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준의 독서노트]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Category : 이야기Ⅰ/독서노트 Date : 2015.12.28 16:37 Writer : 송막내


연휴에 춘천 우문하우스에서 쉬면서 읽은 책이다. 유시민은 저자 소개가 필요 없는 작가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 자체에 대한 호불호도 클 테고. 20대부터 많은 베스트셀러를 써온 작가로서 스스로 경험한 글쓰기 훈련부터 나름의 노하우까지 읽기 쉽게 정리해놨다. 뉴스의 한복판에 있던 분이라 중간중간 나오는 본인의 예시도 읽는 이가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 유시민 작가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분은 그게 역효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목차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4장에 포함된 '전략적 독서 목록’은 부록 형태로 맨 뒤로 옮겼다. 책 주요 내용은 훨씬 적은 분량으로 담을 수 있을 거 같은 책이기도 하다. 요즘은 옮겨 적고 보면 이게 필사인지 발췌인지 요약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때로는 분량이 많다. 결과적으로 핵심만 담았다기에는 지나치게 분량이 많고, 원문의 생생함을 살리기에는 부족한 정리가 된다.

내가 끌리는 데로 정리하다보면 이렇게 되기 일쑤다. 나만 보는 글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닌, 이렇게 책을 정리하면서 매번 갈등을 느낀다. 언젠가 나와 잠재적 블로그 구독자 모두 만족하는 독서 노트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정리 시에 지키는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가급적 책 전체적으로 생략 없이 다룰 것(나의 세부 관심사와 별개로). 둘째는 가능한 목차에 충실할 것.

이 책에서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실천하고 있는 ‘발췌 요약 독서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요즘은 나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방식을 책에서 만나기도 하고, 또 책에서 만난 방법을 실천해보기도 하면서 책의 재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를 알아가는, 만나가는 기분이다. 요즘의 마음 상태를 짧게나마 표현하고 싶었는데 전달이 됐을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더 명확해지면 따로 글로 남길 날이 있을 것이다. 암튼 이 글의 주인공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다. 주제로 돌아가자.

이하 요약이다. 기독자가 아니라면 아래 링크의 도서정보(특히 목차)를 확인 후 읽으시길 추천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국내도서
저자 : 유시민
출판 : 생각의길 2015.04.10
상세보기


1. 논증의 미학

말이든 글이든 원리는 같다. 언어로 감정을 건드리거나 이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사유 능력에 기대어 소통하려면 논리적으로 말하고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러면 논증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효과적으로 논증하면 생각이 달라도 소통할 수 있고 남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며 내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생각이 곧 말이고, 말이 곧 글이다. 생각과 감정, 말과 글은 하나로 얽혀 있다. 그렇지만 근본은 생각이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각을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생각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 기준을 바꾸고 감정에 휘둘려 논리의 일관성을 깨뜨리면 산문을 멋지게 쓸 수 없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면 세 가지 규칙을 꼭 지켜야 한다. 평소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이 세 가지 규칙만 잘 따라도 어느 정도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

우리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취향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취향을 표현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취향에 도덕적 가치 판단이 들어가면 그 판단 근거를 댈 의무, 자신의 주장을 논증할 책임이 생긴다.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단순한 취향 고백과 논증해야 할 주장을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이것이 논증의 미학을 구현하는 첫 번째 규칙이다.

주장은 반드시 논증하라

말이나 글로 타인과 소통하려면 사실과 주장을 구별해야 한다. 사실은 그저 기술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옳은 주장이라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논증하지 않고 주장만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논증의 미학을 실현하는 두 번째 규칙이다. 논리학이나 수학에는 공리라는 것이 있다. 증명하지 않고도 참이라고 인정하는 명제가 공리다. 글을 쓸 때는 사실을 수학의 공리처럼 대해야 한다.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 주장은 반드시 그 타당성을 논증해야 한다.  

어느 영화감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대한민국 최고 미남은 장동건이다.’ 형식만 보면 마치 사실을 기술한 문장같지만 이는 주관적 휘향을 고백한 것일 뿐이다. “난 남자 영화배우 중에 장동건이 제일 좋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음, 그래? 난 송강호가 제일 좋은데.” 만약 이 영화감독이 단순히 취향을 넘어 무언가 주장하고 싶다면 주장에 어울리는 형식을 갖추어 말해야 한다. 

'나는 장동건을 대한민국 최고 미남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주장이다. 따라서 논증해야 한다. 장동건을 최고 미남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나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 주장은 보통 이런 식으로 논증한다. 먼저 미남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리고 장동건의 얼굴이 다른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그 기준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럴 경우 다른 사람은 그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반박할 수도 있다.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남의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기준을 제안하는 것이다. 미남의 기준을 받아들이면서 반박할 수도 있다. 예컨대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 장동건보다 더 정확하게 그 기준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장동건을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자기의 주장을 논증했기 때문이다. 그가 애초에 아무런 논증도 하지 않은 채 장동건이 최고 미남이라고 주장만 했다면 어땠을까?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다. 결국 논증하지 않은 주장은 반박할 수 없고, 그런 주장은 주장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논증 없는 주장으로는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논증의 미학이 살아 있는 글을 쓰려면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고 논증 없는 주장을 배척해야 하며 논리의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미움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논증의 미학을 애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엄격한 논증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논증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재주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집,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주제에 집중하라

글을 쓸 때는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엉뚱한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하고 관련 없는 문제나 정보를 끌어들이지 않아야 한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유, 애초에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잊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으로 논리를 밀고 나가야 한다. 이것이 논증의 미학을 실현하는 세 번째 규칙이다. 

이 규칙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주관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글을 쓸 때 감정에 빠지면 길을 잃기 쉽다. 운동경기 관전평이나 맛집 기행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본다. 어떤 선수나 특정한 맛에 대해 매우 강력한 호불호를 가진 사람이 그 감정에 빠지면 쉽게 ‘논점 이탈의 오류’를 저지른다. 예컨대 그날 경기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아니라 여러 해 사귄 모델과 헤어지자마자 새 애인을 사귄 걸 가지고 축구 선수 호날두를 비난한다든가, 재료와 양념을 제대로 소개하지도 않은 채 생선매운탕에 방아잎을 넣었다는 이유로 어떤 식당의 음식 전체를 혹평하는 것이다. 

감정에 휘둘려 저지른 사소한 실수가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 자신의 감정까지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말과 글로 논증하고 토론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 규칙을 지키면서 그을 쓰는 것은 훨씬 어렵다. 

2. 글쓰기의 철칙

누구든 노력하고 훈련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다. 논리 글쓰기는 문학 글쓰기보다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조금 과장하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노려간다고 해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유시민만큼 에세이를 쓸 수는 있다. 

