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덮은 날, 조훈현 선생님이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간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래서 책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이 시대의 어른들, 그리고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책은 잘 기획된 대중서의 느낌이 강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재밌고 좋지만 깊은 울림은 적다. 조훈현의 날 것 그대로였다면 조금 서툴고 거칠었어도 깊은 울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욕심이다. 조훈현 선생님만의 스토리가 있었기에 뻔한 자기계발서는 흥미진진한 책이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문제는 실천이다. 조금이라도 더 내 안에 담기 위해 아래와 같이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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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요약
1단 바둑 고수가 말하는 생각의 법칙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집중, 집중… 나는 고요한 생각의 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천천히… 거칠었던 호흡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지금도 초읽기에 몰렸던 순간에 어떻게 그런 수를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나는 대답한다. 그건 지금의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때로는 스스로 풀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야 만다.해결될 때가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이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삶은 그 자체로 시련이다.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이 그 시련을 의미있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르게 생각하라
일본으로 가서 처음으로 정석을 접했을 때, 그동안 내가 둔 바둑이 얼마나 천방지축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석은 일종의 기본기이다. 그걸 모르고 바둑을 둬왔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었다. 정석으로 똘똘 뭉친 일본 원생들에게 무참히 깨지면서, 기본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하지만 일단 기본기가 다져지면, 그때부터는 다시 망아지가 되어야 한다. 바둑은 틀 안에 갇히면 끝장이다. 상대가 예측할 수 있는 빤한 수만 놓는다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막강한 힘을 가지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와 혁명은 남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창의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생각은 자아를 단단하게 만든다
기사마다 다르게 두는 기풍을 바둑에서 ‘류’라고 한다. 바둑 기사에게 자신만의 ‘류’는 일종의 자아다. 바둑을 어떤 식으로 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바둑이 무려 4천 년 살아남은 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관과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는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내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에게 답을 주겠느냐. 그 답은 네 스스로 찾아라.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선생이 헤매는 학생에게 답을 알려주는 건 아주 쉬운 해결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학생은 그 답을 받아먹을 뿐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자유를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개성이 강해지고 자아가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행복이 돈이나 명예, 성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온다고 믿는다. 자아는 자존감이다. 자아가 단단해야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라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수가 떠오른다. 즉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고서 창의적인 수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풀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프로 기사들이 초읽기에 몰린 순간에도 기발한 묘수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평소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질기에 물고 늘어지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끈질긴 탐구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남과 다른 생각’이다. 다른 생각은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얻게 된다.
모든 발견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때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집중하여 생각해야 한다.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찾아냈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 찾아온다. 생각하는 습관이 자리 잡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본인만의 체계가 완성되면 보다 빠르게 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성격에도 변화가 와서 훨씬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해결하는 사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2단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생각은 행동이자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재주가 덕을 넘어서는 안된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하마터면 바둑과 영영 이별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내기바둑을 뒀다가 스승님에게 들킨 일이다. 스승님의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처음 나를 본 순간부터 내가 1인자가 될 재주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다. 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이었다. 바둑 명인에 걸맞은 인격과 품성을 갖출 수 있을까. 제자를 더 이상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던 선생님이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이유도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는 말이 있다. 인격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스승님에게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기억 늘 마음 속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원칙을 어기는 일이고 절대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대단히 차이가 있다. 외도를 해도 선을 넘지 않고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생각의 바탕은 인품이다
생각은 행동이자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원칙과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 보는 짓은 아닌지, 가치관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오래 지켜보면 알게 된다. 나쁜 사람들이 잘되는 건 그저 찰나의 현상일 뿐이다. 프로 기사들 중에도 잔꾀를 쓰는 사람이 있다. 당했다는 걸 알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나는 그냥 내버려 둔다.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두 번 잔머리가 통할 수 있겠지만, 정상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정상은 아무나 가지 못한다. 인성과 인품이 따라줘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된다. 인성이 평가를 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평판이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매일 매일의 행동, 말투, 표정 등에서 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평판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다.
