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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끝까지 몰아서 보았다.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현실과 거리가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뭐 처음부터 주인공의 인격이 분열되서 등장하긴 했지만 이건 점점 갈수록 혼돈에 빠지는 기분이다. 아침에 산을 올라갈 때는 또렷한 의식이 있었겠지만, 유달리 밤은 빨리 찾아오고 나뭇가지에 할퀴어지면서 더듬더듬 하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가 헤메였던 주인공의 인생이, 문화혁명당시 중국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깨어진다. 분명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글 속에서 '허무'와 '무'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본인은 이 책을 읽고서도 아직도 그 차이를 모르겠다. 영혼의 산은 어쩌면 우리의 삶 속에,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그 길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도 <지와 사랑> 종류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누군가를 선하고 누군가를 악하다고 정해놓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역사가 흘러가는 방식을 흘러가듯이 표현해놓았을 뿐이다. 해석없이 편하게 읽을수록 더욱 속썩임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권 후기를 썼을 때 여러 문학적 지식이 있는 분들의 글로 인해 가오 싱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다. 그는 번역가, 이론가, 희곡작가, 소설가, 시인이자 중국 전통의 묵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한다. 스웨덴 학술원에서는 그를 일컬어 '중국 소설과 희곡에 새로운 길을 연 독창적인 언어'를 쓰는 예술가라고 한다. 모더니즘의 신봉자라고는 하지만 소설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중국 역사상 가장 지독한 시절을 겪어온 그의 깊은 경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위를 기어오르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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