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부모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어려워해야 한다. 무서워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어려워하면 잘못한 것도 말을 하게 된다. 존경하는 마음, 즉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기사중에서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평사원에서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카드회장을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 정치인이다. 이 이력만을 보면 노동문제를 포함해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정치인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재 한국 비정규직의 비극은 고용도 불안정하고 인건비도 정규직의 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어떤 이유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는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동인이 무엇인가? 그 동인이 하나도 없다. 현재 한국 비정규직의 가장 큰 비극은 이점이다"라고 답한다.
"1999년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설 노사 협상을 했는데 노조 대표들이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야기 했던 것이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쓰고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사측에서는 노사협상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완전고용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써주었다. 단, 각서 뒤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았는데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사장(내가)이 아니라 시장이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다행히 당시 노조 위원장 정갑득 씨가 내 말을 이해해주었다. 그래서 협상이 이루어졌고, 또 시기가 좋아서 이후로 현대자동차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단서를 달지언정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는 이계안 사장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의 마음과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어눌하게 답하라"는 컨닝페이퍼를 들고 정말 느리고 어눌하게 질문을 피해가려고 애쓰는 조남호 회장의 모습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보니 상호신뢰 회복이 노동문제를 해결할 핵심이라는 그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 우스갯소리로 민주당 내에 육두품 이야기가 있다. 두 가지 잣대로 지역이 호남이고 출신이 운동권이면 성골이고, 둘 중에 하나면 진골이고, 둘 중 아무것도 아니면 잘해봐야 육두품이라는 것이다. 육두품의 전형적인 사람이 이계안이라고들 한다(웃음). 안타까운 일이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여러 다양한 세력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편협하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이 이러한 지역성과 같은 편협성을 버려야 한다."
재미있다. 그가 그 스스로를 육두품이라고 이야기한다.
" 민주당이 정말 국가경영에 책임을 진다면 통절한 반성의 시기가 있어야 하고, 집권 시기 잘못했던 것들과 정권을 빼앗긴 연유가 무엇인지 뜯어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잘못으로 민주당에 기회가 온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민주당의 큰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무책임한 것을 책임지는 방법이 정치를 하지 않는 방법과 더 열심히 하는 방법이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작(을) 지역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 후반의 정치적 혼란과 골품제의 모순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사회개혁을 이끌었던 이들이 바로 육두품들이 아니었던가. 그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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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안 2.1연구소 소장.ⓒ프레시안(최형락) |
최근 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결 론적으로 말하면 내년도 선거를 치룰 것이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고려하고 있는 지역은 동작(을) 지역이다. 동작(을) 지역의 경우 내가 책임 져야할 것이 있어서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18대 총선 당시 내가 불현듯 선거를 불출마해서 동작(을) 지역이 사고당부가 되었고, 당시 야권의 대표 정치인인 정동영 후보가 동작(을) 지역으로 출마하였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일종의 저격수처럼 당시 이미 5선 의원이었고, 대통령 후보 반열에 있던 정몽준 의원을 공천했다. 결과적으로 정몽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고, 정동영 의원은 대선에 이어 연속 두 번에 걸쳐 떨어지게 되었다. 이후 낭인 생활을 하게 되는데 나는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있었고, 정동영 의원은 듀크대학에 있었다. 미국에서 낭인 생활을 하면서 재보궐 선거에 나가느냐 마느냐는 것에서부터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결과적으로 탈당까지 해서 출마하고, 다시 복당을 하는, 굉장히 복잡한 정치상황을 초래했다. 나 혼자 섬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는데 섬이 아니라 나의 결정으로 정동영 의원의 정치운명이 전혀 예측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새삼스럽게 세상이라는 것이 연결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점에서 나는 동작(을) 지역에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
내 년도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지만 더 큰 것은 대통령 선거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인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진영 간의 싸움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려면 국회의원 선거 자체가 목적이이자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대통령 선거에 이기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준비해야 한다. 지금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 한나라당과 대통령에게 민심이 많이 떠나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근래에 이루어지는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민심의 흐름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국한해서 보면, 서울 안에 서울이 또 있어서, 일정 지역에서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높은 지역도 있고, 지역특성으로는 뿌띠끄 호남이라는 호남세가 강한 지역도 있다.