바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고 상대를 도발하거나 야비한 플레이를 해서는 안된다. 또 이기더라도 너무 기뻐해서도 안 되고 너무 속상해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런 단련이 되지 않으면 정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마음이 강해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세고에 선생님은 내가 어디가서 바둑을 이기도 오든 지고 오든 칭찬을 하신 적도 야단을 치신 적도 없다. 평소처럼 마당을 쓸라느니, 술상을 봐오라느니 하며 잡일을 시키셨다. 넘쳐흐르는 기쁨도, 찢어질 것 같은 아픔도, 그저 일상의 일들과 똑같이 대하도록 마음 수련을 시키신 것이다.
생각은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 원칙과 도덕이 쌓이고 쌓여 습관처럼 몸에 배여야 언젠가 큰 선택을 할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품은 가르칠 수 없는 것
세고에 선생님이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신 건 바둑보다도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조목조목 늘어놓고 훈육을 하셨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저 당신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정갈하게 단장한 후 신문부터 읽으셨다. 가끔 손님이 찾아와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정치인이나 장관이 찾아와도 무덤덤하게 대했고, 거지를 대하는 태도나 높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못 가르친다. 인성, 인품,인격은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다. 제자가 내 기준에 어긋나는 듯해도 야단칠 필요가 없다. 스승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제가가 알아서 잘못한 걸 깨닫고 고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똑같은 것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다. 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 세계가 없는 부모다.
챔피언의 무게를 견뎌라
창호와 나는 이기도 돌아왔다고 칭찬한 적도, 지고 돌아왔다고 위로한 적도 없다. 이런 모습은 다른 스포츠계의 사제지간과 상당히 다르다. 씨름 선수가 승리를 하면 감독은 흥분해서 모래판으로 뛰어가서 선수를 얼싸안는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먼 산만을 바라본다. 참 재미없는 사제지간이다. 나는 세고에 선생님 밑에서 언제나 한결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감정은 그저 흘러왔다 흘러가는 덧없는 것으로, 어떤 감정도 스스로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삶의 자세였다. 기쁨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고, 슬픔도 분노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봐야 한다. 이겼다고 우쭐해하면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지는 경험을 쌓아야 하므로 일상의 경험으로 덤덤하게 바라봐야 한다.
생각은 긍정이다
이창호가 나에게서 최고위전 타이틀을 빼앗아가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1990년 창호에게 최고위를 빼앗겼을 때 나는 서른일곱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찾아온 제자의 성장인지라 나는 기쁨보다도 놀람이 더 컸다. 창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독립을 한 후 창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온몸이 분해될 지경이었다. 나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데도 의자에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바둑을 두어야 했다. 언론에서는 '와기(臥棋)'라는 말로 점잖게 표현해주었으나 사실은 중년의 바둑 황제가 열여섯 소년의 쿠데타에 무너져 내리는 슬픈 몰락의 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거의 모든 타이틀을 넘기고 작은 타이틀 하나만 붙잡고 있는데 창호는 이것마저 놔두지 않았다. 1995년 2월 나는 창호에게 마지막 남은 대왕 타이틀까지 빼앗겼다. 20년 만에 무관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유난히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때부터 내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마구 쏟아졌다. 타이틀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제 잃을 것도 없다는 걸 의미했다. 지키려고 할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막상 다 잃어버리니 자유로웠다.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었다. 지금부터는 한 발짝만 앞으로 움직여도 일보전진이 되는 거니까.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마구 솟아났다. 아마도 살려고 그랬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둑을 사랑해서 그랬을 것이다. 바둑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이기고 지고를 그토록 반복했지만 승패에 정말로 초연해지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수많은 판을 싸우면서 나는 내가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후로 창호의 독재체제가 굳어졌지만, 나는 계속 기어 올라가 도전장을 내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98년에 국수전 도전자가 되어 창호와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하여 159수 만에 창호의 항복을 받아냈다. 창호에게 이기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시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떠오르는 수많은 태양들에 의해 곧 떨어질 수도 있는 운명이지만, 적어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3단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도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자는 반전을 노린다
1997년 제8기 동양증권배 결승 1국, 고바야시 사토루 9단과 결승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누가봐도 승패가 뻔한 승부. 다들 내가 돌을 던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내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무리한 공격을 퍼붓자 고바야시 9단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둑하는 사람들은 이때의 기보를 두고 많은 말들을 한다. 지금 들여다봐도 1~3국 모두 내용상 고바야시가 다 이겨놓은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져서 이기다니, 조훈현이 너무 지독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가 원래 그렇다. 아니, 승부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승부사라면 그런 아주 낮은 가능성에도 베팅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 바둑은 실력보다도 심리가 승부를 좌우한다. 졌다고 포기면 바둑은 끝난다. 그러나 역전의 기회가 있다고 믿으며 끝까지 수를 찾다 보면 기회가 온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싸워라. 반전의 기회는 언제든 온다.
