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끌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북라이프)에서 낸 책이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펼쳤다가 반해버렸다. 역시 북라이프는 배신하지 않았다. 이 책을 설명하자면 ‘성인이 된 어른들에게 꼰대가 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책’이다. 그래 사실 자칫 잘못하면 ‘꼰대의 꼰대짓 하지 말라는 꼰대짓’으로 비칠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이 책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박산호라는 작가가 가진 태도와 문체가 가진 힘이다. 마지막 장에 ‘느낌이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처럼 읽는 내내 느낌이 좋은 어른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하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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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진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경험과 지식은 제대로 살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능성의 폭을 좁히는 경험이라면 차라리 풍부해지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은가? (히사이시 조) 흔히 경험은 풍부하고 많을수록 좋고 , 우리가 해온 경험이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삶을 더 깊이 있게 해줄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세상에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험이 허다하며 내가 겪은 경험을 전체로 확장할 수도, 일반화할 수도 없다. 내게 있어 차 사고를 당한 경험은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는 필요성을 환기시키기보다 운전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란 공포만 가중시켰다. 나의 세계는 확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좁아졌다. 경험이 풍부할 수록 좋다는 통념이 위험한 이유는 그런 믿음을 본인 한 사람의 삶에 적용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 특히 자식이나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사서라도 고생을 하라는 말은 거짓말이며 자진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하는 고생은 인간의 폭을 넓혀주지 않는다. 17-18 경험은 정말 좋은 스승일까
“우리의 과제는 이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용감하게 실패하는 것이다."(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살다 보면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넘어져도 될 순간과 안 될 순간을 구분하는 지혜를 기로그, 그렇게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는 묘미란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다. 50 더 잘 실패하는 방법
내가 너보다 더 살아봤으니, 내가 너보다 더 많이 경험해봤으니,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배웠으니, 라며 타인에게 뭔가 그럴듯한 해주고 싶을 때는 한 번 더 입술을 깨물고 생각해봐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과연 누가 부여한 것인가? 내가 말을 할 권리가 있다면 상대에게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65-66 막말 듣지 않을 권리 있습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매력이 없는 사람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하지 않나?(이치로 메시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이상한 말에 분명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례한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용기를 얻어 다음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인의 무례함에 대처하는 연습과 동시에 나도 타인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는 자세일지 모른다. 83-89 무례함에 대처하기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95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들과 일 이야기를 할 때면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일은 소처럼 하지만 마음은 지치지 않는 이들을 보며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간을 떠나 인간을 고양시키는 뭔가가 있다는 걸 느낀다. 113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가족은 가장 보편적인 종교다. 가족은 무조건 사랑하고 보듬고 용서해야 할 대상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란 교리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살아서 지옥을 맞는다.(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힘들다. 나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를 지원해주고 그 이상은 선을 긋는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못해줘. 엄마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우리 가족이 먹고 살려면 더 이상은 쓸 돈이 없어. 더 하고 싶다면 네 힘으로 알아서 해야 해.” 그렇게 말한다. 아무리 끈끈한 가족이라고 해도 자기 행복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자 부모가 먼저 확실하게 선을 그어주면 아이는 알아서 자신이 성장할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119 서로의 행복을 인질로 잡지 말자
“어머니, 아이를 때리지 말아주세요.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때리셨겠지만 그러지 마세요.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제발 때리지 말아주세요.” 난 깜짝 놀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노신사는 딸아이를 한 번 더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 후에 내게 인사를 하고 멀어져갔다. 세상엔 뽀르뚜가 아저씨(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처럼, 지하철에서 내게 깨우침을 줬던 노신사 같은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지 못할 때 아이는 사랑과 믿음으로 소중히 다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어른. 138-141 때로는 뽀르뚝 아저씨처럼
나는 글을 늦게 깨우친 탓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싫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부모님께 비밀로 했다. 싫은 것을 참으면 어른들은 안심한다.(모리 히로시,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대다수의 어른들은 한창 민감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눈에 띄는 차이점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몽고메리) 내가 나이 들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있었다. 늙는 것도, 자라는 것도 그만의 속도와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데 어렸을 때 어른들의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커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딸은 어엿한 성인이 되고 나는 허리가 꼬부라지고 무릎에서 힘이 빠진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 딸의 속도와 나의 속도가 또 달라지겠지. 다리가 아파 빨리 걷지 못하는 나의 속도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딸이 먼저 눈치 채고 기다려주길 바란다면 나 역시 딸이 성숙해지는 속도와 과정을 기다려주고 배려해줘야 한다. 149-155 어른의 속도 아이의 속도