특히 인물, 특수성 때문에 민주당이 아직도 일방적으로 깨지는 지역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지역 중 하나가 동작(을) 지역이기도 하다. 불출마 이후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선거구에 문제를 일으켜 마땅히 유지해야 할 지역을 잃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책임한 것을 책임지는 방법이 정치를 하지 않는 방법과 더 열심히 하는 방법이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작(을) 지역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근 래에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문제, 유성기업 사태 등 노사 간 또는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1999년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임금협상, 단체교섭을 성공적으로 타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노사 간 협상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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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내가 1998년도 현대자동차 사장이 돼서 1999년도에 노조와 임금협상을 했는데, 당시 그 협상 자리에서의 불신의 깊이는 말 그대로 심연이었다. 어제까지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사람들을 느닷없이 가축을 몰아내 듯 몰아내었다. 말인즉슨 명예퇴직이라는 것인데, 거기에 명예라는 것은 없다. 이런 일을 겪다보니 서로 신뢰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협상을 했는데 노조 대표들이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야기 했던 것이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쓰고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사측 입장의 사람들은 회사가 문을 닫아도 완전고용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입장이었다. 사측에서는 노사협상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완전고용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써주었다. 단, 각서 뒤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았는데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사장(내가)이 아니라 시장이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다행히 당시 노조 위원장 정갑득 씨가 내 말을 이해해주었다. 그래서 협상이 이루어졌고, 또 시기가 좋아서 이후로 현대자동차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한다는 것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었고, 정리해고, 명예퇴직 했던 사람도 원대복귀 시킬 수 있었던 기회가 생겼다. 특별히 내가 능력이 있어서 교섭이 잘 된 것이라기보다 때(時)가 좋았던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와 사람이란 것이 잘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심지어 못 준 상여금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충을 해주었다.
결국 노사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신뢰가 깨지면 진정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다.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가 없기 때문에 노사관계가 불신으로 치닫고, 해결해야 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사문제에 대한 해결이 사회갈등의 전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작은 믿음부터 쌓여서 신뢰라는 것을 이루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 깨진 신뢰는 순간이지만 다시 신뢰를 쌓아 나아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한진중공업의 가장 큰 문제는 노사 간의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논하기 이전에 김진숙씨가 지금 자신의 단 하나의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데, 이에 걸 맞는 대우를, 대응을 해주어야 한다. 걸 맞는 대우라는 것은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순히 경영책임을 지고 있는 사장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대주주이자 회장인 조남호 회장이 나타나서 무릎을 맞대고 진솔하게 서로 간의 입장과 차이를 이야기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 될 때,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아갈 것인가를 대화를 통해 타협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쪽에선 전국적 투사가 나와서 시위를 하고 또 그것을 응원하고, 다른 한쪽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제해결 방법이 아니다. 단번에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한진중공업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련하여 현재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법 과 제도를 가지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책을 다루는 사람과 사용자들이 고용의 안정이라는 것과 노동의 대가가 trade-off(상충관계) 된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시 말해, 고용의 안정이 보장이 되면 보수는 좀 덜 주어도 되는 것이고, 반대로 고용이 불안정하면 불안정한 값을 치러서 돈을 더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공무원들이 일반 직장인보다 월급을 덜 받았다. 덜 받은 이유가 정년이 보장이 되고 연금 받는 것이 있어서이다. 계산하기 따라서는 공무원이 더 좋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우수한 인력이 공무원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비정규직의 비극은 고용도 불안정하고 인건비도 정규직의 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어떤 이유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는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동인이 무엇인가? 그 동인이 하나도 없다. 현재 한국 비정규직의 가장 큰 비극은 이점이다.