나의 영토를 확장해라
바둑은 한마디로 말해서 영토 확장을 위한 게임이다. 바둑판 위에 자신의 집을 많이 만들어 영토를 넓히는 것이 바둑의 목적이다. 프로 바둑 기사로 산다는 건 나의 영토를 지키고 적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들 이기려고 애를 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지위,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원래 욕망을 가진 존재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다. 남의 것을 부정한 방식으로 취하려는 것이 아닌 한, 욕망과 야심은 매우 건강한 심리다. 특히 청년기에는 이러한 욕망과 야심이 하늘을 찌르는 시기여야 마땅하다. 이기겠다는 야망이 있었기에 정글 속에서 그 혹독한 수련의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더 많이 가지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나는 세상이 바둑처럼 경쟁만 있고 1등만 살아남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삶을 살던 자신만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토 확장이 꼭 성공과 출세, 승리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꿈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영토확장일 것이다.
너에게만은 질 수 없다
새로운 ‘류’로 승부해라
이창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의 바둑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창호가 두터운 행마와 슈퍼컴퓨터 같은 계산력으로 나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딱 반집의 허점을 창호는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는 자가 강한 자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바둑에는 실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류'의 충돌이다. 바둑이라는 진리를 깨우치는 데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창호와 나는 전혀 다른 경로로 그 길을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은 물론 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나의 허점을 창호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창호의 허점도 있다. 그걸 훗날 이세돌이 나타나 파고들었다. 바둑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진보한다. 누군가 이세돌을 이기려면 또 다른 새로운 ‘류’를 가진 자가 등장해야 한다.
새로운 ‘류’란 이기는 ‘류’다. 그것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허점을 파고들면서 탄생한다.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법에서도 이러한 ‘류’의 법칙을 늘 목격한다. 지도자는 늘 새로운 정치철학을 갖고 등장하는 새 인물에 의해 권력을 내려놓는다. 기업인들은 변화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된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류를 갖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남과 다른 류를 가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싸움에 대한 예의
어떤 상대에게도 기죽지 마라
승부의 첫째 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기백이다. 표정도 자세도 행동도 자신만만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기가 죽지 않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매 순간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태도로 행동해야 한다. 특히 결정적인 승부의 순간이라면 어깨를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 더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못할 게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수없이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멋지게 외모를 꾸미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을 기를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시험과 테스트에 도전하는 것. 수없이 면접을 보는 것, 낯선 일에 도전하는 것 등. 이런 경험을 반복해야만 더 노련해지고 영리해진다. 처음에는 자꾸 실수를 저지르고 야단을 맞아서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겠지만, 이런 경험이 경험이 반복되어야만 자신감을 쟁취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수없이 져야 한다. 따라서 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 어떤 상대 앞에서도 기가 죽어서는 안된다.
4단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돌은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러니 아직은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 충실해라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혼란을 겪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다. "일본 바둑은 도와 예를 중요시 여기고, 한국 바둑은 그저 싸움판인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쪽도 잘못된 것은 없어. 그저 다른 것일 뿐 어느 한쪽도 틀린 건 아니야.” 그로부터 약 10년 후 한국 바둑은 세계 정상으로 발돋움한 반면 일본 바둑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이 형식에 집착하는 사이 한국 바둑은 훌륭한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껑충 도약한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바로는 지금 여기, 바로 이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불만을 갖고 환경을 탓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기가 최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다.
