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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음식에서 풍겨나오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첫날 밤 둘째날 밤 그리고 마지막 밤: 무라카미 류]


첫날밤둘째날밤그리고마지막밤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무라카미 류 (샘터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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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에 깃들어 있는 마늘 향은 시금치에서가 아니라 접시 너머에서 풍겨 왔다. 향기란 이상한 것이다. 티가 나지 않는 것일수록 어느 기억과 연결되어 버린다.- p. 42~43

 위에 나오는 음식은 캐나다산 오말새우와 시금치 그라탕. 쿨 부용(향초 야채와 화이트 와인을 졸여서 만든 것)에 오말새우를 넣고 찐득하고 바삭거릴 정도로 가볍게 삶는다. 시금치는 마늘 향을 첨가하여 버터에 볶는다. 완성된 요리에 달걀 흰자를 얹고 살짝 구워 색깔을 낸다. 중학교 시절 반장이자 시대의 반항아였던 야자키는 커서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부반장을 맡았던 얌전한 성격의 미치코는 커서 제대로 사춘기에 걸린 중학생 아들을 한 명 둔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그들은 중학교 시절을 같이 보냈던 마을에서 만나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호텔을 간다. 3일 동안 벌어졌던 일은 매우 짧고 단순하다. 단순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하다. 그들은 이미 40대 중반이었다. 몸이 서서히 퇴화되며, 자신이 이루어낸 일들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이다. 야자키는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미치코는 야자키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며 더 이상 만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마지막 독백을 들어보면, 미치코는 야자키의 창작력을 샘솟게 해준, 뮤즈 비슷한 여신이었나보다. 그런 뮤즈를 현실에서 만난 것도, 그리고 헤어진 것도, 우울하고 슬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레스토랑, 그들이 먹은 음식은 결코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징어 소테 르 듀크풍을 먹으면서, 두 사람은 잠시동안이나마 모든 현실의 문제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마냥 생각할 수 있었다. 나도 이 책을 보면서 완벽하게 실패한 내 첫사랑이 생각나서, 잠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는 그 당시엔 아무런 충고도 아무런 제약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사랑은 마치 음식을 먹는 것과도 같다. 맛없는 음식이 나와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거나, 다음엔 맛있는 음식이 나올 것이라 상상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서 행복했던 기억,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 육감으로 느끼는 그 기억들은 내가 제대로 챙기고 있다면, 내가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는 아마 그런 느낌을 설명하려고 애쓴 듯하다.

달걀로 만든 디저트가 목구멍 안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야자키는 정자가 여성의 질 안으로 녹아드는 장면을 상상한다... 무라카미 류는 정말 생각부터가 범상치 않다. 변태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