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고 정리한 책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반면 정리 수준에 대해서는 제대로 옮겨졌는지 확신이 없다. 아마도 이 책이 텍스트를 시야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초첨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읽어보고 만족스럽다면 책으로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용 반복도 많은 편인데 이는 오히려 계속해서 상기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좋았다. 아마 그게 '저자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제 3부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읽다 - 슬로 리딩 실천편’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작품과 예문을 가지고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예문이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발췌하고자 했으나, 생각해보면 가능치 않은 목표였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책을 구조화 해서 읽는 것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p.83~87과 p.201~208는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발췌가 읽는이가 이해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된다.
이하 요약이다.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해 의외로 무신경하다. 단순히 글을 읽는 행위와 책을 읽는 행위는 다르며 운전이나 요리처럼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을 알면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할 목적으로 썼다. 그 기본 방침은 ‘슬로 리딩’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속독에는 철저히 반대 입장을 취할 것이다.
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책을 빨리 읽으려면 자연히 빨리 읽을 수 있는 얄팍한 내용의 책으로 손이 가기 마련이다. 반대로 천천히 읽으려 하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책을 천천이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서에도 비결이 있다. 이 책은 그 비결에 대해 쓴 책이다.
슬로 리딩이란 차이를 낳는 독서기술이다. 차이란 속도나 양의 차이가 아니라 ‘질의 차이’를 말한다. 사회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책도 그에 맞춰 빨리 읽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책만큼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찾아낸 느긋한 독서시간은 인생의 여유가 될 것이다. 물론 슬로 푸드가 먹고자 하는 원시적 욕구도 충분히 만족시켰듯이 슬로 리딩 역시 지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란, 단순히 피상적인 지식으로 인간을 꾸며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그 사람을 바꾸어 사려 깊고 현명하게 만들며 인간성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을 뜻한다. 무작정 활자를 좇는 빈약한 독서에서, 맛을 음미하고 생각하며 깊이 느끼는 풍요로운 독서로 나아가자.
제 1부 양에서 질로의 전환 - 슬로 리딩 기초편
슬로 리딩이란 무엇인가?
'슬로 리딩'이란, 한 권의 책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다. 꼼꼼하게 책을 읽는다는 의미로 ‘숙독', ‘정독’ 이라는 말이 있는데, 슬로 리딩이란 그러한 독서 태도를 포괄하는 의미로 쓴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시점에서 읽는 법, 작가가 된 기분으로 읽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독서를 지금보다 즐겁게 하고 싶다면 먼저 작자가 준비해둔 장치나 고안을 잘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읽은 이들이 자신의 책을 슬로 리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우리는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책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옛날 사람들보다 지적인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나 헤겔이 평생 동안 읽은 책의 권수가 지금의 기준으로 적다고 그들을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슬로 리더' 였다. 여러 가지 타입의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독서량은 자신이 무리 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범위, 즉 슬로 리딩이 가능한 범위로 충분하며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 정보의 항상적 과잉공급사회에서 진정한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향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일/시험/면접에도 도움이 된다
슬로 리딩은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술이다. 슬로 리딩을 익히게 되면 실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 설령 속독이 필요한 경우라도 어떤 점을 주의해서 읽어야 하는 지 알기 때문에 오독을 줄이고 뜻하지 않은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히 기름기이다
한 달에 책을 백 권 읽었다느니 천 권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것은 빨리 먹기 대회에서 1등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그건 머리에 군살만 쌓는다. 그보다 책 한 권, 단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충분히 매력을 맛본 사람이 독자로서 더 많은 지적인 영양을 얻을 수 있다. 단순한 지식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다 깊은 이해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슬로 리딩의 출현은 정보화 사회에서 맹스피드로 전달되는 피상적인 찌식을 보충한다는 의미에서 반동이기는커녕 현대의 필연이다.
