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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자신을 비춰보는 시간' [거울: 원성스님]


거울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원성 (이레,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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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벗고
정신차려라

- 홀딱벗고새의 전설 中

 

  여기서 홀딱벗고 새란 검은등비둘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소리를 들으면 정말 '홀딱벗고' 비스무리한 음정이 나온다.

 인상적인 글귀에 적힌 글은 시의 일부이다. 이 시의 뒷부분에 홀딱벗고새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 스님이 죽을 때 홀딱벗고 새로 환생하여 '쓸데없는 욕망을 내던지고 공부를 열심히 해라'라는 식의 교훈을 주려고 계속 지저귄다고 한다. 내가 스님은 아닐지라도, 이 글을 읽고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 말 시험이 끝난 이후로 1월까지는 계속 놀고먹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로 인해 '아직 다 놀지 못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무언가를 배우려 차근차근 설계를 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누가 최초로 검은등뻐꾸기를 홀딱벗고 새라고 이름붙였을까? 누가 그렇게 기막힌 전설을 가져다 붙였을까? 검은등뻐꾸기는 짝을 구하기 위해, 혹은 무념무상으로 지저귀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내심 공부하기 싫었던 어느 스님이 공부하러 산길을 가다가 검은등뻐꾸기의 지저귐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뒤에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다 해석하기 나름인 듯 하다.
 아무튼 원성스님의 책은 매우 오랜만이었다. '풍경'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본인은, 어느날 알라딘 중고서점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원성스님의 '초동안 얼굴'이 역시 이 책에서도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풍경'을 출판한지 1년 남짓해서 다시 이 책을 냈다고 하니, 그닥 차이는 없을텐데 왠지 '풍경'을 출판했을 적 사진보다 훨씬 더 그림 속 아이들과 많이 닮아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어려지시나... ㅎㅎ 다분히 방랑기질이 있어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원성 스님은 해인사에 계신다. '풍경'에서 시화를 담았는데, 그림에서는 주로 꼬마스님 즉 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에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 전시회까지 하셨다는 걸 보면 꽤 유명해지셨던가 보다. 전시회에서 다 팔려나간 그림들을 그리워하며 울었다는 이야기에 매우 놀랐다. 속세에서는 볼 수 없는 감수성이 느껴졌었지만, 자아에 대한 집착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 솔직한 성격이 독자들에겐 매우 친근하게 다가올 테지만, 한편으로는 '저러다 무소유의 경지에 도달하시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도 들었었다. 나도 참 어린나이에 별걸 다 걱정했었구나.

 

 

여기서 원성스님 초동안 얼굴 인증사진. '풍경' 표지에 있는 사진은 2001년도 사진이고, 위 사진은 2006년에 찍으신 사진이라 한다. 그 동안 유럽 유학을 갔다오셨다는 듯. 근데 거뭇거뭇한 수염 빼고는 얼굴이 변한 게 없다... 5년이 지났는데. 나 좀 소름끼쳐도 되나요. 아이를 그리다보면 회춘하나 ㅠㅠ

무튼 '꽃비'라는 동화책도 출간하셨다는데 또 질러야 할 듯.


 그러나 두번째 책 '거울'에서는 어느 정도 성숙해진 원성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에 대한 정리와 성찰을 하시는 듯 하더니, 해인사의 생활과 도반 스님들에 대해서 두루 소개하신다. 시라기보다는 아예 산문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편이 더 나았다. 나를 평정하면 다른 사람을 평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평정할 수 있으면 사회를 평정할 수 있으며, 사회를 평정할 수 있으면 우주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풍경에서 보였던 '한'이라는 감정에서도 좀 더 차분해져서, 전체적으로 환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요새 정치에 관한 구질구질한 이야기만 듣고 보다가 눈을 정화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거울'엔 동시에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비춰졌다.

진짜 거울에서 얼굴에 난 이마 주름살을 발견한 것마냥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풍경'을 읽었을 때의 내 모습하고는 너무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전에 풍경을 읽었을 땐 그 감수성에 쉽게 전염이 되어 시를 소리내서 읽고 난리도 아니었다. 눈물까지 흘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적절하게' 감동을 먹어가며 책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원성 스님이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 장면을 상상하려 노력했지만, 자꾸 잡생각이 들어 집중을 하고 이미지를 구성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나쁜 사람들이 우리나라 4대강에 콘트리트를 부어버렸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계속 이렇게 되뇌어가는 것이었다. "아이코, 어떡하지. 원성스님이 이렇게 좋아하시는 바람, 물, 나무 등등이 다 파괴되어가는데." 아무래도 이것을 녹색당의 폐혜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지형상때문이던, 이념 때문이던, 종교 때문이던 여러 개인사정으로 인해 자연 속에서 사시는 분들이 우리나라엔 정말 많다. 그런데 '개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무차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분들에겐 '미운오리스님'같은 깜찍한 호칭이 매우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그렇다. 불교에서나 천주교에서나 남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아직 마음이 어려서 그런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속세에 이미 물들어버리고 어른이 된 나로서는 일단 실컷 그들의 잘못과 문제를 지적해줌으로서, 더이상 한국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인 듯하다. 남자친구는 너무 거창하지 않느냐 물어봤지만, 나이가 들어서 깨끗한 바다와 깨끗한 산을 볼 수 없다면 나에겐 그만큼 슬픈 일이 없을 것 같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출판된지 11년도 더 지난 책이다. 더구나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중고서점에서 3000원에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너무나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책을 잘 보관해주신 이 책의 전 주인들에게 감사해야겠다. 친구의 지적도 있고하니, 이제부터 나도 책을 좀 깔끔하게 써야 한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꾸 중고책을 보면 청결도를 눈여겨보게 된다. 여전히 본인은 중고책에 피가 묻어있든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묻어있든 상관없이 일단 지르고 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을 쓰는 듯하니 말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의문점이 든다. 내용이 중요하지 표면이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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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