글쓰기는 기능이다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글쓰기를 할 때는 만인이 평등하다. 잘 쓰고 싶다면 누구나, 해야할 만큼의 수고를 해야 하고 써야할 만큼의 시간을 써야 한다. 큰돈 주고 유명한 작가를 불러 스물네 시간 가정교사로 붙여 놓아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훈련만 한다면 선생님이 없어도 괜찮다. 글쓰기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헬스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아도 실제 몸을 쓰지 않으면 복근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작가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계속 쓰지 않으면 훌륭한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발췌 요약에서 출발하자

글쓰기를 하려면 텍스트 발췌 요약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거의 100퍼센트 발췌 요약’이었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발췌는 선택이고 요약은 압축이라 할 수 있다. 발췌가 물리적 작업이라면 요약은 화학적 작업이다. 그런데 어떤 텍스트를 요약하려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은 부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 효과적으로 요약하려면 정확하게 발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발췌 요약이라는 말은 요약이라고 줄일 수 있다.  텍스트 요약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남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남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이 쓴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요약을 잘하는 것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내게는 글쓰기 선생님이나 ‘롤 모델’이 없었지만 제법 괜찮은 훈련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회의 도서 목록과 토론식 학습 방법이었다. 나는 우연히 법대 소속이었던 ‘농촌법학회’에 가입했다. 신입생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 서클 공부방으로 쓰던 선배의 자취방에 모여 공부했다. 학습 방법은 평범하고 단순했다. 우리는 매주 한 권씩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읽었다. 각자 맡은 부분의 핵심을 추려 발표하고 선배들과 토론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공부하면서 텍스트를 요약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무슨 주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 실증적 근거를 신속하게 탐색하는 습관이 생겼다. 유럽 청년들은 우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서부터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 요즘 강남 학원가에 있는 대입 논술 전문 강사도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도서 목록이 다를 뿐이다. 

요약은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추려 논리적으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텍스트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독해력과 문장 구사력 그리고 요약 능력은 서로를 북돋운다. 독해력이 좋을수록 요약을 더 잘할 수 있다. 요약을 전제로 텍스트를 읽으면 독해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약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문장 구사 능력이 발전한다. 텍스트 요약 훈련을 할 때는 기왕이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교양서를 선택하는 좋다. 예컨대 4장에서 추천한 ‘전략적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읽고 요약해보는 것이다.

텍스트 요약은 혼자 해도 괜찮지만 여럿이 함께하며 더 좋다. 텍스트를 오독하거나 핵심을 잘못 파악할 경우 혼자 하면 깨닫기 어렵지만 여럿이 하면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철칙1

어떤 글을 잘 썼다고 할까? 문학작품은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그러나 논리 글은 다르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을 정할 수 있다. 나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쉽게 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동의할 근거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려면 다음 네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 그 주제를 다루는 데 꼭 필요한 사실과 중요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셋째, 그 사살과 정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넷째, 주제와 정보와 논리를 적절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첫째는 텍스트 독해, 둘째는 텍스트 요약, 셋째는 사유와 토론이다. 어떤 분야,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 논리 글쓰기는 이렇게 훈련할 수밖에 없다. 전공이 무엇이든 그런 방법으로 탄탄한 근육을 만든 사람이라야 인접 분야까지 넘나들면서 원하는 주제, 원하는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의 첫 번째 철칙은, 많이 읽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읽을수록 더 잘 쓸 수 있다. 문학작품은 감정과 정서를 직접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직관에 다가선다. 논리 글은 사실과 정보를 전달해 독자의 이성적 사고와 추론을 북돋우며 간접적으로 정서와 감정을 움직인다. 최종 목표는 공감을 얻는 것이지만 장르에 따라 경로는 다르다. 따라서 논리적인 글을 잘 쓰려면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사실과 정보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적절한 논리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정보와 논리 중에 스스로 창조한 것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책, 방송, 신문, 인터넷, 대화를 통해 얻는다. 정보와 논리만 그런게 아니다. 정보와 논리만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을 담은 어휘와 문장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정보, 논리 구사력, 자료 독해 능력, 어휘와 문장, 논리적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남한테서 받는다. 그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로는 책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 아는 게 많을수록 텍스트를 빠르게 독해할 수 있고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텍스트를 독해하고 요약하는 데 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그러면 글을 잘 쓸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그래서 많이 읽지 않고는 잘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의 철칙2

책을 많이 읽기만하면 다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일까?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내가 한자를 읽을 줄 알지만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한자를 읽을 줄 알아도 써보지 않으면 잘 쓰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고 말로는 잘 표현하는 사람도 글을 많이 쓰지 않으면 잘 쓰지 못한다. 여기에서 논리적 글쓰기의 두 번째 철칙이 나온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글쓰기 근육이 부실한 사람은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첫 문장을 잘 쓰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게 왜 그리 어려울까? 첫 문장은 그저 첫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자신있게 쓰려면 먼저 글 전체를 대략이라도 구상해야 한다. 그런 구상 없이 첫 문장을 쓰려면 설계도와 조감도 없이 무작정 집 짓기 공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막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서클에서 텍스트를 발췌 요약하는 훈련은 했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무엇인가 주장하는 글은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주장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문자로 옮기면 된다. 블로그에 정치, 영화, 축구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첫 문장은 이렇게 쓰는 게 좋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단문으로 일단 내지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단 내지르고 난 다음에 차분히 설명하면 된다. 첫 문장 쓰기는 어렵지 않다.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항소이유서>가 세상에 알려진 1985년 이후였다. 그때부터 1987년 말까지 약 2년 동안 숱한 성명서, 선언문, 홍보 전단, 팸플릿, 리플릿을 썼다. 자료를 보고 중요한 정보를 파악한 다음 핵심을 요약하고 우리의 주장을 덧붙이는, 재미는 별로 없고 스트레스는 아주 많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짧은 시간에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글 쓰는 일이 점저 수월해졌다. 글을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혹평과 악플을 겁내지 말자

논리적 글쓰기의 첫 걸음인 텍스트 요약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해야 효과가 있다. 자기 글을 자연스레 남에게 보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남에게 평가받는 것이 싫어서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 글이 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는 읽는 사람이 누구일지 미리 살펴야 한다. 글을 쓰고 나면 독자의 반응을 점검하고 타인의 평가와 비판을 들어야 한다. 다음에는 그런 것을 더 깊이 고려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견해를 기꺼이 듣는 편이다. 초고가 다 되면 편집자에게 보내 검토 의견을 요청한다. 어떤 의견을 내든 편집자들의 자유에 맡기되, 그 의견을 수용할 지 여부는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한다. 편집자들은 별 부담감 없이 아무 의견이나 다 내고, 나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면 몰랐던 오류를 찾아내고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 글을 자신의 인격으로 여기면 편집자의 수정 요구를 불쾌하게 받아 들일 수 있다. 작가한테서 그런 기운을 느끼면 출판사 편집자들은 말을 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게 된다. 만약 권력이나 돈을 가진 쪽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듣기 싫어 수정을 요구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견해는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