의사소통으로서의 독서
독서의 재미 중 하나는 읽은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독서는 책을 다 읽었을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속독은 독서를 마친 시점에서 끝내버리는 독서법이다. 슬로 리딩은 독서 그후를 살리는 독서법이다.
속독책은 ‘자기계발서’였다
속독책은 자계발을 목적으로 삼고, ‘잠재능력’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고 궤변에 가깝다. 슬로 리딩은 오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의 깊이를 더해준다. 견실하고 착실한 체험으로서의 독서이다. 독서는 ‘작자’라는 이름의 타자와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보다 열린 인간이 되게 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의식적’으로 충분히 사고를 거듭하면서 슬로 리딩하는 것이다.
왜 소설은 속독할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명작은 속독으로는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소설에 다양한 ‘노이즈'가 있다. 노이즈는 소설을 소설답게 해주는 핵심이다. 플롯(줄거리)에만 관심이 있는 속독자에게 소설 속의 다양한 묘사와 세세한 설정은 때때로 무의미하고 이해를 방해하는 혼입물로 느껴질 것이다.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자. 두 사람의 인간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경우에 따라 헤어진다. 그 일련의 관계의 양상이 소위 ‘연애’이며,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골격만 추려낸다면, 그 연애는 아무 맛도 재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세부를 버리고 주요 플롯으로만 환원하는 독서법을 그만두고, 오히려 플롯에서 비어져나온 세부를 응시해야 할 것이다.
몽테스키외와 포도주
누구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삼권분립을 주장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저서 <법의 정신>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이십 년의 세월을 소비했다고 한다. 스위스의 비평가인 장 스타로뱅스키는 "<법의 정신>는 몽테스키외의 붉은 보르도(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다”라고 말했다. 일류 지성의 소유자가 이십 년이나 걸려 생각한 것을 어떻게 한두 시간 듬성듬성 읽고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최상의 보르도를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과 같은 부끄럽고 천박한 짓은 아닐까? 물론 쓰는데 이십 년이 걸렸다고 이십 년에 걸쳐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이십 년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사상서나 철학서는 모두 저자의 오랜 세월 끈기 있는 사고의 산물이다. 누구든 금방 ‘이상하다’라고 느낄 만한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 계속 생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때는 자신을 의심해보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비로소 책은 자신의 비밀을 조금씩 밝혀주기 시작할 것이다.
‘빠른 일’은 왠지 믿을 수 없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신속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꼼꼼함이 중요해진다. 경이로운 속도로 일을 척척 해치우는 것은 우리의 꿈이다. 그러나 일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국면에서 신속한 판단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준비과정 격으로 상황을 꼼꼼하게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신뢰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신문도 슬로 리딩
한가지 신문만 매일 속독으로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늘 여러종류의 신문을 읽으며 그 차이에 민감해져야 한다. 한 가지 뉴스가 어디에 어느 정도의 지면을 차지하며 게재되어 있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각 신문사의 입장차를 시각적으로도 선명하게 이해하게 도와준다. 신문사마다 각 사안에 따르는 논조를 확인해두면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점은 항상 복수화된다. 이는 읽고 쓰는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위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이 되기도 한다.