한 국의 사회안전망의 문제도 있다. 회사를 다니다 실업 상태가 되면 천당에서 지옥을 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되어서 실업상태가 곧 죽음이라는 상황이 안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 회사를 떠나도 사회안전망을 통해 훈련을 받고 새롭게 일할 기회를 보장해주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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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이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교육의 문제, 교과서를 고쳐야할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이 노동자이다. 단지 투쟁해서 노동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야 한다. 노동이란 것은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이고, 그러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임을 어려서부터 교육해야 한다.
근래 정운찬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익공유제 관련해서 일찍부터 이야기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익공유제와 공동R&D
이 익공유제 관련 내가 현대자동차(주) 대표이사일 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정부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이 진념 위원장이었다. 현대자동차가 이익공유제를 하면 나라가 다 뒤집어질텐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설명을 했는데, 노동조합하고 사용자가 임금을 해마다 협상하고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격년제로 협상을 하는데, 항상 파업을 한다. 파업을 하는 이유가 간단하다. 파업해서 노동자가 잃는 것이 없다. 무노동무임금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파업기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무노동무임금이 지켜지면 잃는 것이 있다. 그런데 무노동무임금이 지켜지지 않는다. 말은 다 무노동무임금을 지켰다고 하지만 각종 이름을 붙여서 잃었던 인건비를 보상해 준다. 파업에 관해 사측에서 손배소를 제기하고, 형사고발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단체협상을 어렵게 이루고 싸인 할 때, 노조 측에서 말을 한다. "사장님 싸인 할 텐데, 한 가지만 더 들어달라"는 요구를 한다. 무엇인지 물어보면, 손배소를 취소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을 무시할 재간이 없다. 어렵게 협상을 이루었는데, 손배소로 인해 협상을 무효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조 측에서 잃을 것이 없는데 파업을 안 할 이유가 없다. 노동조합에서 파업이라는 것은 연례행사고 나쁘게 말하면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노조의 집행부가 사용자와 협상할 때의 논리도 그렇다. 집행부는 회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는가? 라는 식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이익공유제 설명을 했었다. 내가 30 : 30 : 40으로 영업 이익을 나눠 갖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회사를 만든 것은 자본가들이니 30%는 자본의 배당금으로 쓰고, 30%는 정상적인 상여금을 포함한 성과금으로 쓰자. 그리고 40%는 회사를 위해 유보해 두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이익공유제를 바탕으로 회사가 운영이 된다면 연례행사로서 파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상당히 어렵게 이해를 했지만, 내가 현대자동차를 관두면서 자연스럽게 이익공유제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졌다. 그런데 현재 이런 개념을 삼성전자가 쓰고 있다. 한 회사지만 사업부별로 이익을 많이 낸 부서는 연말에 특별 성과금을 주는 식으로, 똑같은 내용의 것은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 R&D라는 것은?
자 동차 개발을 하면 엔진과 같은 뼈대가 되는 부품은 완성체 메이커가 할 수 밖에 없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2만 여개 되는 부품을 모두 완성체 메이커가 개발을 할 수는 없다. 신차개발을 하는 팀이 있고 게스트 엔지니어(GUEST ENGINEER)라고 해서 외부에서 들어와 같이 자동차를 만든다. 이런 형태를 더 발전시켜서 연구비가 100원이 들면 50원은 현대자동차가 내고 나머지 50원은 정부가 내라는 것이다. 성과물이 나오면, 성과물이 특허 또는 실용실안이라든지, 소위 지적 자산이 생기는 것이다. 그 지적 자산이라는 것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나오면 모두 현대자동차의 지적 자산이 된다. 그러다보니 공급측면에서 현대자동차가 독점적인 사업자이기도 하지만 부품업체 입장에서 보면 독점적인 수요자이기도 하다.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독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가 내일부터 납품하지 말라고 하든가, 부품 단가를 낮추라면 낮춰야 한다. 그런데 상호이익을 전제로 한 공동 R&D를 하게 되면 갑과 을이라는 엄격한 수직 관계에서 조금은 더 나은 수평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동 R&D라는 개념을 이야기 했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사용자와 근로자 그리고 회사를 두고 30 : 30 : 40으로 부품업체하고는 공동 R&D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보자는 이야기를 1998년도에 일찍이 했다. 지금도 권한이 생기면 이런 생각을 실천해보고 싶다. 이익공유제와 공동 R&D의 경우 제도적으로 정착을 시키고 잘 적용해 나간다면, 공정거래 질서를 수립해 나아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간 신뢰라고 생각한다.
