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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언제나 세살짜리가 되고 싶었던 북치기의 비애' [양철북 2: 권터 그라스]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양철북2(세계문학전집33)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귄터 그라스 (민음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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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가 번역한 소설들은 다 좋은데,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번역가들이 열이면 열 하나같이 전부 번역을 삐끗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양철북도 그랬다. 물론 난 독일어를 할 줄 모르므로 오스카가 그렇게 어렵게 말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가끔가다 정말 납득이 안 되는 부분들이 보여서, 읽다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음... 하지만 독일어는 역시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단 말이지.

 아무튼 이번에 나온 내용은 1권에서 잠깐 나오는 그 스피드 있는 전개가 식은 것 같았다. 딱히 인상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본인은 이상하게 오스카가 3살 외모에서 벗어난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딱히 외양이 꼽추로 변해서 유감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른처럼 완전히 성장한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북소리로 사람들에게 감정전이를 시켰다는 건 나름대로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씁쓸한 고백실패로 끝난 1권 이후로는 쭉 찝찝하기 그지없는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30세'에서 이 소설은 끝이 나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었을 땐 갑작스럽고 말도 안되는 살인(?)사건 전개에 약간 허무한 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할 때 몸에서 전율이 일게 한다. 내 생각에서 끝날 뿐이고, 소설에서 오스카를 꺼내서 추궁할 수도 없겠지만 어쩌면 주인공은 무명지 사건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명지의 주인이 도로테아 간호사였다는 걸 알았을지도? 아무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독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오스카마저도 교활하고 약삭빠른 인간이었다. 진실과 거짓이 하나로 뒤섞인 오스카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른들의 '내가 어렸을 땐 세상이 이렇게 팍팍하지 않았어' 같은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자각하게 될 것이다.

 피천득씨는 딸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로렌스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는데, 어떤 책을 고를 자유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보지만 굳이 읽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오히려 이 책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어야 했나 생각한다. 너무 대놓고 성적 상징들과 잔혹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펼쳐내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야기들을 읽는 독자에게 비틀린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책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독일사회의 여성학대를 다루어낸 이야기들만 해도, 자세히 생각하면 매우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책을 읽고있던 당시엔 역겨움에 눈을 찌푸리며 헛웃음만 치고 있었다. 이 반응도 오스카의 영향이었을까.

 그렇다고 교훈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 대한 통렬한 비판보다도, 남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듯해서였다. 본인은 파르치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철북에서 권터 그라스가 내놓은 간접적인 해석이 맞는 듯하다. 파르치팔이 하얀 눈 위에 피 세 방울이 떨어진 광경을 보면서 여인의 생각을 하듯, 오스카는 그리스도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면서 적십자의 빨간 마크를 생각하고 있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무섭게 몰두될 정도로 대단한가보다. (물론 오스카의 혹을 만져보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혹 때문에 꼽추와 결혼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냥 할머니 콜야이체크의 감자치마 네 벌 속으로 들어가 냄새를 맡고 싶다는 오스카의 말도 마찬가지이고. 남자들이 같은 나이의 여자들보다 어려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의아하기 그지없는 자궁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그래서 남자라면, 누구나 나이들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만의 지하실 계단에서 떨어지는 걸까?
 

매우 선정적이긴 하나 주제의식을 명료하게 나타낸 포스터라 생각한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