판 밖에서 바라봐라
바둑 격언 중에 ‘반외팔목(盤外八目,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제대로 보인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고난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에 남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저 멀리서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또 당신을 부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불공평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다 똑같다. 누구나 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산다. 이러한 부러움이 단순한 질투를 넘어 야심과 성취로 이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만 한다. 하지만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 벽을 뛰어넘어 높이 올라간다. 더 이상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당당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 서 있다.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다며 괴로워할지 몰라도 판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다. 그러니 아직은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꿈보다 현실이 먼저다
돈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피나게 노력해서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 대가가 보잘 것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특히 프로의 세계에서 우승이란 당연히 어마어마한 상금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달라서 힘들어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더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이다. 먼저 먹고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먹고살 수 있는 일부터 만든 후, 그 다음에 꿈을 꿔야한다. 치시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도 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초라하고 치사하게 살면서 우리를 키워내셨다.
고수의 말을 잘 들어라
바둑에는 “9급 열 명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못 보는 수를 1급 한 명이 금방 본다”는 말이 있다. 하급자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수를 상급자들은 금방 본다. 이는 간단히 보면 바둑에 대한 이론과 지식, 기술의 차이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다름 아닌 판을 읽는 능력이다. 급수가 높아질수록 더 정확하게 판을 읽는 능력이 자나라는 것이다. 영어로 장군을 ‘제너럴(general)’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너럴’은 ‘일반적인’, ‘대체적인’ 외에 ‘종합적인 지식과 사고를 두루 갖춘’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즉 장군 정도의 지위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갖췄다는 의미로 ‘제너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선생은 그냥 선생이 아니고, 상사는 그냥 상사가 아니다. 그들은 나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지만, 상사는 나뿐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보고 다른 부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고 있고 회사 전체가 돌아가는 것까지 살피고 있다.
오만에 빠진 사람은 결코 고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계속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고수가 될 수 있다. 고수는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을 이미 가본 사람이다. 고수가 되고 싶다면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매사에 배우는 자세로 고수의 옆을 열심히 따라다녀야 한다. 그렇게 계속 임하다 보면 어느 새 남들이 나를 고수라고 불러주는 날이 올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은 미련 없이 버려라
당나라 현종 때 왕적신이 지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은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을 담고 있다. 그 중 5번째가 '사소취대(捨小就大)’이다. 흔히 아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반대되는 표현으로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막상 눈앞에 작은 이익이 보이면 그걸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판을 정확히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십결에는 이처럼 버리는 것에 대한 조항이 많다. 6항의 봉위수기(逢危須棄)는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마지막 조항인 세고취화(勢孤取和)는 세력이 고립되면 조화를 취하라는 의미다. 저항하다 전멸당하기보다는 화합하여 후일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때로는 더 큰 이익을 위해 아끼던 돌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생에서 모든 기회는 한번 뿐이다. 그리고 그 기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선택이 다음의 기회에 영향을 준다. 당장 주어진 기회는 달콤하다. 그러나 그것이 훗날 더 큰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걸 버려야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선택하지 못한 고민, 마무리 짓지 못한 인간관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얽매여 있는 물건, 기억, 감정 등을 훌훌 털어버리자.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뛸 수 있다.
*참고 - 위기십결(圍棋十訣)
첫째는 불득탐승(不得貪勝)이다. 바둑에는 승부가 나게 마련이지만, 너무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 비운 마음가짐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야 한다.
둘째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적진으로 공격해 들어갈 때는 신중히 하라는 뜻이다. 무슨 일을 결정하든 결정적 시기가 있는 법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공피고아(攻彼顧我)이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허점(虛點)을 잘 살펴야 한다. 섣부른 공격은 화를 자초할 뿐이니 나의 약한 곳부터 지킨 다음에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
넷째 기자쟁선(棄子爭先)이다. 바둑알 몇 개를 버리더라도 기선을 제압하고 있어야 한다.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대세를 좌우해야 한다.
다섯째 사소취대(捨小取大)이다.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원시안적으로 봐야지 근시안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여섯째 봉위수기(逢危須棄)이다.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조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일곱 번째 신물경속(愼勿輕速)이다. 경솔하거나 졸속하게 두지 말고 신중하게 두라는 말이다. 다급할 때 우왕좌왕하면 일을 더 망친다. 다급할수록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덟 번째 동수상응(動須相應)이다. 모든 바둑알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한 알의 바둑이 전체 판을 결정하는 수가 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서로 호응관계에 있으니, 전후좌우를 살펴 처신해야 한다.