지금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돈을 들여 유인물을 만들 필요가 없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내가 쓴 글을 만인에게 보여줄 수 있고 실시간으로 독자의 반응을 점검할 수 있다. 글을 썼으면 남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혹평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혹평도 반갑게 듣고 즐겨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글과 인격을 분리하기가 수월하다. 운영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블로그를 개설하면 된다. 피차 익명을 쓰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글 비판을 인격 비판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내 글이 좋으면 수준 있는 댓글이 붙는다. 칭찬하는 댓글뿐만 아니라 비판하는 댓글도 수준이 높아진다. 댓글을 주의 깊에 읽으면 글솜씨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의미 있는 댓글에 답변을 붙여주면 더 좋다. 이것은 내가 책을 완성하기 전에 출판사 편집자들과 초고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  

3. 책 읽기와 글쓰기

텍스트를 요약하는 것은 논리적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요약을 하려면 텍스트를 읽고 이해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텍스트를 요약할 수 없다. 아기가 첫 걸음을 떼려면 먼저 혼자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발췌 요약이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면 텍스트 독해는 두 다리로 일어서는 것과 같다. 텍스트를 발췌하려면 먼저 독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독해력

독해는 단순히 문자를 알고 읽는 행위가 아니다. 독해는 어떤 텍스트가 담고 있는 정보를 파악하고 논리를 이해하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 정보와 감정을 특정한 맥락에서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이다. 독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텍스트를 읽고 더 넓고 깊게 이해하며 때로는 남들과 다르게 텍스트를 해석한다. 독해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텍스트를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개성 있게 요약할 수 있다.  

독해력을 기르는 방법은 독서뿐이다. 독해력은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의 수준을 좌우한다. 눈으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강연을 들을 때도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독해력은 체력과 비슷하다.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스포츠도 잘 할 수 없다. 독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글쓰기만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어떤 과제도 잘 해내기 어렵다. 

모국어가 중요하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몇십 명이 넘지 않는 혈연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둘 이상의 언어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의 뇌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의 뇌가 복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면 외국어를 배우려고 그 많은 시간과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말과 글의 집합이 아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어렵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잘하기 어렵다. 

번역서가 불편한 이유

번역서를 읽다보면 텍스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럭저럭 이해는 하지만 불편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번역서의 문장이 우리말답지 않다는 데 있다. 번역은 남의 말로 된 책을 우리말 책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문장의 분위기까지 제대로 전해주면 더 좋다. 

사람들은 직역과 의역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 논쟁을 벌이는데, 이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에 없는 외국어 문장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단어와 표현만 바꾸어놓고서 직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번역을 과연 직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틀린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뜻과 느낌이지 원서의 문장구조가 아니다. 문장구조를 그대로 둠으로써 원문의 뜻과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거나 오해일 뿐이다. 번역서든 아니든, 우리말 책은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써야 한다.

말이 글보다 먼저다

자녀가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언어적 자극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언어 능력이란 아는 어휘의 수, 문장구사력, 독해력, 문제의식, 논리적 사고 능력 등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시간 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 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선후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글이 말을 얽어매고 언어가 생각을 구속한다. 하지만 언어에 한정해서 보면 글이 아니라 말이 먼저다. 글을 쓸 때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 못 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찌찌’ ‘때때’ 같은 반쪽짜리 말을 가르치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아이의 뇌는 쉬운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느긋해진다. 더 많은 신경세포를 배치하고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어 더 효율적으로 교신하려는 노력을 덜하게 된다.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친숙한 문장으로 읽어줄 때, 아이의 뇌는 그 음성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추천도서 목록을 무시하라

독해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기르려면 책 읽기를 즐겨야 한다. 책에서 우리는 지식을 얻는다. 일상생활의 범위에서 벗어나 추상적, 논리적 사유를 하는 데 필요한 개념을 익히며, 여러 개념을 연결하는 논리적 상관관계를 배운다. 하지만 독서도 억지로 하면 좋지 않다. ‘선행학습’이라는 괴상한 풍조를 독서에 가져다 붙이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니다. 소위 추천도서 목록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되기보다는 부작용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다.
 
가장 좋은 독서법은 아이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 독서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독서를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 자신이 읽은 것을 활용해 무엇이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된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독서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재미를 붙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의 독서 이력을 만들어간다. 

4. 전략적 독서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또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면서 어휘를 익히고,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문장을 익힌다. 똑같이 많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해란 무엇인가

독해는 텍스트가 전해주는 정보, 논리, 이야기, 감정을 파악하고 해석하고 느끼고 즐기는 일이다. 텍스트를 그저 따라가기만 하거나 그대로 받이들이는 것은 독해가 아니다. 모든 텍스트가 옳은 정보, 앞뒤가 맞는 논리,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해는 텍스트의 한계와 오류를 찾아내거나 텍스트를 다른 맥락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독해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려운 글은 밑줄을 긋고 사전을 뒤지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해가면서 읽어야 한다. 독서량이 늘어 아는 게 많아지고 생각이 깊어져야 텍스트를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비판적, 창의적으로 독해할 능력이 생긴다. 글은 텍스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제점과 한계까지 탐색하면서 읽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 문제점과 한계가 어디서 왔는지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 

글쓰기에 유익한 독서법

무슨 책이든 많이 읽으면 독해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책을 골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해력을 키우고 글쓰기를 익히는 데 더 많이 도움 되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왜 어떤 책은 다른 책보다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될까?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자주 쓰는 어휘와 표현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현안이나 자연과학의 쟁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견해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어휘를 모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생산하려면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꼭 필요한 개념을 아예 모르면, 또는 그 개념을 알아도 다른 개념과의 관계를 잘 모르면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토론을 하기는 더 어렵다. 글은 여러 번 고치고 다음어서 발표할 수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또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면서 어휘를 익히고,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문장을 익힌다. 똑같이 많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데 특별하게 도움이 되는 책과 별로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 도움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며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인 쓴 것이든 외국 도서를 번역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셋째는 지적 간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이런 책은 친구로 만드는 게 좋다. 친구는 오랜 세월 좋은 일은 함께 즐기고 아픔은 서로 나누며 자주 어울려야 친구다운 친구다. 어떤 책과 친구가 되려면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시간이 들지만 손으로 베껴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 이 책들은 두세 번이 아니라 열번 정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휘를 늘리는 동시에 단어와 문장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즐기고 익힐 수 있는 책으로는 <토지>만 한 것이 없다. 논리적인 글과 예술적인 글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논리 글도 최고봉에 오르면 예술 근처에 갈 수 있다.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읽으면 논리 글쓰기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논리적 글쓰기를 하려면 추상적 개념을 담은 어휘를 많이 알고 명료한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추상적 개념을 익히려면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양서도 많이 읽어야 한다. 힘 있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서 논증의 기술을 다룬 책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논리가 분명하고 힘이 있는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역설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은 오히려 글을 많이 써본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 아직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초보자용 글쓰기 안내서를 피하는 게 현명하다. 그런 책들은 무엇보다 재미가 적어서, 읽기는 힘들고 부작용만 생길 수 있다. 