최근 진보정당 간 통합이 가시화 되고 있다. 내년 총선, 대선과 관련 진보정당 간 통합을 넘어 야권대통합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나서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 ⓒ프레시안(최형락) |
중국이 대만을 포함한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도 중국의 한 부분(an integral part)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현재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야당 간의 야권통합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이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민주당 안에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민주당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맏형 노릇을 할 것이니 따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의 시대착오적 판단이라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당을 해체하고 더 큰 진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금년 연말에 치룰 전당대회에서 통합전당대회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 속에서 내년도 정권교체의 역사적인 엄정함을 바라보고 총선이 목적이지만 동시에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민주당 스스로가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표면적으로 통합이든 연대이든 그것은 상황에 맞춰서 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나는" 이라고 말하지 말고 "나도" 라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변화할 때이다. 변화는 하지 않고 자꾸 자기를 강화하는 성을 쌓는 모습으로는 디딤돌이 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적으로 성을 높이 쌓아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중국의 한족 이외 많은 외세가 중원을 지배했었다. 그들이 만리장성을 말 타고 넘어 들어 온 것이 아니다. 다 열어준 문으로 들어왔다. 민주당이 내년 대선을 계기로 진영 간 정권교체를 한다든지, 또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민주당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하나의 중요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민주당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어야지 스스로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총선 이후 민주당은 한국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과연 일으킬 수 있을까? 가능성과 한계가 있다면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 치에 관해서 민주당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것은 현실적인 것인데, 나도 꼼짝 못하는 것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민주당 내에 육두품 이야기가 있다. 두 가지 잣대로 지역이 호남이고 출신이 운동권이면 성골이고, 둘 중에 하나면 진골이고, 둘 중 아무것도 아니면 잘해봐야 육두품이라는 것이다. 육두품의 전형적인 사람이 이계안이라고들 한다(웃음).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당이 지역성을 극복해야 한다. 지역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시절이 열린우리당 시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여타 야당을 통합했다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 때보다 지역성을 극복했느냐라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여전히 운동권 및 민주화 운동세력,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운동했던 사람들이 주류이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여러 다양한 세력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편협하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이 이러한 지역성과 같은 편협성을 버려야 한다.
정책정당으로서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보면 민주당이라는 큰 텐트 안에 흔히 중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공화당이랑 진배가 없다. 또 많은 경우 교차 투표를 많이 하기도 하고 넘나들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의 경우 왜 이런 것이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민주당이 현재 좌클릭을 하며 복지정책 등을 내걸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거의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했던 것이다. 왜 지금 민주노동당의 복지정책이 민주당의 복지정책으로도 이야기가 되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
복지정책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뒤로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있고, 또 시작은 굉장히 어려운 정책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견딜만한 정책이 있다. 예를 들면 노인의료 같은 경우는 사람이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고 진료의 수준도 날로 높아져 계산이 불가능하다.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책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대학등록금, 보육비, 급식비와 같은 계산 가능한 것은 정책으로 내놓을 수 있다. 더욱이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인구가 줄고 있다. 등록금이나 보육비, 급식비와 같은 정책은 점점 그 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계산 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경제학에서도 위험성이 계산이 되어서 가격에 반영이 되면 그것은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계산이 안 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복지정책의 경우도 이러한 계산과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단지 정치적 레토릭으로만 이야기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당은 이러한 정책의 고민과 함께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는 정치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이것을 잘하고 있는지를 언론이 감시해야한다. 또 언론이 감시해도 안 되는 틈바구니를 NGO와 같은 시민단체가 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언론과 NGO도 서로 갈라져 있어서 빈틈을 점검하는 기제도 부족하다. 이러한 부분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과제이다. 경제적으로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을 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라는 것은 지속가능해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한국의 헌법에 관한 조항 중에서 119조 1항과 2항에 대한 조항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의 경제제도는 어쨌거나 119조 1항이 원칙이고 1항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사전적 또는 사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2항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두 조항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잘 해야 한다.