제 2부 매력적인 ‘오독’의 권장 - 슬로 리딩 테크닉편
‘이해율 70퍼센트'의 덫
속독책에 의하면 속독에 으로 얻을 수 있는 이해율은 내용의 70퍼센트 정도이고, 이는 천천히 읽었을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어떻게 측정한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그게 같은 70퍼센트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슬로 리딩의 경우 문맥을 차례로 더듬어 가기 때문에 ‘A는 B이다’라는 내용을 ‘A는 B가 아니다’라고 정반대로 읽는 결정적인 오독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속독의 경우는 단어만 죽 훑어보고 조사나 조동사는 경시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단어를 연결해버려,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 파악조차 실패할 위험성이 크다. 속독의 위험성은 바로 이렇게 70퍼센트를 이해했다고 해도 그 애매한 30퍼센트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사, 조동사에 주의하라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어휘력보다도 조사, 조동사의 사용법에서 드러난다. 동사와 명사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것도 조사와 조동사에 달려 있다. 속독의 제일 큰 문제점은 명사나 동사를 파악하는 데 급급해서 조사와 조동사에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와 ‘나는 사과를 좋아하기는 한다’는 문장의 뉘앙스가 다르다. ‘A는 B이다’라는 단순한 예문만 봐도 의미상 중요한 것은 ‘A’나 ‘B’가 아닌 ‘는’과 ‘이다’이다. 아울러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좋아하는 작가의 조사와 조동사 사용법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사전 찾는 습관’을 기른다
모국어는 대부분 어느 정도 의미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대충 이해했다 생각하고 넘어가곤 한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 의미를 확인해보면 터무니없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식을 심화하려면 귀찮아하지 말고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잘 모르는 말이 나오면 잠시 멈추어 사전을 찾아보는 것, 그것은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작자의 의도는 반드시 있다
작자 입장에서 보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논문이든, 기본적으로 작품의 한 단어 한 구절에서 부터 작품 전체에 이르기까지 ‘읽는 사람이 이렇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작자의 의도’가 반드시 있다.
창조적인 오독
오독에는 단순히 말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빈곤한 오독’과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자의 의도’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풍요로운 오독’이 있다. ‘오독력’은 책의 가능성을 확대시켜준다. 그러나 ‘작자의 의도’를 완전 무시하고 언제나 ‘오독력’에 의지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도 늘 독선적인 결론만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독자로서의 가능성을 편협하게 하는 독서법이다.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의 생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오독’을 즐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왜’라는 의문을 갖자
'내가 작가라면…’ 하는 식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은 슬로 리딩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읽는 것을 잠깐 멈추고 ‘왜?’라고 생각해본다. 그런 의문을 갖는 순간 책은 그 사람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살짝 알려주기 시작한다. 좋은 책에는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갖고 책을 읽는 것은 깊이 있는 독서 체험을 위한 첫번째 방법이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듯 책 또한 독자를 선택한다. 의문을 갖지 않는 독자에게 책은 영원히 입을 다물어 버릴 것이다.
앞 페이지로 돌아가서 확인하자
최근 연구를 통해 인간 뇌의 단기 정보처리능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장기기억과 단기기억 사이를 왕복하면서 정보를 처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방금 전에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앞페이지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라. 오히려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정말일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모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책을 계속 읽어나가더라도 이해도는 반감된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어나가는 게 좋다.
보다 ‘앞으로’가 아니라 보다 ‘깊게’로
작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항상 점점 더 깊이 말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으면, 실은 열 권 스무 권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찬가지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비유도 무엇도 아니다. 실제로 그 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열 권 스무 권이라는 책의 존재가 필요하며, 우리는 슬로 리딩을 통해 그들 존재를 향해 열린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지독(느린 독서)’이 곧 ‘지독(지혜로운 독서)'
책을 느리게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생각'하며 읽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라는 행위야말로 독서에서 가장 중요하다. 속독이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독서이다. 단순히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독서는 무의미하다.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야 말로 독서의 본래 목적이다.
소리 내어 읽지 않는다
최근 들어 ‘뇌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음독이 주목받고 있다. 건강법으로서는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음독은 권하고 싶지 않다. 슬로 리딩에 가장 적합한 것은 ‘묵독(속으로 읽는 독서)’이다. 음독의 문제는 '잘 읽는’ 것에 의식을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용에 대한 주의력이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음독의 의식은 ‘앞으로 더 앞으로’이다. ‘깊이 더 깊이’라는 느낌은 없다. 음독을 하면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읽거나 생각할 시간을 갖거나 앞 페이지로 돌아가는 슬로 리딩의 기본 테크닉을 사용하지 못하고 술술 막힘없이 읽어나가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구석구석까지 음미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묵독을 해야 한다.