<자유론>과 <코스모스>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양서는 추상적 개념과 논리적 문장을 담고 있다. 책 전체가 중요한 사실과 개념, 그것들 사이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다룬다. 좋은 문장으로 쓴 흥미로운 교양서를 반복해서 읽으면 <토지>를 반복해서 읽을 때와 같은 효과가 난다.

<자유론>은 내용이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중대한 쟁점을 철학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해명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 훌륭한 내용을 사회에 대한 기초 지식과 평범한 수준의 독해력만 있으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썼다는 것이다. 밀은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라도 지극히 평범한 어휘와 읽기 쉬운 문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책을 거듭 읽으면 밀이 구사한 어휘와 문장, 그가 펼친 논리와 철학적 안목을 힘들지 않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번역서를 읽을 때 고려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되도록이면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잘 번역한 책을 골라야 한다. 나쁜 번역서를 반복해서 읽거나 필사하면 문장이 더 나빠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잘 번역한 책도 뜻을 알기 어렵거나 어색한 문장이 더러 있을 수 있다. 그런 때는 원문이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면서 바르게 고쳐보자. 문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추천할 책은 과학 교양서 <코스모스>다. 유럽 산업혁명 이후 몇백 년 동안 과학은 세분화와 전문화의 길을 걸었으며 그런 경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학문 분야를 잘게 쪼갠다고 해서 인간과 사회, 국가와 역사, 생명과 자연, 지구와 우주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더 잘 이해하고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전문화 때문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이 생겼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한 학자들은 혼자서 또는 집단적으로 자잘하게 쪼개놓은 학문의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 <코스모스>는 그 흐름을 선도했고 또 대표하는 책이다. 내용이 훌륭할 뿐 아니라 문장이 아름답기도 하다. 나온 지 30년이 지나 비록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언론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그것이 야기한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논쟁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 여러 번 읽으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개념, 어휘, 개념의 상호 관계,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 간결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한꺼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5. 못난 글을 피하는 법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톨스토이가 쓴<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패러디) 역설적으로,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글을 멋지게 쓰고 싶어서 ‘문장론’을 공부한다. 훌륭한 글을 필사하기도 한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장론을 공부하고 훌륭한 작가의 문장을 모방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글을 쓰고 싶으면 잘 쓴 글을 따라 쓰는 데 그치지 말고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제 나름의 멋진 스타일을 입힐 수 있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이 없으면 훌륭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못난 글 알아보기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이런 글을 읽기 쉽고 듣기 좋고 뜻이 분명해지도록 고치면 좋은 글이 된다. 소리 내어 읽어봄으로써 못난 글을 알아보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언어는 말과 글이다. 생각과 감정을 소리로 말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말과 글 중에는 말이 먼저다.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글 바로쓰기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면 흉한 문장을 알아보는 감각과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못난 말과 글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산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을수록 문장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반면 면역력이 센 사람은 글이 엉망인 책을 읽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좋은 문장을 쓴다. 이오덕 선생의 책 <우리글 바로쓰기>는 면역력을 길러주는 백신같은 책이다.

<우리글 바로쓰기>는 다섯 권이다. 다 읽으면 최선이다. 그게 버거우면 총론인 1권을 여러 번 읽어도 좋다. 5권까지 다 읽으면 1권을 다섯 번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못난 말과 글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글이 병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이오덕 선생의 주장이 지나치거나 극단적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다 지키려고 하면 손발이 묶인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어렵다고도 한다. 옳지는 않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다.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많이 받아들일수록 못난 글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백신을 접종하면 하루 이틀 아프거나 미열이 난다.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으면 한동안 독서와 글쓰기가 불편해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고, 책을 읽는 중에 자꾸 화가 나거나 글을 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못난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체득하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중국 글자말 오남용

우리 말에는 한자 단어가 많아서 어느 정도는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 한자말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남용하면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한문을 아는게 배운 사람의 징표였다. 한자말을 써야 유식하고 품위 있는 사람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한자말을 오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를 병용하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중국 글자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거나 오늘날 쓰지 않는 토박이말을 쓰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말과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목적을 잘 이울 수 있도록 쓴 글이 훌륭한 글이다. 지식을 뽐내려고 한자말을 남용하는 것, 민족주의적 언어미학에 빠져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토박이 말을 마구 쓰는 것, 둘 모두 피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본말과 서양말 오염

한자말 오남용은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한자말 때문에 우리말 문장이 심하게 뒤틀리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일본말이 훨씬 위험하다. 우리말 문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말과 글을 해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말이라고 무조건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말에 들어온 일본말이 문장을 뒤틀고 뜻을 흐리게 하며 자연스러운 운율을 파괴하는 현상이다. 여기에 영어에서 온 서양말 문법까지 뒤섞이면 도저히 우리말이라고 하기 어려운 글이 된다. 일본말과 서양말 오염을 피하려면 두 가지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바로 일본말 토씨(조사)와 피동형 문장이다. 

단연 큰 문제는 일본말 조사를 함부로 쓰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말 조사 ‘の(노)’는 우리말법으로 하면 일곱가지 격조사로 쓰이면서 스물한 가지 다른 뜻을 나타낸다. の는 단순한 관형격조사가 아니며 우리말 토씨 ‘의’와 다르다. 우리말이라면 전현 다른 토씨가 들어가거나 토씨가 아예 없어야 하는 자리에도 일본말은 の가 들어간다. 우리말이라면 주격조사 ‘은, 는, 이, 가’를 써야 하는 곳에 일본은 ‘の’를 쓰기도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아는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렇다. 우리말법으로는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 되어야 한다.

‘으로의’ ‘에로의’ ‘에서의’ ‘으로부터의’ ‘에 있어서의’와 같이 ‘의’를 겹쳐 쓴 토씨도 우리말법에 어긋난다. 이것은 の가 든 일본말 조사를 옮긴 것이다. 우리말은 그런 식으로 토씨를 쓰지 않는다. 일본말처럼 토씨를 쓰면 글이 늘어지고 운율이 죽으면 문장의 힘이 빠진다. 읽기도 나쁘고 듣기도 좋지 않다. ‘의’와 ‘에의’ ‘으로의’ ‘에서의’ ‘에 있어서의’ ‘에로의’ ‘으로부터의’ 같은 일본식 조사는 주로 글에서 볼 수 있다. 말까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너무나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이렇게 못난 글을 쓴다. ‘민중의 주인 된 삶’ ‘문학에의 초대’ ‘고향으로의 귀한’ ‘급변하는 사회에 있어서의 문학의 영원성’ ‘ 냉전 체제로의 회귀’와 같이 일본말 조사를 따라 쓴 글은 학술 논문부터 문학평론,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미디어에 널려 있다. 

