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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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마모 (해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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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부하면서도 내게 안겼고, 내게 매달리면서도 나를 밀어냈지만, 그런 변덕스런 그녀의 태도에도 불안 따윌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더운 날씨와 축축한 공기와 사방에 우거진 수풀과 부서진 헬기의 잔해가 사실인 것처럼, 그곳에서 그녀가 내 것이고, 내가 그녀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 같았기 때문이다.- p. 62


 '비쳐보이는 그녀' 이후로 마모님 작품을 오랜만에 접해본다. 무슨 주제로 쓴 책을 봐도 그녀의 소설은 매끄러운 글솜씨를 뽐내며 여타 인터넷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이 작가분은 동성만을, 특히 레즈비언들만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쓰는 매우 드문 작가라서 비교할 만한 소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지만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호의 성공사례'라는 소설을 쓴 동성소설작가와 똑같이 이 분도 극중극을 주제로 잡아서 글을 썼다. 일단 전자는 게이소설이고 내가 읽었던 소설은 레즈소설이니 아까 말했던 대로 비교할 수가 없지만, 정말 짜고 친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두 소설 다 일반소설계에 알려질만큼 히트를 쳤으며, 두 작가가 처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새삼 그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달까. 누가 누구를 베꼈느니 시비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해서이다. 어쩌면 둘 다 미묘하게 동성애 분위기를 풍기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속단은 금물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줄거리소개를 하겠다. 사회부기자를 꿈꾸는 방송기획자 지원 지현과 풋내기 모델 미영은 헬기의 불시착으로 인해 어느 밀림에서 조난당한다. 좋은글귀에 적힌 것은 지현의 독백. 참고로 지현과 미영은 둘 다 여자이다. 그러나 정글에서 생존의 위협을 겪고 본성에 눈 뜨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디 남녀를 가리겠는가. 그 둘은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었고 각자의 역할에 순응했다. 그러나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사랑은 당연히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이 소설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 이 부분이 너무 간략하다. 현실에서 부닥치는 그들의 한계와 좌절을 좀 더 자세하게 그렸더라면 좋았을텐데. 메스컴의 염문 아닌 염문에 시달리는 지현과 미영이 등장하긴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역시 이게 로맨스물의 한계인가. 뭐 어쨌든 지현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인지, 왜 여자들이 두서명씩 꼬이는 건지-_-; 방해자들이 좀 더 독하게 나왔으면 레즈물의 할렘이 달성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 아무튼 여러가지로 내용이 참신해서 흥미있게 보았다. 특히 방해자들 중 한 명인 안상희 정말 위험할 정도로 내 취향!  '슬레이어즈'의 제로스와 '흑집사'의 시엘이 적절히 섞였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한 때 그런 타입에 열광한 적이 있어서(...)

 혹시 중고책방을 가다가 '메마르고 하얀 목조르기개'라는 책을 발견하면 꼭 구입하라고 권하고 싶다. 마모님이 집필하신 책이다. 최근 이 분의 소설이 e-book으로 출간되고 있는 중인데, 이 소설만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지, 아쉽다.

밀림 속에서 갖혀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본성을 보일지 모른다.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기나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은 분명 지독히 달콤하고 끈덕질 것이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