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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친구를 죽인 이유' [미나: 김사과]



미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사과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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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사당한 채로, 그녀는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질식된 채로. - p. 88

 처음부터 스토리를 매우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함부로 이 책을 '미나'이야기로 결단지을 수는 없다. 이 책은 친구 수정의 눈으로 미나를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수정이라는 아이가 폭발적인 열등감과 자기우월감에 동시에 시달리고 있어서 중후반기가 되면 미나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전부 다 미나 탓으로 돌려버린다. 참 무식하고 단순하면서도 편한 사고방식이구나. 결국 미나는 수정의 이기적인 사랑에 의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뭣하지만. 미나의 말대로 요즈음 점점 이런 인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딱히 우리나라 학교의 경쟁과잉 문제만이 아니라, 사랑 차원에서 말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거부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세속적인 인물들이다. 조금 가볍게 해도 될 짐을 기어이 무겁게 만든다. 결국 자기에 대한 동정과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꽉 채워버리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다. 가방이 닫혀지지 않으면 화가 잔뜩 치밀어오르고, 결국 발을 들어 있는 힘껏 안에 있는 것들을 눌러버리고 지퍼를 채워버린다. 그 안에 '타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왜냐? 수정이는 완벽하니까. 

 미나의 솔직담백한 질타가 왠지 나를 향하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좇같지 않을까? P시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도 결국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은 수정밖에 없지 않았던가? 분명 주인공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애초 소설에 등장하지도 않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다 특별한 척 해서 어른들의 환심을 사려 할 뿐이고, 오빠 민호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놀아주는, 그리고 자신이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 수정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외침은 마돈나의 노래 속에서 허망하게 묻혀버린다. 내가 가타부타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김사과님의 작품도 미나의 운명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학계에 충격을 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좀 튀어보려고 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문체가 그랬었는지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소설은 장르파괴적이다. 그녀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메세지는 명확하지만, 자칫 묘한 분위기와 파괴적인 결말로 인해 모호하게 왜곡될 수도 있다. 일단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네이버책의 리뷰를 봐라. 미나의 외침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가?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르파괴도 좋지만, 무언가를 섞으려면 제대로 섞으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김진명씨처럼 메세지만 명확하고 결말은 모호한 그런 답답한 소설을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작가로서의 매력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리뷰어 : 김정원(미나비리스)
소개 : 네이버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바로가기)'운영
책취향 : 우울, 반전, 잔인함, 선정성, 사회에 대한 분노표출, 영미고전소설, 동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