나는 우리말의 가장 큰 매력이 토씨에 있다고 생각한다. 토씨는 뜻을 압축해서 전하는 수단이며 문장에 감칠맛이 돌게 만드는 조미료이기도 하다. 다양한 토씨를 적절하고 정확하게 쓰는 아이는 언어 능력이 뛰어난 어른이 된다. 우리말에는 다양한 주격조사가 있다. ‘이’ ‘가’를 많이 쓰지만 맥락에 맞추어 ‘은’ ‘는’이나 ‘도’를 쓰기도 한다. 소개팅을 하고 온 어떤 여자한테 절친이 이렇게 물었다고하자. ‘그 남자 어때?’ 대답은 네 가지가 있다. ‘키도 커’ ‘키는 작아’ ‘키는 커 ‘키도 작아’. 이 네 가지 대답 모두에서 토씨가 핵심 정보를 전달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단 한 글자 토씨에 이렇게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다.

피동형 문장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말에는 피동문이 드물다. 반드시 피동문을 써야 정확하게 뜻을 전할 수 있을 때만 예외로 쓴다. 그런데도 일본말이나 영어같이 피동문을 표준 문장처럼 쓰거나 뜬금없이 피동형 동사를 가져다 붙이는 사람이 많다. ‘보여지다’ ‘되어지다’ ‘키워지다’ ‘다뤄지다’ ‘모여지다’ ‘두어지다’ ‘보아지다’ 같은 것은 글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출몰한다. 타동사를 피동형으로 쓰는 것만으로 모자라는지 자동사까지 억지로 피동형으로 만들어 쓴 문장은 우리말이라고 할 수가 없다.

서양말의 완료시제와 복수형 어미 오남용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말은 완료시제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제 어머니를 만났었다’거나 ‘고향을 방문했었다’는 식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서양말은 주어가 단수냐 복수냐에 따라 동사 어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명사가 단수인지 복수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말은 명사 그 자체를 복수라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때가 아니면 복수형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추상명사에까지 ‘들’을 붙여 쓰는 사람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잘못 가져다 쓴 중국 글자말과 일본말, 서양말은 글을 어렵게 만들고 뜻을 흐리게 한다. 노래로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말하듯 노래하는 게 아니라 가짜 감정을 넣어서, 괜한 멋을 부려서, 노래 솜씨를 뽐내려는 듯, 소리를 쥐어짜 부르는 것이다. 잘 쓴 글은 말하듯 자연스러운 글이다. 말과 글이 달라질수록, 말에서 멀어질수록 글은 어렵고 흉하고 멋이 없어진다. 
 
단문 쓰기

글은 단문이 좋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논리 글도 마찬가지다. 단문은 그냥 짧은 문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문장 하나에 뜻을 하나만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주어가 술어가 둘이 넘는 문장을 복문이라고 한다. 복문은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을 때, 단문으로는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쓰는 게 좋다. 노래도 가수가 고음을 시원하게 잘 내면 좋다. 그런데 어떤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만 부르면 어떨까? 고음은 클라이맥스에 잠깐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글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복문으로 쓰면 읽는 사람이 힘들다. 복문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단문이 복문보다 훌륭하거나 아름다워서 단문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문은 복문보다 쓰기가 쉽다. 주술 관계가 하나뿐이어서 문장이 꼬일 위험이 없다. 내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초판을 쓸 때 복문을 많이 썼는데 그때는 왜 단문으로 써야 하는지 몰랐고 복문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단문을 잘 쓴다고 해서 복문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복문을 어느 정도 쓸 줄 아는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단문을 잘 쓸 수 있다. 

거시기 화법

단문 쓰기 만큼 중요한 것이 어휘 선택이다. 말하려는 뜻을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꼭 맞는 단어'를 써야 한다. 꼭 맞는 단어란 뜻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앞뒤에 있는 단어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고 멋진 표현을 만드는 단어를 말한다. 그렇게 글을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어휘가 부족하면 같은 단어와 표현을 반복해서 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글이 음표와 멜로디가 몇 가지만 있는 노래처럼 지루해진다.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을 넘어 단어의 어울림, 단어의 궁합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뜻은 비슷해도 문장 안에서 다른 단어와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고 아닌 단어가 있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멋지게 어울리는 단어를 결합해야 한다. 사전을 뒤져 용례를 찾아가며 글을 쓰면 도움이 되지만, 잘 쓴 글을 많이 읽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편이 더 쉽다. 단어의 궁합은 안다기보다는 느끼는 것이다.

무엇보다 뜻이 두루뭉수리 불분명해서 아무 곳에나 넣어도 되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텍스트라도 문맥을 파악하면 그런 대로 독해할 수 있지만 독자에게 신묘한 독해력을 요구하는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다. 맥락을 잘 모른 채 텍스트를 읽어도 뜻을 아는 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써야 한다.   

우리말의 무늬

글을 쓰면서 그때그때 딱 맞는 단어와 표현을 찾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뜻은 비슷한데 느낌이 다른 말이 많고, 똑같은 단어도 다른 말과 어울리면 조금은 다른 맛과 색을 낸다. 이런 것을 ‘어감', 외래어로는 ‘뉘앙스'라고 한다. 우리말은 토박이말과 중국 글자말, 서양말이 섞여 있어서 무늬가 매우 다양하다. 

‘모양’은 겉으로 보는 생김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뜻이 있는 단어는 ‘모양’말고도 많다. ‘모습’ ‘자태’ ‘꼴’ ‘꼬락서니’ ‘몰골’ 같은 말이다. 느낌이 좋은 순서로 배열하면 자태-모습-모양-꼴-꼬락서니-몰골이 된다. 어울리는 다른 단어와 묶어보면 ‘천사처럼 고운 자태’ ‘사나이 다운 모습’ ‘ 여러 가지 모양’ ‘지저분한 꼴’ ‘한심한 꼬락서니’ ‘비참한 몰골’ 이렇게 된다. 서로 무늬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렇게 어울리는 단어를 조합해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좋은 문장이다. '천사같은 꼬락서니’ ‘비참한 자태’ ‘사나이다운 몰골’은 어떤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조합하면 문장은 엉망이 되고 뜻을 전하기도 어렵다. 

6. 아날로그 방식 글쓰기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티끌모아 태산이 맞다. 하루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주 엿새를 그렇게 하면 180분, 세 시간이 된다. 한 달이면 열두 시간이다.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 나는 그렇게 해서 글쓰기 근육을 길렀다. 

