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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닿지 않지만, 난 그 자리에 있어요.'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부인
카테고리 소설 > 테마소설
지은이 버지니아 울프 (집사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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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얼굴이라고, 하고 부인은 냉소했다. 다 쓸데없는 거란다, 얘야. 왜냐하면 먹고 마시고 같이 자고 그리고 좋은 날 궂은 날도 있어서, 인생이란 장밋빛 얼굴 같은 건 문제도 되지 않거든. 더구나 정말이지, 이 캐리 뎀스터는 켄티시 타운에 사는 어떤 여자하고도 운명을 바꾸고 싶진 않았단 말이야! 그러나 그녀는 동정을 애원했다. 장밋빛 얼굴을 잃어버리 데 대한 동정을. - p. 45~46

 신기하다. 김정 교수님께 <등대>에 관한 수업을 받고 나와서 그런가. 그럭저럭 내용이 이해가 잘 된다. 더불어 그녀가 소설에 집어넣으려고 애쓴 듯한 무언가의 감정들이 툭툭 살아서 튀어나오는 것이 선명히 보인다. 여태까진 막연히 그녀의 소설을 봤지만 이젠 사람들이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분노와 공포를 맨 손으로 붙잡은 뒤 뭉쳐서 크게 만들고, 딱딱하게 굳혀서 화석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소설 속에 박아넣는다. 독자들은 그 위를 불편하게 지나다닌다. 적어도 내가 느낀 그녀는 그랬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겨우 두 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녀의 글 쓰는 방식이 하도 특이해서 오히려 그녀의 스타일대로 따라가면 주제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을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게 한다. 한 명의 생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십명의 생각들이 우리의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의 관점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때 등장인물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메세지는 넘치고 넘치지만, 이 책에서는 교훈만 달랑 담겨져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현실에 없는 댈러웨이 부인, 현실에 없는 피터가 된다. 그 오싹한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아울러 버지니아 울프가 항상 찬양하는 전통적인 여성, 남성을 거울처럼 비추는 여성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그 즐거움을 직접 감상하시라고 마지막 부분은 인상깊은 글귀에 올리지 않았다. 직접 읽어라.

 사실 <등대>를 읽고, 영화로 봤을 때 많이 실망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전하려고 하는 효과는 아무래도 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나보다. 그래서 사실 <댈러웨이 부인>을 영화로 선뜻 접하기는 겁이 난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그려냈다는 <세월>이란 영화는 보고 싶다. 매우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은 든다만...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울프를 연기했을 때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분위기가 남달르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