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나.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우리는 먼지였어. 죽어서 다시 먼지로 돌아가. 사람이라기보다는 먼지인 쪽이 훨씬 길어. 그렇다면 죽어 있는 것이 보통이고 살아 잇는 것은 아주 작은 예외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니 죽음을 무서워할 이유는 전혀 없는 거라고." (57쪽)
"이백 씨는 행복한가요?"
"물론."
"그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이백 씨는 빙그레 웃고 작게 한마디 속삭였습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82쪽)
"감기에 걸리면, 밤이 길어."
"오늘은 동지에요.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긴 날이에요."
"그래도 말이야, 아무리 밤이 길더라도 새벽은 오고야 말겟지."
"그럼요."
이백 씨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377쪽)
그녀는 웃음 지었고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또 만나네요" 했다. 나도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어쩌다 지나가는 길이었거든" 하고 대답했다. (380, 381쪽)
내가 그녀와 둘이서 나들이할 약속을 했다고 하자 사무국장은 "잘했어" 하며 내 노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런데 그 다음이 힘들어. 여자와 사귄다는 건 말이야…….' 하고 이상한 말을 남겼다. (386쪽)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랐다. 세상의 남녀가 단둘이서 만날 때 그들은 무슨 말을 할까. 설마 쭉 노려보기만 하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인생과 사랑에 대해 열띤 논쟁을 펼칠 리도 없다. 어쩌면 거기에는 내가 감당 못할 섬세미묘한 밀고 당기기가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조금 멋 부린 조크로 상대를 웃기면서도 그저 그런 수다스런 남자로 전락하지 않고 의연한 태도로 그녀를 뇌쇄시킨다. 그런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명랑유쾌하고 재치 있는 남자가 아니므로 별볼일없는 이야기를 하며 커피나 축낼 것이다. 그러는 게 즐거울까.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쳐도, 그녀도 즐거울까. 그녀의 귀중한 시간을 악귀처럼 먹어버리기만 한다면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다. 실로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역시 얌전히 성의 해자를 메우던 시절이 마음 편하고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아, 정말 난감하다. 해자를 메우던 시절이 그립다. 그 영광의 나날로 돌아가고 싶다. (387,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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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행복했다.
꿈꾸는듯 말도 안 되지만 선배가 간절히 바라는만큼 나도 간절히 바랐다.
그녀와 교제를 하기 위해 우선 성 주변의 해자를 매꾸는 1차 작업을 하는 선배.
하지만 어느덧 해자를 매꾸는 일에만 집중해서일까, 둘 사이는 전혀 진전이 없다.
매꾼 흙 위에 살 거냐는 핀잔도 듣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굳세게 밀고 나간다.
뭐, 해나가는 거 보니 참 깜깜-하지만 말이다. :)
달달한 연애 이야기라기보다는 통통 튀고 재미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선배의 우직함과 후배의 깜찍함이 너무나 사랑스런 책이었다.
첫 만남, 그 이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보셨는지 모르겠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들의 만남 후 각종 만남, 이벤트를 통해 커플이 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게 끝?
사실 고백 이후의 정식 교제가 더욱 힘든 게 사실인데 말이다.
그래서 일본의 NDSL용 게임 <러브 플러스>가 한참 유행하지 않았나.
선배가 저리 걱정하는 것도 어찌 보면 참 당연하다.
해자를 메우던 시절이 그립다고 할 정도니.
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하늘 위를 날아다닌 선배였으니, 이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웃자 :)
걸읍시다, 걸어.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날에도, 결국 새벽의 어두움은 태양에 쫓겨나고 다시 새로운 날이 찾아온다.
살아있는 날은 우리가 먼지였던 말에 비해 아주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평생의 삶 중에 오늘 하루밤은 얼마나 짧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걸어야 한다.
밤은 짧으니까 말이다.
(2011년 8월 20일 ~ 8월 21일,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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