글쓰기 근육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많이 써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답이다. 생각은 자유롭고 상념은 스쳐간다. 생각과 느낌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우리 뇌는 엄청난 용량을 지녔지만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자투리 시간 글쓰기의 주제와 내용은 정하기 나름이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 풍경을 그려도 좋고 단골 카페 인테리어를 묘사해도 괜찮다. '키도 큰’ 친구에 대한 시기심을 토로해도 무방하다.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이론에 관한 생각을 적어도 된다. 어제 읽은 책 독후감도 나쁘지 않다. 뭐가 되었든 많이 쓰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창조의 시작은 모방이다. 인간의 표현 행위는 자연을 모사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귀로 듣는 것을 거쳐 마음으로 느기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뭐든 많이 쓰는 것이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노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짧은 글쓰기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사람, 동호회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글쓰기 훈련을 하는 사람은 분량을 엄격하게 정해두고 글을 쓰는 게 좋다. 그렇게 해야 압축의 미학과 경제적 효율성을 갖춘 글을 연습할 수 있다. 몇 글자로 쓸지는 형편에 맞게 정하면 된다.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올린다면 네티즌들이 지나치게 긴 글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 고려하면 된다. 업무 수행을 위해 쓰는 글이면 업무의 성격과 지위에 따라 통용되는 보고서나 기획서의 분량을 따른다. 조직 사회에서는 읽는 사람(상사)이 선호하는 분량에 따라 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군더더기 없애는 법

문장의 군더더기란 무엇이며 군더더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없애버려도 뜻을 전하는 데 큰 지장이 없으면 군더더기다. 문장의 군더더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접속사, 둘째는 형용사와 부사, 셋째는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형용사나 부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장요소다. 

굳이 없어도 좋은 접속사는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단문으로 글을 이어나갈 때 문장 사이에 매번 ‘그러나’ ‘그리고’ 같은 접속사를 넣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문장은 뜻을 담고 있다. 그 뜻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접속사가 없어도 된다. 단문을 기본으로 쓰고 불필요한 접속사를 생략하기만 해도 글을 조금은 압축할 수 있다. 부사와 형용사를 적게 쓸수록 좋다. 이미 완성된 문장이라도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문장 요소가 있으면 과감하게 빼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주로 부사와 형용사를 삭제하게 된다. 속도감 있는 문장을 쓰는 작가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부사를 없애라고 권했다.  

소통의 비결

독자들은 내 글이 쉽다고 말한다. 내 글이 왜 쉬울까? 쉬운 주제를 일상용어로 써서 그런 게 아니다. 어려운 용어를 쓰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어도 독자가 쉽다고 느낄 수 있도록 써서 그런 것이다. 글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텍스트 안에서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말을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개념어든, 전문용어든, 사람 이름이든, 사건 이름이든 마찬가지다. 꼭 써야만 한다면 적당한 곳에 그 뜻을 알려주는 정보를 함께 넣어야 한다. 학술적으로 깊이가 이쓴 전문서라면 주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를 분명하게 짚어주어야 한다. 

인생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감정이 여럿 있는데, 허영심도 그중 하나다. 허영심은 아주 고약한 감정이다. 허영심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글 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허영심은 지식과 전문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사로잡히면 난해한 글을 쓰게 된다.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실용적인 면에서든 윤리적인 면에서든, 읽는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감을 주는 글은 훌륭한 소통 수단이 될 수 없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내놓을 때는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글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7. 글쓰기는 축복이다

왜 글을 쓰는가?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왜 쓰는지 모르면 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그 특별함 때문에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고, 또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첫째, 세상이 글쓰기를 유도한다. 우리는 때때로 쓰기 싫어도 글을 써야만 한다. 학업과 진학, 취업을 위해서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사는 데에도 지장이 많다.
둘째,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이를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우러러본다. 글쓰기 실력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글이 글쓴이의 지능, 지식, 지성, 가치관,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써야 잘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 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사는 만큼 쓴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을 경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책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글은 살 수 있지만 글 쓰는 능력은 살 수 없다. 돈 주고 산 글로 대학 입시, 기업 입사 시험, 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할 수는 있다. 그러나 관문을 통과한 뒤 평생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요행히 들키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가지나 자신이 써야 할 글을 남에게 시킬 수도 없다. 써야 하는 글만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마저 잘 쓰지 못하면 자기 삶에 온전히 만족하기 어렵다. 자기를 표현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욕망과 충동을, 기대와 소망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표현해서 타인과 교감할 때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문명국가의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국가나 사회에만 오는 게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억압이다. 남이 그랬든 스스로 그랬든, 억압은 삶의 기쁨과 의미를 파괴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중에는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게 있다. 어떤 정보와 생각과 감정은 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문자를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블로그나 페이스북, 모바일 메신저에 글을 쓰는 것일까? 보통은 이야기를 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쓰고 싶어서 쓴다는 말이다. 털어 놓고 싶은 감정,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털어놓고 드러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글쟁이의 정신승리법

‘정신승리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글쓰기가 힘들 때,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글을 써야 할 때 그런 것이 있으면 좋다. 이렇게 가정하자. 누구도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글을 쓸 자유가 없다. 그렇게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아가 그런 세상에서 나 혼자 특권을 누린다고 가정하자. 나는 생각하는 대로 글을 써도 되고, 원하면 언제든 세상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특권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세상을 원망할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가 힘들 때 그렇게 상상하면서 행운에 감사한다. 우리 세대는 국가, 정부, 사회, 정의, 평등, 민주주의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중대범죄가 되는 세상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 이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행운을 손에 넣고도 그게 행운인 줄 모른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다른 것을 찾으려고 몸부림친다. 만약 글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문자라는 것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오직 극소수만이 누린 특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지금 우리 모두는 그런 특권을 누리며 산다. 이 축복과 특권이 좌절감과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특권을 즐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쓰기 훈련이 덜 고되게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직업적 글쟁이로서 자주 쓰는 정신승리법이다. 

8. 시험 글쓰기

상세한 내용은 다음 책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시험 글쓰기를 하는 전략과 요령을 알면 평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간략하게 다음 책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시험 글쓰기도 글쓰기인 것은 사실이다. 평소 글을 많이 쓰고 잘 쓰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시험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 글쓰기의 특성을 잘 알고 준비하면 더 잘 쓸 수 있다.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지 않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글 쓰는 실력 갑자기 발전할 리는 없다. 하지만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요구에 응답하는 글을 쓸 수는 있다.