야권연대의 기치가 복지이다. 복지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단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나는 하이브리드 복지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이를 테면 최근 등록금 문제가 이슈가 되었는데 보통 대학 2학년 때 군대를 많이 간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사실 노동착취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병의 한달 월급이 최근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따져본다면 노동착취라고 볼 수 있다. 하이브리드 복지라는 것이 사병 월급을 이를테면 복무기간 1개월 당 50만원, 또는 25만원이라든지 월급을 늘려주고 그 돈의 용도를 대학등록금으로 제한해 주는 것이다. 완전한 구상이 아닌 초벌에 해당하는 생각이지만 하이브리드 복지라는 개념이 한 가지를 가지고 두 가지 문제를 결부시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민 주당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또 통일에 대한 것이다. 민주당이 현 정부와 대척점에 서는 부분이 통일에 관한 문제이다. 통일이 갑자기 올 수도 있지만, 만약 갑자기 온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남북이 갈라진지 두 세대가 지났다. 전쟁 당사자들은 이제 죽거나 세대교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안 되고 있다. 독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통일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통일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주변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논리를 만들어야 하고, 그들도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작게는 동북아의 평화, 크게는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인식시켜야 한다.
민주당의 한계
민주당의 한계라기보다는 이계안의 한계로도 볼 수 있다. 민주당이 2008년도에 정권을 뺏겼는데 이것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나, 이런 반성에 기초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고, 또 실천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온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스스로 실패했다고 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시기적으로도 통절한 반성의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추모 분위기로 선거를 맞이했다. 심지어 6.2지방선거 때 보면 당내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여론투표에서 무조건 이겼다. 이것도 정치적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민주당이 정말 국가경영에 책임을 진다면 통절한 반성의 시기가 있어야 하고, 집권 시기 잘못했던 것들과 정권을 빼앗긴 연유가 무엇인지 뜯어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잘못으로 민주당에 기회가 온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민주당의 큰 한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한계는 근거도 없이 민주당만이 대안이라는 대안부재론이라는 미망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다시 집권을 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마음으로는 통일을 비롯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 갈 리더로 어떠한 인물상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더불어 이 세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목적이 될 뿐만 아니라 수단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리더십이 어야 한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내가 리더로 설 테니 따라오라든지, 항상 자기가 목적이 되고 그 외에는 다 수단이 되는 그런 리더십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수단이 되고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이지 그렇지 않으면 리더라고 할 수 없다.
희망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상은 무엇인지,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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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통합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통합이라는 말을 쓰면서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 통합이라는 것이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물은 물이고, 뭍은 뭍이라고 생각한다. 쓰나미가 오면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것은 재앙이지 통합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뭍과 물을 넘나들며 사실은 자기 표를 얻기 위한 것인데, 마치 대의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통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의 바탕 위에 제대로 된 통합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2.1 연구소는 어떤 연구소인가?
나는 하나의 통일과 두 개의 변화라는 이야기를 한다. 통일은 한국이 꼭 이루어야하고 민감한 부분이다. 두 개의 변화에 관한 것은,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후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는 CO2 방출과 관련이 많은 회사에서 일을 해 와서 일찍이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다른 한 가지 변화는 인구문제에 관한 문제이다. 인구문제를 전 지구적으로 보면 시한폭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현재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이다. 국가가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은 국방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국이 스스로 국방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2.1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여성들의 불만이 없었나?