베껴 쓰기는 비효율적이다
음독과 마찬가지로 베껴쓰는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난점이 있다. 만약 경전 베끼기처럼 일종의 정신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그 문장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반복하여 묵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남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읽는다
읽은 후에 누군가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책을 읽으면 잘 모르는 부분은 다시 읽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해력도 높아진다. 사람들은 의외로 현재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어렴풋하게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꼼꼼하게 슬로 리딩했다고 생각해도 책을 덮으면 '어라, 무슨 내용이 있었지?’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블로그 등에 글로 감상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막상 쓰려고 하면 반드시 막히는 부분이 나온다. 그곳을 메우면 내용의 전체적인 상이 확실하게 정착된다.
복수의 책을 비교한다
책을 읽다보면, ‘아, 이건 다른 책에서 봤던 내용인데’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귀찮아하지 말고 전에 읽은 책을 찾아 펼쳐보자. 대부분 양자가 얼마나 다른지, 자신의 착각을 깨닫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영향으로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왜곡되기도 한다.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 그 차이를 자세히 확인해봄으로써 양자의 의미가 보다 더 선명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비슷하다’정도로 넘어갈 때보다 독자에게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제공해줄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같은 키워드를 서로 다른 작품에서 각자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하면 내용의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 비교문학적으로 책을 읽으면 보다 분명하고 정밀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밑줄과 표시
마음에 걸리 곳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는 습관을 들이면 내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문장을 읽고 중요하다고 생각해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면 결과적으로 그 부분을 두 번 읽은 셈이 된다. 다시 그 페이지를 펼쳤을 때에는 어디가 중요하고 어떤 논지로 이루어졌는지 그것들을 참고하여 기억해낸다. 표시 방법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본문에 표시하는 방법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 긋거나 「 」 표시하기
키워드가 될 만한 단어에 동그라미○나 사각형□으로 감싸기
-역접 접속사 마름모◇ 표시. 그러나/그렇지만/하지만/그래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생각(대부분 통속적 견해)->그러나◇->작자의 의견)
-첫째/둘째, 원래/덧붙여서, 우선/게다가 등은 병렬적 사실 열거. 동그라미○ 표시
'내 처지'로 바꾸어 본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은 인생의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트레이닝이다. 작자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의 자유는 진정한 독서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며, 주체적으로 참가하는 독서의 방법이다.
최근 뇌 연구에서 인간의 기억이 정착하려면 수면이 불가피함이 밝혀졌다. 시험 공부 중에 깜빡 잠들어버린 다음날 시험결과가 의외로 잘 나오는 경우가 있다. 기억에 남는 독서, 인상에 남는 독서를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천천히 읽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재독(다시 읽기)’이야말로 가치가 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독서에는 시기가 있다. 책과의 절묘한 만남을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말한다.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은 평생 단 한 번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오 년 후, 십 년 후에 가끔씩 다시 읽어보라. 그 인상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성장의 흔적을 실감할 것이다. 사진이나 동영상 기록이 외관의 변화를 깨닫게하듯, 내면의 변화를 실감나게 해주는 것은 책이다.
제 3부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읽다 - 슬로 리딩 실천편
*책은 3부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를 비롯한 여덟 작품을 활용한 슬로 리딩 실전편이다. 예문없이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발췌하였다.
회화 속의 의문문에 주의한다.
소설을 읽을 경우, 등장인물이 ‘의문문’으로 장면이 나왔을 때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자에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의문이나 반론에 대답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를 위한 장소를 어딘가에 설정하고 싶어한다.
‘위화감'에 주의한다
위화감이 드는 부분은 작자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중요한 말을 해두고 싶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필요불가결하며, 그럴 때 일부러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위화감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위화감이 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소설로서 ‘서툴다’고 폄하해버리고 마는 것과 그 억지스러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천양지차를 초대한다.
