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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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존 쿳시 (동아일보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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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자네는 문제를 혼동하고 있어. 자네더러 후회를 하라고 하는 게 아냐. 우리나는 자네 동료로서, 그게 아니라면 자네 말대로 세속적인 위원회 위원들로서, 자네의 영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라. 다만 성명서를 발표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 뿐일세."- p. 76

 '추락'이라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영혼이 한없이 추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언가 시골에서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노인의 배부른 푸념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추락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실 본인은 여자때문에 찌질대는 남자이야기를 가장 싫어하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그래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여성 차별을 남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한다는 설정이 독특했다. 자신의 딸보다도 더 어린 대학생과 연애를 하다가 쫓겨난 늙은 교수는, 속절없이 성적 폭력을 당하는 자신의 레즈비언 딸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는 한참 후에야 자신을 쫓겨나게 만든 대학생의 가족을 만나서 참회를 고한다. 그러나 그의 본능 속 남성은 그 순간에도 수그러들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참회한들 무슨 소용이고, 그런 그에게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분노한들 무슨 소용인가. 순간 허탈함이 느껴진다. 딸 루시에게 의탁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시골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는 설정을 중후반부터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갑자기 귀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그러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랄까.

 이 책에서는 사회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글 속의 교수는 점차 동물들에게 애정과 교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맡은 역할은 그 동물들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고, 그 시체들을 차에 태워서 소각장까지 나르는 일이다. 문득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닐 때,  호스피스만은 절대 하지 말라고 주장하던 간호사가 생각난다.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매우 무기력해진다나.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추해지고, 보수적이 되고, 빈곤해지고,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죽어간다. 아니, 딱히 노인이 되는 순간뿐만 아니라 인생에 무심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바로 죽어가는 순간인 것이다. 마음에 들어오려는 것 자체를 단절하고 포기해버리는 그의 말로가 매우 안타까웠다.

리뷰어 : 김정원(미나비리스)
소개 : 네이버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바로가기)'운영
책취향 : 우울, 반전, 잔인함, 선정성, 사회에 대한 분노표출, 영미고전소설, 동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