출 산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여서 과연 사회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고 국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나라가 이미 없어져 가고 있다. 합계 출산율이 2.1이 되면 현상유지를 할 수가 있는데 2.1이라는 수치가 이미 1983년도에 깨졌다. 출산율을 회복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문제이다. 2.1 연구소를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바꿔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를 듣고 싶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논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사실은 용어자체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적 의미의 자유라는 개념에서는 개인의 권리 신장, 만인평등과 같은 단어들이 생각나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하면 경제적 자유만을 주장하는 네오콘이 생각이 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돈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만 봐도 현재 언론의 독립성을 가장 제약하는 것이 권위적인 정부보다 오히려 광고주인 것 같다. 종이 신문 기사를 보다보면 이것이 기사인지 고급 광고인지 의심이 가는 기사들도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언론이 시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념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깊은 성찰을 하지 못해서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단지 나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개인의 권리가 신장이 되고, 내가 사는 세상보다 내 아들, 또는 손녀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평화롭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이에 따른 자유 정도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계안에게 자유란?
"자유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
유년시절 조부 아래 성장한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사연이 또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개 인의 행복이라는 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은 가족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가상의 완전체가 있다고 한다면 나의 경우는 결핍된 가정에서 성장했다. 물리적으로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아버지가 안 계신 줄로 알고 있었고 이러한 결핍을 할아버지께서 메워 주셨다.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것은 무한한 사랑과 신뢰였다. 무엇이든지 할아버지한테 가서 말을 하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는데 이웃 사람들이 김칫독 냄새를 빼기 위해 우물가에 넣어 놓고 가곤 했다. 그러면 내가 그 독을 다 깨서 할아버지께서 수도 없이 돈을 물어 주셨다(웃음). 그런데도 할아버지께서 한 번도 나를 야단을 치신 적이 없다.
촌부이지만 지혜로우셨던 할아버지
내가 6학년 여름 때 학교 근처 미군부대트럭을 지원 받아서 운동장에 뿌릴 모래를 푸러 간 적이 있었다. 날도 더운데 물을 안 가져와서 목이 많이 탔는데, 주변을 보니 막걸리가 있었다(웃음). 그때 내가 반장이었는데 목이 말라서 애들과 같이 막걸리를 마셨다. 그 때문에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셔서 그 벌로 당시 우리 집까지 한 8킬로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또 학교도 오지 말라고 하셔서 다음날 집에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보시고 "왜 학교를 안 갔느냐"고 물어보셨다.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나에겐 아무 말씀 안하시고 형을 불렀다. 그리곤 오늘 학교 가서 계안이 담임선생님과 옆 반 담임선생님 세분을 모셔오라고 하셨다. 그 날 오후 선생님들께서 집에 오셨는데, 할아버지께서 술상을 봐 놓으시고 나를 부르셨다. 그리곤 선생님들께 술을 따르라고 시키셔서 술을 다 따르고 앉아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막걸리 받으라며 술을 주셨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랬는데 할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다.여름 방학 후반기에 가면 벼농사 짓는 분들이 일정시기 논을 말릴 때가 있다. 바로 벼꽃이 필 때이다. 미꾸라지 잡으려고 논에 있는 웅덩이를 펐는데 그것을 본 논 주인이 할아버지께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무진장 맞았다. 미꾸라지 잡는 것이 대수로운 일도 아니어서 아무생각 없이 한 것인데 무진장 맞았다. 이유는 벼꽃이 필 때, 물을 퍼서 벼꽃이 떨어지면 흉작이 된다는 것이었다. 농민에게 벼는 바로 먹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할아버지도 용서가 없으셨다. 정말 무진장 맞았다(웃음).