작품의 주제를 현대로 끌어들여 비교해서 생각하는 것 역시 작품의 독해에 깊이를 제공할 것이다. 옛날과 비교해봐야 비로소 현대라는 시대도 보이는 법이다.
‘시대배경'과 ‘5W1H’를 생각한다
5W는 who(누가), when(언제), where(어디서), what(무엇을), why(왜), 1H는 how(어떻게)이다. 우리는 작품 내의 5W1H와 작품의 성립에 관련되는 5W1H를 모두 의식해야 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일부러 그런 전제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불명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므로 이 역시 기억해두자.
다시 전체로
작품을 읽고 한 번 만에 다양한 관점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은 즉시 전체를 다시 읽어보기를 바라다.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연스러움'은 장면전환의 표시
갑자기 화자간의 호칭이 바뀐다던가(선생님->○○씨) 그 변화의 의미를 강화한다. 이 역시 독자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독자에게 의외의 인상을 주어 다른 주제가 전개 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생각하는 틀’을 명확히 한다
작자는 주도면밀하게 사건과 상황을 설정한다. 테마소설에서는 특히 설정을 하나만 바꿔도 장면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이럴 때는 알기 쉽게 번호를 붙이며 읽어보기로 한다. 작자는 때론 극한 상황으로 설정함으로써 문제를 첨예하게 부각시킨다.
독자를 ‘잠깐 감정 고르기’로 유도한다
슬로 리딩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인 읽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에는 여러가지 형태로 여백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작자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감정 고르기이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펼쳐 다양하게 사색하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여유있게 준비해둔 것이다. 그곳은 독자가 자유롭게 채워야 한다.
‘감정의 효과’를 놓치지 말자
심상풍경을 묘사할 때는 내면을 묘사하는 수식어가 종종 외부 상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일부러 내면상태와는 반대의 풍경을 가지고 와서 대비를 강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것이든 인상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시간적 배경이 해질녘이라면 일련의 사건이 종결될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조건을 바꾸어 다시 읽는다
소설 속의 조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검증하는 것은 그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지식, 즐거움, 재미, 감동)을 될 수 잇는 한 많이 맛보기 위해 필요한 중요 절차이다. 여러 가지 다른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하나의 소설은 얼마든지 풍부해질 수 있다. 소설은 현실과도 다르고 또한 영화 같은 장르와도 달라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페이스를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추어 조건을 다양하게 즐기기에 알맞은 장르이다.
‘첫 문장’에 의미가 있다
작자는 첫 문장을 쓰는 게 최고의 심혈을 기울인다. 고로 작품 주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첫 문장은 의식적으로 작품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일단 생각해두자. 첫 문장을 머리 한구석에 담아두고 읽는 것은 슬로 리딩의 중요한 테크닉이다.
‘형용사와 부사’에 착목한다
카프카의 소설은 5W1H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지만 그만큼 상황 설명은 의외로 상세하다. 이와 같이 논리적인 접근이 어려운 작품의 경우 형용사와 부사에서 환기되는 이미지를 근거로 의미를 더듬어보면 의외로 작품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형용사와 형용동사, 부사는 그 자체보다도 왜 다른 수식어는 안 되었는지를, 특히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그 필연성이 드러난다. (활발하고 따뜻한 <->뻣뻣하고 차가운)
‘정면전개의 의미’를 생각한다
'한번은 저녁 무렵이었다’와 ‘여름 저녁 무렵’은 when(때)를 알려준다. 문제는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같은 작가가 반복해서 다루는 장면/테마/키워드를 작품마다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슬로 리딩의 중요한 테크닉이다.
대담하게 해석하는 용기를 가질 것!
