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Ⅱ/기타

[양손잡이] 악마의 무기: 견인 도시 연대기 3부 (필립 리브)

악마의 무기 - 6점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이번 감상은 상당히 짧게 끝날 것 같군요.

  연대기 3권에 들어섰습니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연대기의 절반을 막 넘어왔습니다. 슬슬 끝을 향해 가는 견인 도시 연대기, 그 중간의 3권, 한마디로 말하자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참기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랬습니다. 형만한 아우가 없다더니 그 둘째만한 셋째도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야기는 2권의 끝으로부터 16년 후입니다. 그때 헤스터가 가진 톰의 아이, 렌은 무럭무럭 자라 15살의 아름다운 소녀가 됩니다. 견인 도시였던 앵커리지는 아메리카에서 정착촌(바인랜드)가 됐습니다.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의 삶을 잘 살고 있죠. 하지만 톰과 헤스터의 자유로운 영혼을 받은 렌은 자신이 사는 곳이 한없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렌에게 재밌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앵커리지에 찾아온 로스트보이들이 앵커리지 도서관의 틴 북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합니다. 렌은 물건을 가져다주는 대신 자신을 모험의 길로 인도해달라고 하죠. '멍청한' 렌은 틴 북을 로스트보이들에게 주고 여차저차해서 납치당합니다.

  하지만 브라이튼의 계략에 빠져 잠수함 오토리쿠스는 포획되고 렌은 노예로 팔려갑니다. 거기서 페니로얄에 대해 알게 되고 살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 페니로얄의 노예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뭐, 뻔하겠지요? 톰과 헤스터는 렌을 구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돌아다닙니다. 중간중간 여러 사건이 있고 시련도 있습니다.

  전의 두 권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10대였던 톰과 헤스터는 이제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톰은 건강이 좋지 않고 심지어 머리가 조금씩 까졌지요. 아름답던 프레야는 노처녀가 됐고요.

  이런 세월의 벽 앞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되었습니다. 청소년 소설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던 1, 2권과 달리 꽤나 딱딱합니다. 일전에는 광활히 펼쳐지는 땅이나 얼음 평원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네요. 과거의 톰과 지금의 렌은 같은 나이대이지만 행동거지나 사고방식이 꽤나 다릅니다. 그래서 조금, 아니 많이 지루했습니다.

  너무나 긴 이야기를 계속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조지 R.R Martin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번역자의 잘못이고 뭐고 그냥 좋아하죠.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된 4부까지 읽으면서 슬슬 지루해진 건 3부부터였습니다. 거의 한 달에 걸쳐 내내 웨스테로스에 빠져 살다보니 자연스레 힘들더라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밌는 애니라도, 드라마라도 시리즈를 펼쳐놓고 쭉 보다보면 참 힘들 때가 있죠?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동영상도 24시간 보면 지루할 거라고! 그래서 주말에 텔레비전에서 몰아 보고 말이죠. 아니, 이건 나만 그런가?

  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헤스터의 모습도 짜증났지요. 아무리 과거가 괴로웠다고 해도 16년간 사랑스런 앵커리지에서 살면서 성격이 바뀌긴커녕 더 날카로워진 헤스터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톰을 놔주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순수가 결여된 모습에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지요. 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걸까요?

  4권을 대충 훑어보니 3권에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견인 도시 연대기를 전체적으로 두 부로 나눈다면 1, 2권과 3, 4권으로 나눌 수 있겠네요. 3권이 아니라 2막 1장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악마의 무기>는 4권의 프리퀄격 이야기라고 강하게, 아주 강하게 느꼈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4부도 자신을 2막 1장이라고 말했지요. 번역 문제도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고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악마의 무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과는 다르게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네요.

  4권을 읽기 전에 잠시 머리를 회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책을 집어들렵니다. 에고, 힘들다.

(2011년 10월 7일 ~ 10월 10일, 464쪽)

리뷰어 양손잡이(이정헌) junghun07@hanmail.net 블로그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