논술 시험은 글쓰기 실력만 측정하는 수단이 아니다. 대학교는 공부 잘 할 학생을 선발하려고 한다. 국가기관이나 민간 기업은 조직이 수행하는 업무를 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과제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주어진 정보를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 얼마나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출제자의 요구에 응답했는지, 그런 것을 살펴서 자기네가 원하는 인재를 뽑으려는 것이다. 문장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끄러운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시험 글쓰기를 해야 하는 사람은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시험 글쓰기의 특별함

시험 글쓰기가 특별한 것은 모든 요소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이 제한된다. 며칠씩 붙들고 있어도 되는 신문 칼럼이나 몇 년 걸려 쓰는 학위 논문과는 다르다. 
둘째, 정보와 자료가 제한된다. 다른 자료를 쓸 수 없는 만큼 논제와 제시문이 제공하는 정보를 남김없이 파악해서 정확하게 활용해야 한다. 
셋째, 손으로 종이에 써야 한다. 손 근육을 써야 한다. 일단 쓰고 나면 크게 고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시험이 여섯 달도 남지 않았다면 글쓰기 능력을 좌우하는 어떤 요소도 크게 개선할 수 없다. 남아 있는 방법은 시험 글쓰기 맞춤 전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전 상황에 맞게 글쓰기를 반복 훈련하는 것뿐이다. 

시험 전에 할 일

짧은 시간 안에(6개월 이내) 시험 글쓰기 준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다이제스트(요약본) 읽기, 둘째는 기출문제와 예상 문제 실전 연습이다. 실전 연습은 토론과 자기 주도 첨삭 훈련을 포함한다. 

평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다이제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독서량이 너무 적어서 어휘량이 달리는 사람이라면 몇 권이라도 다이제스트를 읽는 게 좋다. 다이제스트 읽기는 문장을 개선하거나 논리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별 효과가 없다. 그런데도 권하는 것은 논제로 흔히 등장하는 질문, 제시문에 잘 나오는 용어와 개념, 그런 것과 낯을 읽힐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다. 낯선 단어와 개념을 만났을 때 느끼는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그런 목적에 맞는 다이제스트책 몇 권을 소개한다. 

-가마타 히로키,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부키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사계절
-강유원, <역사 고전 강의>, 라티오
-강정인 외, <고전의 향연>, 한겨레출판
-다케우치 미노루 외, <절대지식 중국고전>, 이다미디어
-사사시 다케시 외, <절대지식 세계고전>, 이다미디어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게
-함영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 고전 100>, 팬덤북스 

실전 연습과 그룹 첨삭

실전 연습은 말 그대로 실전처럼 하는 연습이다. 문제지를 받고 답지를 제출할 때까지 시험장에서 실제로 해야 할 행동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논제와 제시문을 제대로 독해하는 것이다. 문항과 논제, 제시문 전체를 순서에 따라 일차 독해한 다음 각각의 논제에 시간을 얼마씩 할당할지 판단해 시간 배분 계획을 세운다. 시간표를 만들고 나면 첫 번째 문항부터 논제와 제시문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읽는다. 충분히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면 글의 구조를 설계하고 꼭 넣어야 할 핵심 단어를 메모한다. 시험 시간의 최소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 이 작업에 쓰는 게 좋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필요한 기초 작업을 마치면 메모한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문장은 단문을 원칙으로 한다. 복문을 쓰면 주술관계를 맞추면서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기가 어렵다.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쳐야 할 곳이 늘어난다. 문장의 멋을 부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 금지다. 한 문항에 속한 모든 논제에 다 대답하고 나서 다음 문항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 문항의 논제와 제시문을 다시 한 번 읽는다. 혹시 오류가 있는지 점점하고 필요한 내용 수정과 문장 교정을 한다. 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문항도 준비한 시간 계획에 따라 글을 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아마 수험생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기출문제 실전 연습을 할 것이다. 기출문제로 하든 예상 문제로 하든, 답을 써보는 것으로 실전 연습을 끝내서는 안된다. 제대로 잘 썼는지 평가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어 고치고 개선하는 작업이다. 유명강사라도 남이 해주는 첨삭지도는 시험 글쓰기 실력을 개선하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첨삭해야 얻는 게 있다. 자기 혼자 보면서 첨삭하라는 게 아니다. 남들과 함께 해야 한다.

기출문제 실전 연습을 하려면 다른 수험생과 서너 명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능력 차이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 차이가 나면 나는대로,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효과가 난다. 각자 실전처럼 답안을 쓰고, 다 쓰면 모여서 돌려 읽는다. 서로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각각 어떤 장단점이 이쓴지 토론한다. 토론이 끝나면 다시 한 번 같은 기출문제로 처음과 똑같이 엄격하게 시험을 치른다. 각자 다시 쓴 답안을 들고 모여서 또다시 돌려 읽고 토론한다. 그 다음에 같은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같은 문제를 가지고 세 번 답안을 쓰게 된다. 그 세 답안을 비교해 보면 논리도 문장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과 자기주도 첨삭 훈련만큼 짧은 시간에 시험 글쓰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록. 전략적 독서 목록 (4장에서 옮김)

살아가면서 보고 겪고 부딪히는 여러 일에 대해 글을 쓰려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교양서를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수준 높은 지식과 정보를 풍부한 어휘와 멋진 문장에 담아놓은 교양서를 읽으면 지식과 함께 어휘와 문장도 익히게 된다.

다음은 글쓰기를 위한 전략적 독서에 적합한 책을 경험주의적으로 고른 목록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는 이런 도서 목록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고등학생, 대학생, 생활인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서는 되도록 우리말 문장이 좋은 것을 골랐다. 읽는 순서는 따로 없다. 구미가 당기는 책부터 읽으면 된다. 다만 어떤 책인지 알아야 독자들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각각의 책이 다루는 중심 주제를 질문 형태로 소개한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아는 게 많고 독해력이 좋은 사람은 쉽게 읽겠지만, 한 번 읽어서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견디고 넘어서야 한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번 더 읽으면 된다.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책이 다룬 개념과 논리를 어느 정도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힘이 든다고 해서 이런 책을 다 건너뛰면 개념과 논리를 배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휘와 문장도 익히지 못한다. 그래서는 아무리 열심히 써도 글이 늘 수 없다. 