작품에 담긴 수수께끼를 늘 기억하고 있으면 책을 읽고 있지 않을 때도 머릿속에서 계속 슬로 리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품을 다시 읽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독력’을 즐긴다
소설을 읽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우리는 국어 시험의 괴로운 기억 때문에 독서도 정답에 맞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책을 멀리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국어 시험은 출제자의 ‘오독력’의 독해이다. 작자의 의도를 찾아내는 것은 확실히 의의 있는 일이지만, 반드시 그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작자의 의도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과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하는 두 가지 방법을 항상 병행하며 책을 읽고, 작품에 따라서는 그 비중을 바꾸는 것이 아마 가장 무난한 전술일 것이다. 소설가가 독자의 자유를 일정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더 제한할 수 있는 표현 장르를 선택할 것이다.
느낌은 몇번이고 바뀔 수 있는 것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상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이다. 읽고 난 후의 느낌에 대해서는 ‘지금의 자신은 이렇게 느꼈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 다시 바뀌겠지’정도로 항상 ‘일시적 느낌’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이것을 ‘최종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 읽을 것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또한 자신의 감상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생각하며 관련 서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변화한다. 사물을 보는 방법도 바뀌고, 사고방식도 바뀐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같은 책을 몇 년 후에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이 바뀌었다면 그만큼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며 그 몇 년 동안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신(scene)이 들어 있을까?
전개 방식에 위화감을 느끼는 곳을 만나면 그 곳이야말로 눈여겨봐두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한 신에는 작자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억지로 집어넣고 싶었던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상의 대결’로서의 대화
러시아의 문예비평가 바흐친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논하며, 등장인물이 각각 완전히 독립된 사상을 갖고 그들이 대화를 통해 대결하는 타입의 소설을 폴리포니 소설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모험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사건에 등장인물을 차례로 끌어들이는 것은 인물들을 도발하여 초조하게 만들고 시견을 겪게 하여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표현과 플롯 설정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대화 형식을 채용함으로써 논점이 더욱 선명해진다.
‘세세한 기술의 효과’를 감지한다
대화를 '듣는 것'과 '읽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목소리의 유무이다. 글로 씌어진 대화는 부족한 요소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어투가 종종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다(혹은 반대로 부드러워진다). 이는 어미 변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설의 대화를 음독할 때, 눈으로 좇아 읽을 때에는 몰랐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때문이다. 작자는 대화에 설정한 간격을 독자가 알 수 있도록 ‘…..’나 ‘——'와 같은 기호를 사용하거나 풍경묘사나 심리묘사를 삽입하기도 한다. 제삼자가 대화에 끼어드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러한 간격 뒤에는 중요한 발언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작자로서는 그런 발언을 독자가 가볍게 읽어 넘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대화를 끊고 주의를 촉구하는 것이다.
'주어의 생략’에 주의한다
일본어는 영어와 달리 주어를 자주 생략하여 술어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주어를 받는 격조사가 ‘은/는’인지 ‘이/가’인지를 확인해봄으로써 그것을 특징할 수 있다. 외국어로 번역해보는 것도 주어를 특정한다는 의미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일인칭 소설’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은 아직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화가 나서 무시해버렸어!”이라는 일상의 대화는 엄밀히 말하자면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았지만’ 일것이다. 우리는 설령 문법상으로는 ‘사실’로서 말하더라도 화자가 일인칭인 이상 그것이 ‘추측’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일인칭 소설에서 그것이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마음대로 넘겨 짚은 것인지, 상황으로 봐서 명백한 것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우리는 대화 중에 어느 정도 폭력적으로 상대의 심정을 가정하곤 한다. 일인칭 소설에서는 얼핏 보기에 작자로서의 초월적 시점이 갑자기 개입한 느낌을 주는 삼인칭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한 언급이, 실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의 일반적인 전제에서 유래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자주 있다. 말을 통해 타자와 소통할 때는 그것이 늘 이러한 ‘사실’과 ‘추측’ 사이의 애매한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테마를 설정하여 ‘다른 작품과 비교’해본다
어떤 책을 읽다가 다른 책이 떠오르면 그것을 비교하며 유사점과 상이점을 찾아내는 것 중요한 테크닉이다. 이런 경우 무작정 두 작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테마를 설정하여 비교해보자.