아이들의 생에서 일정 시기를 거쳐 부모에게서 독립해 자기만의 생을 꾸려가려고 할 때 그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만능 도구이자 믿을 만한 친구이자 강력한 무기는 바로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체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책이 머그잔이나 베개나 핸드폰과 같은 일상의 사물이 될 때, 그럴 때 책은 강력한 우군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우군을 지원해주려면 먼저 책을 읽는 방법밖에 없다. 160-161 책이라는 묵묵한 친구가 있다
양육비가 끊겨버린 아이들을 차마 내치지 못하는 로자 아줌마처럼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준 아줌마를 버리고 도망치지 못하는 모모가 가혹한 운명을 버텨낼 수 있었던 동력은 결국 사랑의 힘이었다. 그러니까 하밀 할아버지의 말이 절반은 틀렸다. 사람은 사랑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을 가르쳐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돈이 위세를 휘두르는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을 버티게 하는 근원은 사랑이다. 166-167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난 떠나간 너를 기다리는 게 아니야. 널 떠날 수 있는 내 마음을 기다리는 거야.” 그는 오래전에 나를 떠났는데 난 아직도 그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떠나보내야 한다. 작별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 순간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슬픔이 다가와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고, 결국 떠날 순간이 온다는 걸 아니까. 172 슬픔을 떠나보내는 법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츠즈키 쿄이치, 권외편집자) 그때는 새 양말을 사다줘도 짜증내는 아이에게 서운했는데 작가의 말에 다시 생각해보니 의도치 않게 아이가 자신의 취향을 키워가는 과정을 내가 방해하고 있었다. 아이의 취향에 간섭하려 한 내 과오를 반성하다 문득 우리 집 그릇 장 제일 위 칸에서 주인의 손길을 타지 않은 채 쓸쓸히 방치돼 있는 파란 접시 세트가 생각났다.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가 사뒀다가 준 접시 세트였다. 엄마와 그 접시를 생각하니 그래도 딸아이는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뭐라고 하건 개의치 않고 흰 눈이 펄펄 내리는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앨범과 굿즈를 사기 위해 가끔씩 내 눈을 피해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돈을 모아 기어코 사고야 마는 아이. 아이는 그렇게 자기가 나의 분신이 아님을, 자기에겐 자기만의 휘향과 의견이 있음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177-182 취향은 내가 내는 목소리
그러나 사실 나이가 먹어서 나쁘기보단 좋은 점이 더 많다. 젊었을 때는 나를 잘 몰라서 항상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말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나’라는 사람과 같이 살다보니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색과 옷과 화장이 나에게 잘 어울리며, 내가 어떤 분위기에 끌리고,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없어 불쾌한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알게 됐다. 이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소득이다. 나를 받아들이면서 나와 친해지고 나를 좋아하게 됐다. 201 나이 먹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아
살면서 아프고 힘들었던 날은 누구에게나 쇠털처럼 많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을 때 친구들과 지인이 열화와 같은 반대를 샀던 적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 마음에 비수를 찌르는 말도 몇 번 들었다. 다 조언을 가장한 비판이나 심판이었을 뿐이다. 210 그냥 들어줄 것
그때는 몰랐는데 공수표를 남발하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하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합쳐져 내 마음속에 거대한 응어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항상 어떤 약속이든 늦지 않기 위해 먼저 가서 기다리는 나. 상대가 약속에 늦으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나. 그런 나의 마음속엔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분노하던 아이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어서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 신뢰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자식 간의 신뢰를 저버리면 타인과 맺는 관계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진다. 그래서 부모든 누구든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경솔하게 해서도 안 된다. 219-221 약속의 의미
가끔은 만남 자체가 불쾌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기분 좋은 사람도 있었다. 느낌이 좋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 인연이 이어졌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예의를 깍듯하게 갖추는 사람들이었다. 예의란 단순히 상대의 나이에 상관없이 존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함께 격을 갖춰 상대를 존중해준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멋진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어른이라고 항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풍부하진 않다. 인간관계에서 셈이란 굳이 장부책에 적어놓지 않더라도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 선배가 비싼 밥을 샀다면 가끔 커피 한 잔 정도는 후배가 사는 미덕도 발휘해야 관계가 돈독해지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셈의 미학을 잘 실천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자기 관리가 잘된 멋있는 어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눈빛이 맑고 형형한 사람,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올 줄 아는 사람, 일이나 다른 무엇에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고 적절하게 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 무엇보다 욕망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충실하게 사는 자세가 맑은 안색과 눈빛에 드러나는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욕망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하다. 잘 먹고 잘 입고 큰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야 당연히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런 노골적인 욕망 말고도 다른 가치를 대화에서 듣고 싶다. 그래서 좁디좁은 내 세계를 조금이라도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231-234 느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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