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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인간이 천사처럼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은 의무때문인가' [의무의 희생자: 외젠 이오네스코]


의무의희생자
카테고리 인문 > 인문고전문고
지은이 외젠 이오네스코 (지만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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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밤에, 혼자가 될 거야. 진창에...- p. 53

 매우 짧은 내용이지만, 간만에 생각이 많아지는 책을 빌리게 되었다. 한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어느 경찰관이 집으로 들어온다. 그는 부부의 집에서 예전에 세들었던 말로란 사람을 찾으러 경비에게 갔으나 허탕을 쳐서 옆에 있는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매우 강압적인 성격의 경찰관이 이 집으로 들어와 나약한 성격의 남자 슈베르에게 말로를 찾으라 협박하면서 전개는 급격히 흘러간다. 슈베르는 결국 마지못해 시키는대로 의식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다소 프로이트적인 설정이 돋보였다. 사랑받지도 못하고 버려진 자신에 대한 연민, 부모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과거의 온갖 고행을 다시 겪은 슈베르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으나 다시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경찰관의 명령에 따라 말로란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게 그의 지상에서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말로라는 사람을 기억해내야 하는 일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서 할 수도 있었던, 어쩌면 슈베르에게 더욱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결국엔 경찰관은 살을 포동포동 찌워서 날아가지 못하도록 슈베르에게 빵을 억지로 먹인다. 그리고 그가 거부하려는 몸짓을 보이면 폭력을 행사한다. 슈베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에겐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의 사람이 잘 되면 그를 다시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못된 심보가 있게 마련이다. 

 

 왜 '말로'를 찾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뒷배경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경찰관도 '말로'라는 사람을 찾으라는 명령만 받았지, 왜 찾아야 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명백한 결과도 모르는 목적으로 인해 수단이 쓸데없이 장황해지고, 잔혹해졌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의무는 무엇일까? 고작 폭력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의문을 제기해본다. 세상에는 수많은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대학교에 합격해야 할 의무,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할 의무 등등. 그것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조차 프로그램에 맞춰서 행동한다. 사람들이 전부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채 행동한다는 시나리오는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실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시위를 할 경우, 법을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들조차 '의무의 희생자'라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해 24시간 근무를 서야하고, 길바닥에서 자야하며, 맛없는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거대하게 보자면 전쟁이 그렇다. (부수적으로 자기네들의 잔인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있겠지만,) 미국은 환경대체에너지로 충당할 수도 있었던 이라크 석유를 뽑아가기 위해서 엄청난 전쟁을 벌이고 이라크의 민간인들을 수없이 죽였다. 그렇다면, 이 '의무'란 것은 대체 언제부터 모든 사람들을 속박하고 희생자로 만들 만큼 거대해진 것일까? 몇몇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의무'는 위에서 99%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1%의 부호들이 만든 쇠울타리이다. 하지만 그 부호들마저 피해자라는 설정이 가능한가? 아니면 그것은 공기 중에 나돌며 숨쉴 때마다 우리 뇌를 틀어막는 하나의 비생명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질문은 연극대본에서 답이 지정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극은 그저 물음표를 제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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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