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조각황선미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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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황선미 (창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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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죽지 않을 거야. 나랑 아프리카에 갈 거니까."- p. 137

 하마터면 이 소설때문에 밤을 꼬박 샐 뻔했다. 사건이 급하게 전개되면서 단서들이 마치 조각조각 맞춰지는 것 같아서, 내용이 정말 뻔한데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가 없던 그런 소설이었다. 가뜩이나 뻔한 내용이라서 스토리만 대략 이야기해줘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심이 들었다. 황선미라는 분은 대체 무엇을 비난하기 위해 소설 속 인물과 독자 모두가 비참해지는 글을 쓴 것일까? 이 소설 속에서 피해자는 누구일까? 어머니의 등쌀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아버지?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삐뚤어진 애정을 품다가 톡톡히 대가를 받는 어머니? 충격을 받고 방황하는 오빠? 누구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헤메는 유라? 아무래도 나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닌, 재희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상태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낼만큼 정신을 차린 것만 해도 어딘가. 나도 개인적인 경험을 겪은 이후로는 경찰을 믿지 않기 때문에, 비열했지만 현명한 행위였다 생각한다. 다만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소설의 주인공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차가워보이는 책 표면의 배경처럼 이 책의 내용은 차갑고 잔인하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큰 사건을 겪은 후, 일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거나 감싸나간다. 오래 전에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에서 받은 것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상처이자 기억이다." 책의 뒷표지에 쓰여져 있던 글귀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겠지만, 상처도 줄 수 있다. 가장 불행한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선 행복보다는 상처가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연약한 부위가 있어서, 언뜻 보면 사소해보이는 상처라도 그 급소를 건드리면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을지는, 이 소설 다음의 몫이자 우리의 몫이다.

동물원에 갖힌 사자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생존할 길을 찾지만 유독 자존심이 강한 것들은 그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적응하지 못한 사자일까?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