국수’라고 부르면서 스파게티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걸까요? 다시 말해요, 왜 스파게티를 이탈리아 밀국수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이분법적 시각과 편견이 음식 이름에도 투영된 듯합니다. 즉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음식만 받아들이고 언어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그 음식과 함께 언어도 받아들이지요. 200

흔히 사람들은 차이를 ‘다양성’과 혼용하곤 합니다. 이 둘은 다른 개념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하고, 다양성은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말합니다. 즉 차이는 ‘상태’고 다양성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차이에는 중심이나 기준이 되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다양성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요. A와 B는 다르다.(A와 B는 서로 비교 기준 또는 중심이 된다.) A와 B로 다양하다.(A나 B는 기준 또는 중심이 되지 않는다.)  206

인간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자신이 사는 곳의 기후와 지형에 맞게 각기 다른 생활 양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강자들은 자연스러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약자들의 문화를 열등하다고 말하며 차별해 왔습니다. 중심주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차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심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면 A와 B는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이런 존중을 다양성이라는 가치 개념으로 바뀌지요. 문화적 차이와 달리, 문화다양성은 수용과 존중을 내포하는 하나의 가치 개념입니다. 208

미국 상호 문화의사소통학자 베넷은 사람들이 차이를 어떻게 수용해 나가는지 여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문화적 차이 자체를 ‘부정’->자신을 문화적 차이로 부터 ‘방어’->최소화(차이를 사소한 것이나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수용(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존중)->문화적 차이에 ‘적응’->통합(자신을 특정 문화 속에 가두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여러 문화적 관점에 따라 판단) 208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배운 사람은 언어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 속으로 서서히 편입됩니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사회화된 존재들입니다. 한국어로 세상을 분석하고 바라봅니다. 한국인이 쓰는 언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존재 방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30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