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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죄가 그 가지를 저렇게 시들어 죽게 만든 것인가? - 로저 맬빈의 매장 p. 61
이 정도면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한꺼번에 밀린 후기를 쓰고 있다. 그 동안 토익공부와 시험공부를 같이한답시고 너무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물론 본인은 공부만 죽어라 하는 스타일이 절대로 아닌지라 적당히 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밀린 후기를 쓰고 있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다... 헉헉. 나는 11시까지 너새니얼 호손 후기를 다 쓰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시작한다.
<주홍글씨>는 <데미안> 이후로 내가 읽다가 짜증내면서 덮은 두번째 책이다. 물론 <데미안>처럼 스토리가 막장으로 간다거나 어렵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분은 소설을 쓸 때 굉장히 말을 길게 끈다는 특징이 있다. 비록 그런 문체가 우회적으로 비꼬는 효과를 거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도를 나갈 때마다 점점 스토리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이 단편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처음에는 과제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은 책이었다.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언니가 내 책을 보더니 "너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읽는구나?" 이렇게 말을 거시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껴안고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이거 재밌어"라면서 <목사의 검은 베일>을 가리키셨다. 그 이후부터 왠지 좋은 예감이 들어서 무작정 펼쳐서 읽었다.
엄청 편안하고 가볍게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공포와 호러의 요소가 있어서 책을 펼치는 행위에 속도가 붙었다. 너새니얼 호손은 냉정하게 보면 전혀 공포같지 않은 장면을 공포스럽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미국 초기의 도시가 신시티같은 느낌으로 표현되었다고 할까. 창작의 고뇌와 남성예술가에게 작용하는 여성의 뮤즈역할이 우화로서 리얼하게 드러나는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액자형 소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다 할 수 있는 <라파치니의 딸>. 누가 죄를 지었는지, 혹은 누가 죄를 숨기고 있는지를 추적해보라. 소름끼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남의 눈에서 대들보를 발견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그 시선은 부메랑처럼, 결국 독자에게 되돌아오리라.
너새니얼 호손의 초상화. 미국 초기 시대인데도 굳건히 종교를 사정없이 까대는 그 용기에 반했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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