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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잔혹한 인생'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단 고디머 외]



내인생단하나뿐인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나딘 고디머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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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켰다. 언젠가는 승리하지 않겠는가?-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중 아들의 죽음 p. 294


 일단 이 책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8점의 양호한 점수가 나온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보기 위해 클릭하면 책소개가 나온다. "이 책은 199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글을 모은 것이며, 수익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이즈 구호 단체에 기부했다. 한국어판의 수익금은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 정말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본인은 그저 다른 책들처럼 사람들이 훈훈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풍경을 그려주면서, '아이들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단다' 운운하며 마지막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를 화려하게 그려놓는 책인 줄만 알았다. 사실 수익금도 에이즈 구호 단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백혈병 아이들을 위한 것인 줄 착각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서문에 길게 쓰는 것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뻔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기 위해서이다. 뭐 어쨌던 그런 내용인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기 위해 쭉 펼쳐보았다. 첫번째 소설에서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네번.. 째... 


 뭐지 이건 긍정적인 내용은 커녕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어.


 사실 이 책을 구입하신 분들은 단편들의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을 빌려준 분이 어떤 취향인지를 파악했어야 했다. 그 분도 사실 나처럼 하드코어 SF물과 고어물을 엄청 좋아하신다... 그래. 이 사람이 장래가 아름다운 소설을 좋아할리 없지. 굳이 단편들이 교훈을 주는 것이라 하면 이런 게 아닐까? '아이들아, 세상은 이렇게 더럽단다. 동년배의 친구가 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다른 친구를 보고 도망가는 노인들, 핸드폰 너머에서 죽어갈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연락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섹스를 하는 커플이 있지. 아들의 원수에게 돈을 주고 아들의 시신을 되찾아갈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있고, 거리에서 태어난 흑인 아이들은 부유한 백인 가정에 팔아치워진 다음 청소년이 되면 총으로 자살하기도 해. 너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런 곳이야. 한마디로,'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한 내용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단지 절망과 어둠만이 이 책 안 단편소설들이 내제되어있는 공통점은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선 사회적 소수자들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혹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야기하며, 보기 좋게 포장되어있는 세상을 사정없이 벗겨내고 그 그로테스크한 표면을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은 그 병의 속성상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빗다가 에이즈에 걸렸건, 혹은 외국에서 창부들과 놀다가 에이즈에 걸렸건 에이즈 환자는 '환자'이다. 심지어 타액으로 감염되기 때문에 악수쯤으론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병원 내 다른 병에 걸린 환자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 자리까지 오른 문학가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굳이 내 생각을 표현하자면, 아마도 나딘 고디머를 포함한 이 작가들은 좋았던 나빴던간에 인생은 '단 하나뿐이기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코끼리를 만지던 장님들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한 장님은 코를 만지고 있고, 또 다른 장님은 귀를 만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장님들은 코의 감촉과 귀의 감촉이 각각 코끼리 '전체'에 해당한다며 말다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의견을 통합한다면, 즉 각각 만지고 있는 각 부위의 감촉을 배열한다면 코끼리의 윤곽이 잡혔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나딘 고디머는 현대 작가들의 단편들을 배열해서 '세상'이라는 큰 윤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것이 어렴풋이 보인 듯하다. 결국, 사회적 소수자이던 사회 부적응자던간에 각각 인생을 경험했고,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차별'과 '패러다임'으로 눌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도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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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