-라인 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모든 집단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가?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는 이타적인데도 집단으로 뭉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권계급의 집단적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불의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정의를 함께 실현할 수 있을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로
화학살충제와 제초제로 해충과 잡초를 박멸할 수 있는가? 만약 성공해서 곤충과 잡초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좋은 일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을 것인가?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해충과 잡초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우주와 생명은 누가 만들었나, 스스로 태어났나?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창조했는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교의 도움 없이도 살에 필요한 도덕을 세울 수 있는가? 신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다윈의 진화론은 생존경쟁과 자연 선택을 주장한다. 자연선택과 생존경쟁은 어떤 차원에서 이루어지는가? 집단인가, 개체인가, 유전자인가? 인간을 유전자가 창조한 생존기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이론인가? 인간은 자유의지로 유전자의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는 무엇이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원자에서 거대한 은항에 이르기까지 물질세계의 모든 운동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는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은 인간의 세계관과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정의는 무엇이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철학적, 도덕적 원리에 의지해야 하는가? 사유재산제도와 징병제, 누진소득세, 낙태와 성매매 금지 같은 국가의 법과 제도가 정의의 원칙을 어떻게 또는 얼마나 잘 실현하거나 침해하고 있는가? 상이한 철학적, 도덕적 원리가 대립, 경쟁하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기독교가 지배한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흥한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정신과 종교개혁운동의 산물로 출현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 사이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 직업을 신이 부여한 소명으로, 세속적 성공을 종교적 구원의 증거로 간주한 프로테스탄티즘과 이윤 추구를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가? 기독교가 없는 지역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사람들이 끝없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한 계급이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면서 가치 없는 활동에 엄청난 돈을 지출해 부를 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백하게 불합리한 차별과 착취가 만연한 사회에서도 대중은 왜 사회의 혁신이나 혁명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거나 따르지 않는가?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마음이란 무엇이며 우리 몸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인간의 뇌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언어 능력을 키웠는가? 왜 선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르는가? 우리는 왜 아무 관계없는 타인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가?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인간이 삶과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있을까? 절대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는 어떤 사람이 권력의 힘으로 그것을 만인에게 강요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귀결이 자유와 다양성, 이성과 인권 생명력을 짓누르는 공포정치라면, 그런 위험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신영복, <강의>, 돌베게
수천 년 전의 중국 지식인이 남긴 책에도 현대인이 배울 점이 있는가? 동양 문화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이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사회나 국가, 문명도 자연이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 성장, 쇠락, 사망에 이르는 필연적 생애 주기를 가질까? 만약 그렇다면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키는 요인은 무엇이며, 기존의 강대한 문명이 몰락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세계사를 이끌었던 서유럽과 미국 문명은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가?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한국경제신문
권력의 원천은 무엇이며, 그것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권력의 원천이 폭력에서 부로, 다시 부에서 지식으로 이동해왔다면 폭력과 부에서 지식으로 넘어가는 21세기 권력이동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권력을 통제할 미래의 지식소유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기록된 역사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인가, 기록한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과거인가? 만약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가 존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기록된 역사와 과거의 사실을 대해야 하는가? 역사는 진보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진보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진보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우리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제체제를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가? 자연은 과연 언제까지 인간의 수탈과 착취를 용인할까? 만약 현존하는 경제체제를 장기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식의 대전화를 이루어 대공장, 첨단 기술, 거대도시를 버리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중간기술과 소규모 사업장, 도시와 농촌의 조화를 이루는 경제체제를 선택할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재산, 지식, 권력을 소유하면 삶이 행복하고 의미를 가지게 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은 소유를 넘어 차조와 나눔에서 존재의 기쁨을 얻도록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인류가 세계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을 식량 생산능력을 확보했음에도 10억 명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기구와 부유한 나라가 기부금과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데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과연 인류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자본주의 또는 시장 경제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경제 시스템인가? 각자가 이기심을 추구하고 소득과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면 국민경제도 저절로 좋아지는가? 사람들은 각자 생산에 기여한 만큼 소득을 얻는가? 정부가 시장에서 손을 떼는 것이 경제를 발전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문학사상
왜 어떤 민족은 다른 민족을 정복했으며 어떤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했을까? 정복당한 민족은 왜 그런 비극의 제물이 되었는가? 대륙에 따라 문명의 발전 속도가 크게 달랐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인종과 민족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본질적인 능력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생활환경이 달랐기 때문인가? 지구천 전체를 하나의 대중 소비사회로 변모시키는 세계화가 더 깊고 넓게 이루어지는 21세기 인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어떤 것인가?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어크로스
우리는 물질과 우주 그리고 우지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과학은 현대인의 생활 속 어디까지 들어와 있는가? 인간과 인간관계, 인간이 만든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과학은 쓸모있는가?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고스
지구는 단순히 물질로 이루어진 행성인가, 아니면 생명을 가진 거대한 유기체인가? 수십억 년 동안 대기의 원소 구성과 바다의 염분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무수한 생명을 품고 키워온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살아 있는 지구는 무제한적 생산과 소비 활동을 통해 대기의 화학적 구성과 지구 온도에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행위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 혹시 지구는 인류를 절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을까?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우리 삶에서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떨 때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침해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경우에도 절대 제한해서는 안 될 자유의 영역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영역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인류의 미래에 물질적 풍요라는 축복을 선사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예언은 왜 실현되지 않았는가? 자본주의 체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필연성과 역사으 종말을 선포한 마르크스의 저주를 어떻게 피해갔는가? 우리의 정치체제는 소수의 거대 법인기업을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민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표현 방법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으면 그런 변화는 왜 일어났는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른 예술 행위와 그 결과로 나온 예술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가? 동물행동학의 일반 법칙을 어느 정도까지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인간이 하는 이타 행동의 대상에 한계가 있는가? 인간이 동물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동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국가는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는 조직인가, 아니면 유산계급의 배타적 이익에 복무하는 도구인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지배자인 부르주아계급은 어떤 업적을 이루었으며, 왜 몰락할 수밖에 없는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적대적 계급의 대립과 투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인류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 행성과 태양계, 은하와 우주의 구조와 운영 원리를 알게 되었는가? 최초의 유기 분자와 생명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구 이외에도 지성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 있을까? 우주는 언제 탄생했으며,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있는가?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섹스에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힘이 개입되는가?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하려면 반드시 결혼제도와 가족제도를 바꾸어야 하는가?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가? 이것을 분리하려는 동기와 사고방식 자체가 낡은 성 역할 분담 체제를 지키려는 가부장제 이데올리기는 아닌가? 

-토머스 모어,<유토피아>, 서해문집
공공의 선과 사회적 정의를 완전하게 실현하기 위해 신분과 계급과 사유재산이 없고 모든 사람이 땀 흘리며 노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만약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떤 원리 위에서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사람은 왜 악을 저지를까? 오로지 악한 사람만이 악을 저지를까? 만약 악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도 악에 가담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을 저지르거나 악에 가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정당하고 합법적인 정부가 불합리하고 부당한 행위를 할 때 의로운 시민은 어떤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침묵하고 방관하는 가운데 호로 행동하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불복종이라는 비폭력 저항으로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악을 제거할 수 있는가? 

-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생산기술이 진보하고 생산력이 크게 높아진 현대사회에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한 개인이 지구 행성의 표면 일부를 사유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은 정당한가?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폐지할 수도 없고 그것을 정당한 권리로 인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토지소유자가 얻는 부당한 이익을 사회 전체의 몫으로 돌려줄 해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