또 기억나는 것은 내가 4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교과서를 안주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담임선생님이 학생들 책값으로 술을 사 드신 것이었다(웃음). 평소 할아버지께서 군사부일체를 가르치시고 선생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던 분이셨지만, 이것은 선생님이 잘못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선생님을 고발한 셈이다. 결국 그 일로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쫓겨 가셨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판단 기준은 정의와도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할아버지가 촌부이지만 정의에 관한 기준과 농민들의 밥 먹는 문제에 관해서는 분명하셨던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어려워해야 한다. 무서워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어려워하면 잘못한 것도 말을 하게 된다. 존경하는 마음, 즉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나를 사랑으로 키우셨던 것 같다.
아버지, 동생 이계숙, 그리고 정치
아버지에 관해서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 입학을 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책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 때 사상계라는 책 정기구독권도 주셨는데 대부분 중학생 수준에서 볼 수 있는 책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1988년도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인데, 그 당시 정몽준 의원이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 때 아버지가 나한테 대뜸 "내가 정주영 보다 못한 것이 무어가 있냐?"라고 하셨다(웃음). 제 앞가림만 하는 아들을 꾸짖으신 것이다. 내가 정치를 하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가 족 이야기하면 마음이 무엇보다 짠한 것이 동생 이계숙에 관한 것이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데 죽은지 10년이 되었다. 김규항이 쓴 'B급 좌파'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제일 앞에 보면 '이계숙에게 바친다'는 글귀가 있다. 그리고 김해자 시인의 시 중 '聖(성)이계숙'이라는 시가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두리반 유채림, 안종녀 부부가 있다. 내가 서울시장 선거 준비 할 때 사무실이 두리반 옆에 있어서 두리반에 인사를 간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유채림, 안종녀 부부가 너무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나 했더니 나보고 "계숙이 언니, 오빠시잖아요"라고 말을 하더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유채림씨가 보안법 위반으로 도망 다닐 때 안종녀씨가 애를 낳았는데, 그 때 동생이 도와줬다는 것이었다.
또 2010년 6월 2일 저녁이었는데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전화가 와서는 자신이 수원시장이 되어 인수위원회를 구성하려는데 나보고 인수위원장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인수위원장을 하느냐고 말했더니 염태영 시장이 하는 말이 "계숙이 누나 생각해서 좀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웃음). 내가 또 계숙이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계숙이 누나 집에 가서 매일 밥 얻어먹었다고 하더라. 내 동생은 이미 어려운 이들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정치를 하는데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버지였고, 아버지의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동생 계숙이었던 것 같다. 나는 뒤늦게 깨우쳐서 정치를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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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계안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청년시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오늘(2011.8.2 인터뷰한 날)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이시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 성경공 부를 갔는데 그 때 성경공부를 인도하셨던 분이 하용조 전도사님이셨다. 당시 하용조 전도사님이 나에게 신학을 권유했다. 그 때 신학을 안 한다 말은 못하고 대신 멋있게 "절대빈곤에 처한 우리 집을 다시 재건할 책무도 있고 해서 30년 동안 돈을 벌고 신학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분지계를 이야기 했는데, 인생의 25년은 남의 도움으로 살며 준비를 하고, 30년은 나를 위하여 살고, 나머지 삶은 남을 위해서 살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가는 것과 정치를 하는 갈림길에서 정치를 하게 되었다. 정치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하용조 목사님이 정치를 하는 것은 살아있는 신학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책을 한 권 주었는데 영국에서 노예무역폐지를 이끌어 낸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에 관한 책을 주시면서 윌버포스처럼 정치를 하라고 하셨다.