아홉 번째 피강자보(彼强自保)이다. 상대방이 강하면 스스로를 먼저 보강해야 한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보다는 장래의 발전을 위해서 힘을 비축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열 번째 세고취화(勢孤取和)이다. 적의 세력 속에서 고립돼 있을 때는 우선 살아날 방도를 취해야 한다. 살아 있어야 재기를 노릴 수 있다.
5단 더 멀리 예측하라
“바둑에서 악수는 절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은 다르다. 악수인지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더 깊이, 더 오래 생각해라
눈앞의 몇 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잘못된 놓는 경우가 있다. 빠른 것을 쾌감을 준다. 재미있고 짜릿하다. 하지만 그것만 쫓다 보면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정말로 진지하게 오랫동안 고민하여 결정해야 하는 때에 경솔한 판단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 우리는 그럴수록 진지하고 신중한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은 조금만 더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일들이다.
문제는 언제나 욕심이다
꼭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꿈틀거리면 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면 서너 수 앞이 안 보인다. 그래서 수읽기를 제대로 한다는 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고수라면 좋은 수가 보이는 순간조차도 흥분해서는 안 된다. 그게 내 눈에 보였다면 상대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고, 그 역시 그에 대해 준비를 할 것이 분명하다. 좋아 보이는 길일수록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버린 상태에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여 최선의 수를 선택해야 한다.
신념을 위해 악수를 둔다
바둑에서는 악수는 절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은 다르다. 악수인지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노동운동에 뛰어들거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이런 사람들이 불쌍하고 한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념은 이런 시선을 뛰어넘는다.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영혼에 자유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수읽기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지개하면 자동적으로 '일곱 빛깔'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상에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분류하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여섯 개라고 생각한다. 고대 마야족은 무지개의 색을 다섯가지로 구분했다는 기록이 있다. 재미 있는 건 무지개를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로 배운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지개의 색을 구분해보라고 하면 정말 5~6개만 구별한다는 것이다. 무지개를 세 가지 색으로 여겨온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실제로 세 가지 색 이외에는 구분하지 못한다.
수읽기는 많이 알면 알수록 유리하다. 수읽기는 직관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 인생의 수읽기를 잘하려면 자기 분야에 대한 꾸준한 공부와 함께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만큼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강하다. 많이 알면 실수가 줄어들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따라서 최선의 수읽기는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과 실력을 쌓는 것이다.
프로는 시간을 이긴다
바둑 대국은 주어진 제한시간을 다쓰면 초읽기에 들어간다. 대회마다 규칙은 대회마다 다르지만 어떤 방식이든 시간에 쫓기면서 바둑을 두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시간제한이라는 압박 속에서 많은 일을 성취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긴호흡과 짧은 호흡의 과제들을 수없이 치르다 보면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지, 데드라인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바둑은 결정을 못하고 초읽기 시간을 넘기는 것보다는 차선의 수라도 놓는 것이 낫다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다 업무의 완성도도 좋지만 때로는 시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프로에게 시간과의 싸움은 숙명이다. 또한 프로라면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6단 아플수록 복기해라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눈을 부릅뜨고 실패를 봐라
복기는 사전적으로 ‘두었던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두는 것'을 뜻한다. 1991년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이창호를 만난 린하이펑 9단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 역전을 당하고 말핬다. 하지만 눈앞에서 세계 챔피언을 놓쳤는데도 억울한 표정 하나 없이 열일곱 소년을 붙들고 꽤 오랫동안 복기를 했다. 이날 이후로 이창호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린하이펑을 꼽고 있다.
복기는 대국이 끝난 직후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승자는 기쁨에 들떠 있고 패자는 억울함과 분함 등 온갖 감정으로 괴롭다. 그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한 마음으로 복기를 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복기의 의미는 성찰과 자기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 프로 기사들이 승부사로서 다소 공격적인 성향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품성이 좋은 이유는 어려서부터 복기를 통해 꾸준히 자아성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많은 바둑 고수들을 만나봤지만 그들 중 교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 안에 그런 어설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바라보다 날마다 뼈아프게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자. 그것이 나를 일에서 프로로 만들어주며,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켜줄 것이다.