문장 표현을 ‘체감한다'
작가들중에 신체감각으로 받아들인 것들을 논리 전개와 상관없이 독자의 심금을 직접적으로 올리는 말로 바꾸는데 능한 사람들이 많다. 그와 같은 체감적 표현을 담겨 있다. 지카마쓰 몬자에몬의 작품 등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빚의 증가로 체감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수업을 점증법이라고 한다.
‘이미지의 중층성’을 놓치지 말자
인상적인 비유는 중층적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인쇄된 것과 같다.”에서 '인쇄한 것 같은' 이라는 비유는 ‘완전히 똑같다’라는 이미지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다음 문장이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생활의 실감은 같지 않다. 인쇄를 많이 하면 잉크가 흐려지는 것처럼, 최근의 나는 그같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이전보다 희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비유가 먹혀들었다는 것은, 제출된 이미지(여기에서는 ‘인쇄’)가 비유하고 있는 현실에 중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피상적인 비유란 이미지 중 극히 일부만이 살짝 겹칠 뿐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대응하는 요소가 많지 않은 경우이다.
*중층重層 : 겹겹으로 층을 이룸
‘작자에 대한 반감’이 머리를 작동시킨다
어느 소설이나 그렇겠지만, 작자와 독자 양측의 등장인물에 대한 느낌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입장에서는 주인공이 기대대로 행동해주지 않아서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 이렇게 썼을까 하는 의문은 설령 그것이 반감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건전한 것이다. 그 의도를 탐구하는 것은 작자라는 타자를 이해하는 길로 통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집필하는 동안은 분명 작자만의 것이지만 발표 후에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어떤 사건에 직면한 등장인물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생각을 할지 대해 작자 자신도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당연히 더 적합한 다른 언동이 있을 수 있다.
싫증이 나면 쉰다
읽다가 지쳤을 때는 당연히 책을 덮어야 한다. 억지로 읽으려고 해봤자 절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기는 커녕 필요와 불쾌감은 내용 자체를 왜곡시켜버릴 것이다.
어려운 평론은 ‘보조선을 긋는다'
역접 접속사(ex. 그러나 등)에는 마름모◇ 표시해둔다.
역접 접속사의 앞부분은 부정되어야 할 통설이무로 ( )로 묶는다.
주어는 동그라미○ 로 감싼다. ‘그것은’ 등의 대명사는 원주어를 찾아 함께 선으로 연결한다.
논지가 전개되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오른삼각형 ▷표시를 한다.
주요 키워드를 사각형□으로 감싼다.
<예시 : 본문에 보조선을 그은 모습>
‘상식에 대한 도선’을 시각화한다
시각적으로 더 선명하게 하고 싶을 때는 삼색펜을 활용한다. 메모는 검은색, 일반론은 파란색, 저자의 이론은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일반론’이란 독자의 목소리를 끌어들인 것이며, 이 파란색 대 빨간색의 대결은 사회의 ‘상식’에 대한 필자의 도전을 시각화 한다. 접속사에 착목하여 보조선을 그으며 슬로 리딩하면 일견 속수무책일 듯한 철학서도 의외로 이해가 잘될 것이다.
문장을 쓸 때 참고로 삼는다
슬로 리딩을 통해 논의의 구조를 파악해두면 자신의 문장을 쓸 때 참고가 된다. '일반론->부정->자신의 의견’의 전개는 설득기술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일상 대화나 비즈니스 자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일반론’의 자리에 상대의 주장을 넣으면 다양한 국면에 응용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두어야 한다. 이를 좀더 논쟁에서 매끄럽게 응용하면 ‘상대의 의견->이해->그러나 부정->자신의 논지 전개’라는 형식이 된다.
나오는 말
굳이 항목을 세워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해설을 해나가다보니 너무 거창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후 슬로 리딩에 도전해보면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포인트를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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