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란 이렇게도 가혹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같은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박해하고, 내가 오늘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인생은 내일 아침에 숨을 쉰다는 보장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나없이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손에 넣은 듯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사람이 하루에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언 젠가 신문에서, 어떤 할 일 없는 친구가 영혼의 무게를 달았더니(아마 죽기 전휴의 몸무게를 비교한 것일 테지만) 10그램 정도가 나가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나는 이 네 가지의 무게 중에서 애哀의 절대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삶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쁨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이 생겨서 금방 무뎌지지만, 슬픔이란 몇 배 더 여운이 길게 남는 법이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자살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것은 자살을 선택해야 할 정도의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세 치 혓바닥으로 그들 앞에서 삶과 죽음을 감히 이야기하기가 송구스럽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그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죄의식과 공범의식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연으로 점철된 삶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필연이라고 믿는 현재의 모습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들과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삶의 소중한 역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을 세밀하게 기록하지 않았거나 무심코 차창으로 흘려보냈거나 무릎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은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수록된 몇십 개의 에피소드보다 훨씬 더 눈물겹고 감동적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이 혹시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돌아보면 온 세상은 사랑인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힘들게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이긴 사람에게, 이깟 목발쯤이야 뭐 대수로울가..하지만 오직 자신에게만 불행이 닥친 것 같은 절망감을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오래 전에 어떤 스님께서 자비심이란 '나를 상대와 똑같이 낮추어 상대방의 슬픔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은 아마 '내가 상대보다 우월하고 내가 상대보다 더 배우고 내가 상대보다 더 힘이 세어서 무엇을 나누어주는 동정이 아니라, 내가 그와 같이 아프고 내가 그와 같이 슬픔으로써 그를 이해하고 나누고 함께하는 그 마음이 바로 참사랑'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박경철 지음/리더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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