적의 아이디어를 배워라
복기의 또 다른 측면은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하는 데 있다. 만약 이랬으면 어땠을까, 다른 수를 놓았다면 승패가 뒤집히지 않았을까. 그런 토론이 오가는 것이 프로들의 복기다. 적을 적으로만 본다면 결코 배울 수 없다. 진심으로 이기기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수는 날마다 복기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날마다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는 것이다. 낮에 둔 바둑을 그대로 기억하여 다시 놓아보는 것은 바둑 공부의 기본이다. 그날 둔 바둑은 현재의 내 실력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잘못된 게 있으면 지금 고치고 넘어가야 한다.
실패의 기억 따위는 지워라
자책에 사로잡혀 있으면 복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복기는 이미 둔 바둑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다. 복기는 단순히 복습하고 반성하는 의미가 아니다. 복기는 극복하고 흘려보내는 의식이다. 오늘 바둑을 망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둔 돌은 무를 수가 없다. 실패는 빨리 떨쳐버리는 게 좋다. 내일 또 싸워야 한다. 후회할 시간이 없다. 복기는 후회가 아니다. 복기는 새로운 전략의 수립이다. 실수를 반성한 후 더욱 창의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는 것이다.
7단 생각을 크게 열어라
“나누고 베푸는 것은 결코 한 방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혜택의 빚을 갚는 것이자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나눔과 베풂의 순환
일본이 있었기에 한국과 중국의 바둑이 성장할 수 있었다. 또 한국이 있었기에 중국의 바둑이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었다. 각자의 성장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 바둑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는 것도 한국과 일본, 중국이 노력하여 바둑 인구가 유럽과 북미, 남미로 널리 퍼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바둑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서로 나누면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나누고 베푸는 것은 결코 한 방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혜택의 빚을 갚는 것이자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적의 성장을 기뻐해라
앞으로 10년간은 중국 바둑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년 가까이 한국이 정상에 있었으니 잠시 중국에 그 위치를 물려줘도 괜찮다. 원래 모든 스포츠는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을 때에 더 발전하는 법이다. 게다가 중국 바둑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건 프로 기사들의 활동무대가 더 넓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전에는 일본과 한국이 주최하는 기전이 전부였지만, 이제 중국이 대규모의 국제기전을 쏟아내고 있으니, 그만큼 우리 기사들이 참여하여 수익을 올릴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중국 바둑이 거세게 성장하는 바람에 한국 바둑이 위축되었으나, 이 또한 바둑 발전의 과정이다.
살아남으려면 문을 열어라
50년 전만 해도 일본 바둑이 최고라서 프로 기사라면 다들 일본 유학을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일본으로 가지 않는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일본기원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전통과 권위를 내세우고 국내기전에만 매달리는 갑갑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 바둑의 부진은 이런 고립 때문이다. 문을 열고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다. 어느 분야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교류가 필요하다. 부족한 자는 더 배우기 위해서, 강한자는 그 지위를 즐기고 그 힘을 나눠주고 또 미래의 경쟁자를 키워내기 위해서, 최대한 문을 열고 교류해야 한다.
8단 사람에게서 배워라
“세고에 선생님의 유산을 나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나의 가슴은 몇 명이나 품을 수 있을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세고에 선생님은 나에게 바둑에 대한 사랑과 곧고 깊은 정신세계를 물려주셨다. 선생님은 바둑에 일생을 바치셨다. 바둑을 위해서라면 국가도 민족도, 자신의 명예나 이익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인인 우칭위안을 데려와 일본 바둑계를 뒤흔들어놓았고 한국인인 나를 세계 정상의 기사로 키워내셨다. 선생님의 레거시(legacy, 유산)는 바둑 역사에 살아 흐르고 있다.