기업의 사장 그리고 국회의원, 정치와 경제를 오고 간 것인데
경 제, 경영을 하던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있을 때, 많은 석학들을 만났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조지프 나이 교수이다. 조지프 나이가 나에게 "어떻게 경영을 하는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었냐?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왜 어렵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지프 나이가 경영과 정치가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첫 째로, 경영과 정치가 추구하는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라 하면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를 주장하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고, 경영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이라는 것이다. 이 두 부분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부딪힌다는 것이다. 두 번째 큰 차이는 의사결정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주식과 민주주의를 비교해서도 주식에서는 1원 1표이고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인데, 경영에 있어서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목표를 달성한 사람 중에서도 얼마나 효율성 있게 달성했느냐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경영과 정치 간에는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경영을 하다 정치를 할 수 있었는지 좀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가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하이브리드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하이브리드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고, 하이브리드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이브리드 마이너스의 대표적인 경우가 이명박 대통령인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라를 회사처럼 운영한다. 대통령 외연의 확장이라 할 참모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다. 자기가 해봐서 안다는 것이다. 현대에서 사장을 했던 곳을 보면 공통적으로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제철, 현대리바트, 현대엔진 등 상대적으로 고객수가 작은 회사들이었다. 고객수가 작다는 말은 사장이 영업을 다하고 상대방 회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장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구조다. 현재 결정하는 것이 그렇다. 참모들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것이 없다. 결과가 중요한 만큼 과정이 중요한 것인데 결과만 보는 것이다. 여기에 정의나 과정에 대한 가치까지 부재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라 생각한다.
정 치를 하면서 제일 난감한 질문이 내가 이명박 대통령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전에 한명숙 전총리가 검찰에 소환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응원했었다. 나도 거기에 동참했었는데 한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이명박하고 무엇이 다르냐?"고 면전에서 물어보는거다. 그래서 내가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LG에 다니는 노(盧)부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디 노씨냐고 물었다. 교하 노씨라면서 자신이 노무현 노씨라고 설명을 했다. 그래서 내가 노태우가 어디 노씨냐고 물었더니 노부장이 교하 노씨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두 분 다 교하 노씨인데 왜 그렇게 달라요?"라고 되물었더니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웃더라(웃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보다 잘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사원에서 사장이 되었다는 점, 성씨가 이씨라는 점, 그리고 어려운 성장과정이 비슷하다는 점 등에서는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비교를 하며 나와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감하다. 그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각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인 것 같다. 행복하려면 자신이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화투를 가르쳤다. 화투가 재미가 있기도 하고, 화투를 통해 아이들에게 집합을 가르쳤다. 내 경우에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께서 속셈을 가르쳐주셨다. 우리 할아버지가 종중에 어른이셔서 종중에 쌀이 있어서 쌀을 빌려주고 받는 일이 있었다. 그 때마다 이자를 계산했어야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계산을 시키셨다. 생각해보니 가우스 법칙이라는 원리를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다. 또 예전엔 바둑, 장기 사이에 골패라는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 골패를 할 수 있었는데 골패는 4명이서 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수가 적으면 애기패라고 해서 내가 껴서 하기도 했다(웃음).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으로 재미,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스스로 재미난 일을 하며 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꿈이 있다면?
신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신학을 제도권에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다. 또 살아있는 신학으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더 큰 가치를 위해서 나도 하나의 부분이 되고, 남도 함께 힘을 모아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한다. 특히 통일에 대한 꿈이 크다. 통일을 위해 작은 디딤돌이라도 놓는 것이 현재의 꿈이기도 하다. 그리고 2.1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인구변화에 대한 고민들이 해결되는 것이 현재 나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개미지옥 한국의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전하라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현실은 정말 개미지옥에서 엉켜 살지만 도전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Mission과 Passion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Passion이라는 단어는 열정이 란 뜻도 있지만 수난이라는 뜻도 있다. 내 생각엔 수난이 있어서 열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문학, 역사, 철학을 알아야 한다. 박재완 기재부장관이 고용노동부 장관시절 청년실업이 문, 사, 철 전공의 과잉공급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는데 정말 잘못 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공이 무엇이든 사람에 대한 공부인 문학, 역사, 철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문학과 역사, 철학에 푹 빠지기 바란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 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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