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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공정무역 NO! 공생무역 YES!

지금은 일본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에서 현대문학과 만화, 영상 등을 가르치고 있지만, 신명직 교수(51)는 1980년대 말 인천을 주름잡던 노동운동가였다. 석사학 위 논문의 주제로 삼을 정도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천착했던 그는 소설 속 난쟁이의 벗인 ‘지섭’을 꿈꾸며 노동 현장을 누비다 몇몇 난쟁이가 골리앗(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에 올라간 후 스스로 골리앗처럼 커지자 미련 없이 현장을 떠났다.

그런 그가 요즘은 ‘동아시아 난쟁이’들의 벗을 자청하고 나섰다. 파키스탄 수제 카펫공장의 열악한 아동노동 현실을 고발했다가 카펫 마피아에게 암살당한 열두 살 소년 ‘이크발 마시흐’의 소식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접하고서다.

   
ⓒ시사IN 안희태
파키스탄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먼저 네팔로 들어간 그는 그곳의 수많은 이크발 마시흐들을 만난 뒤 동아시아의 ‘아동’ 노동과 ‘이주’ 노동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산골마을의 빈곤이 지겨워 대도시 카트만두로 떠나는 아이들, 카트만두의 빈곤이 지겨워 또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떠나는 그들의 형과 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동아시아의 산골마을을 사람이 살 만한 넉넉하고 푸근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신 교수는 그래서 ‘공생무역’이 더더욱 활성화되어야겠다고 절감했다(그는 해외 생산자를 우선시하는 ‘공정무역’, 국내 소비자를 우선시하는 ‘생협’보다 양쪽 모두를 존중하는 의미의 ‘공생무역’을 쓰자고 한다). 그는 “한국, 일본에 나왔다 귀국한 이주노동자들이 공생무역에 앞장서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말도 통하고 양쪽 문화도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 교수는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시아 마을과 마을 사이에 공생무역에 대한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구마모토에 ‘동아시아공생문화센터’를 만들고 올 6월 세 번째의 ‘동아시아 이주 공생영화제’를 개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최근에는 ‘네팔 난장이’들의 얘기를 담은 책 <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다오>를 내기도 했다.

“국경선을 걷어내자 무수히 많은 전태일이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라는 표현에서 그가 이미 동아시아 난장이들의 ‘지섭’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