세고에 선생님의 레거시를 나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1984년 이창호를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이 내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아무 조건 없이 창호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창호는 바둑에 대한 재능과 자세는 물론 인격까지도 모두 완성된 상태로 나에게 왔다.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열 살 때 들어온 그 꼬맹이가 열다섯에 나의 자리를 넘보는 호랑이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생애 최고의 기쁨과 최악의 지옥을 동시에 맛봐야 하는 혼란을 겪었다. 그때는 극복하기 힘들었고 그냥 견뎌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창호는 나의 자랑스러운 레거시가 되었다. 창호 역시 물려받은 이 정신적 유산을 잘 계승해줄 것이라 믿는다.
더 많은 사람을 품어라
9단 심신의 균형을 찾아라
“승부의 세계에서 나이와 체력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승부사로서의 인생은 끝난다."
나쁜 것을 몸에 집어넣지 마라
젊음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이다
단 한 꿋의 실력 차이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모든 것이 소용이 없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젊음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젊음이 모든 걸 이긴다. 그래서 젊음이 가장 무섭다. 물론 그렇다고 승부사로서의 인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나이와 체력은 핑계가 될 수 없다. 나이 때문에 체력 때문에 질 수 밖에 없다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승부사로서의 인생은 끝난다. 더 열심히 건강을 관리하고 더 지독하게 훈련한다면 언제든 이기는 건 가능하다.
따라서 젊은이는 젊음이라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되 그것을 과신하지 말며 겸손해야 한다. 젊은 축복이다. 그것만으로도 젊은이들은 대단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축복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덧없기도 하다. 큰 야심을 품고 의지를 불태우고 꿈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되,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더욱 노력해서 가끔 젊음을 이길 수 있다면 그 역시 삶의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이기지 못한다 해도 노력하는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오래 앉아 있었다면 이제 걸어라
내가 바둑과 함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늘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등산이다. 등산의 장점은 자연과 더불어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40~50대에도 한해 100국 이상의 대국을 치르고 간혹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날마다의 등산이 선물해준 체력과 지구력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체력이다. 바둑을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지능 스포츠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지막 한 수를 둘 때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버텨내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 다음은 체력이고 체력 다음은 정신력인데, 정신력조차도 결국은 체력에서 나온다.
등산을 통해 날마다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모든 잡념을 비우는 습관이 바둑에도 일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꼭 등산일 필요는 없다. 나에겐 등산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가벼운 조깅일 수도 있고, 수영이나 축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의 균형이다. 정신과 육체는 별개가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과중한 업무와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정신이 혹사당하는 시대일수록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 한다.
10단 생각할 시간 만들기
“다른 아무것도 없이 온전히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정적의 시간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이 생각을 방해하는가
언젠가 딸에게 스마트폰이 휴대폰과 뭐가 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딸의 대답은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체크할 수 있고, 여러 사람과 함께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기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 하며 살아야 하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술이 개발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실시간 체크하는 이메일 중에 정말 실시간으로 꼭 봐야만 하는 이메일이 몇 통이나 될까. 수많은 문자 중에 정말로 반드시 주고받아야 하는 게 얼마나 될까.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얼마든지 나중에 해도 되는 일들에 몰두하느라 진짜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 사라진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켜놓은 TV,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점점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린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휴대폰을 끄고 음악을 끄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꼭 거창하게 뭔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눈을 감고 그냥 멍하게 있어도 좋다. 다른 아무것도 없이 온전히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정적의 시간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창의적인 생각은 머리속이 오만 가지 생각으로 채워져 있을 때는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다 비워내고 멍하게 있는 순간에 번쩍 하며 떠오른다. 날마다 방해받지 않는 생각의 시간을 가지면 예전보다 짜증도 덜 내고 차분해지고 훨씬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모든 성공한 사람은 고독 속에 자신을 떨어뜨린다. 이들은 일부러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오랜 시간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모든 위대한 잒품, 뛰어난 실력은 고독을 통해 탄생한다. 사람들은 성공의 화려함만 본다.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밤을 지독한 고독에 갇혀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바둑을 공부하는 과정도 고독이고 승부를 펼치는 과정도 고독이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도 고독이다. 혼자 감당해야 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패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고독이라는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강자란 보다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 낸 사람이다. 인생을 보다 지혜롭게 헤쳐 나가고 꿈에 더 높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실력과 더불어 내면의 성숙함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혼자 있고 더 많이 외로워야 한다. 더 많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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