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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서담쌤, 요약의 전설 3탄 [아웃 라이어 : 말콤 글래드웰]



프롤로그  :  로제토의 수수께끼

“그들은 제 수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었다. 그게 전부이다.”


- 일반적인 규칙을 넘어서는 그 무엇, 아웃라이어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이탈리아 포자지방의 아펜니노산맥 기슭에는 로제토 발포르토레라는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1882년부터 미국으로 이민, 펜실베이나의 로제토 마을 형성.
“195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여름을 보내러 갔다가 지역의료사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게 되었죠. 그 자리에서 저는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로제토 지역에 사는 65세 미만 사람들 중에 심장마비 환자가 거의 없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 스튜어트 울프

로제토에서 55세 이하는 누구도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을 뿐더러 심장질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65세 이상의 경우에도 로제토의 심장마비 사망률은 미국 전역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1950년대라면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심장병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놀라운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마비가 65세 미만 남성의 사망원인 중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의사가 특정 지역에서 심장마비 환자를 만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제토는 미국인의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곳,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로제토는 아웃라이어였다.


- 건강의 조건
특별한 식단? no. 그 마을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거나 조깅을 하지도 않았다. 건강에 신경 쓰기는커녕 오히려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비만과 맞서 싸우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식생활과 운동이 아니라면, 유전은 어떨까? 미국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사는 이탈리아 로제토 출신 사람들을 추적해 그들 역시 낮은 심장마비 사망률을 보이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두 마을에도 비슷한 수의 유럽 이민자가 힘들게 일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률은 로제토에 비해 세 배나 높았다.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과연 무엇일까? 울프는 그 해답이 식생활이나 운동, 유전, 지역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밀은 로제토 마을 자체에 있었다. 울프는 마을을 거닐다가 우연히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로제토 사람들이 서로를 방문하고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잡담을 나누며 뒤뜰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그 마을의 사회적인 구조 밑에 깔린 일종의 ‘확장된 가족집단’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스튜어트 울프가 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것과 마찬가지로, 성공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1부: 기회 (Opportunity)


1장 마태복음 효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미스터 하키로 성공하는 법
캐나다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이스하키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매우 각별한 스포츠다.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소년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아마추어 수준의 플레이어가 된다. 그 나이또래부터 매 연령층에 리그가 있으며 각 리그는 다음 단계를 위해 소년들을 선별하고 다듬는다. 메이저주니어 A리그에 발탁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캐나다의 최북단에 떨어진 후미진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능력이 있으면 재능 있는 사람을 찾고자 두 눈을 부릅뜬 하키 스카우터의 광대한 네트워크가 그를 찾아낼 것이고, 능력을 계발하려는 의욕을 보이기만 하면 시스템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된다. 선수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게임 수행 성과와 잠재력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하키선수로 성공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취에 달려 있으며 어떤 임의적인 요소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법칙에 돌을 던져라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성격인지, 얼마나 똑똑한지, 어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는지, 어떤 식으로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한가? 물론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떤 개인적인 특성이 그 사람이 정상에 오르는 이유를 설명해줄 거라고 가정해버린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개인적인 특성만으로는 성공을 설명해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와 후견인에게 뭔가를 빚진다. 이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숨겨진 이점과 특별한 기회, 그리고 문화적 유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요소들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과 달리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언제 어디에서 성장했느냐의 문제는 큰 차이를 만든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아야만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에 깔린 논리를 밝힐 수 있다.


- 캐나다 하키를 지배하는 철의 법칙 
여기 타이거스의 2007년 선수 명부가 있다. 찬찬히 들여다본 후 뭔가 특이한 점을 찾아보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1월, 2월, 3월생이 월등히 많다. 온타리오 주니어 하키리그 선수들 명부를 살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떤 엘리트 하키선수팀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의 40%는 1~3월, 30%는 4~6월, 20%는 7~9월, 10%는 10~12월에 태어났다.


- 생일이 빠른 아이들과 하키의 상관관계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점성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1년의 첫 세 달이 어떤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캐나다에서 1월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헤아리고 그에 맞춰 하키 클래스를 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월 2일에 열 살이 되는 소년은 그해 말까지 만으로 열 살이 되지 못한 소년과 함께 하키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사춘기 이전에는 열두 달이라는 기간이 엄청난 신체 발달의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하키에 미친 나라, 캐나다에서는 코치들이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후보군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때 몇 달간 더 숙달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소년들이 더 크고 보다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천적이 아니라 몇 개월 더 일찍 태어남.

그렇다면 누군가가 후보군으로 선별된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역리그에 남아 고작 20여 경기를 뛰는 아이들과 달리 보다 훌륭한 코치, 뛰어난 팀 동료와 함께 한 시즌에 75경기를 소화하고 두세 배로 연습하게 된다. 그밖에는 다른 기회도 폭 넓게 주어진다. 이른 나이에 누가 잘하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를 결정하면, 다시 말해 재능의 유무를 가리고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하게 해주면 특정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큰 이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 누적적 이득의 치명적 효과 
하키와 빠른 생일 이야기는 성공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는 정상에 오르는 아이들이 가장 똑똑하고 재능이 많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그들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좋은 출발을 했고 그것은 그들이 노력을 통해 얻거나 마땅히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회가 그들의 성공에 결정적이었다. 다시 말해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얘기다. 결국 성공은 사회학자들이 ‘누적적 이득’이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프로 하키선수는 동료들보다 좀더 나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 기회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져 결국 그 하키선수는 천재적 아웃라이어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결코 아웃라이어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의 출발점은 그저 남보다 조금 달랐을 뿐이다.


- 또래 중 가장 큰 아이라는 특권



2장 1만 시간의 법칙

“우리는 함부르크에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연주해야 했어요.”


- 멍청한 학생에서 천재 프로그래머로 
빌 조이. 유닉스(UNIX)코드를 다시 쓰는 일을 맡았음. 조이가 만든 버전은 기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어찌나 훌륭한지 전 세계 수백만 대의 컴퓨터가 그것을 운영체계로 채택했다. 버클리를 졸업한 빌은 선마이크로시스템을 창업했고, 또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를 다시 쓰면서 전설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 진정한 아웃라이어가 되기 위한 매직넘버 
바이올리니스트 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엘리트’로 장래에 세계 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냥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고, 세 번째 그룹은 프로급 연주를 해본 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학생들이었다. 연구진은 그룹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집어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왔는가?”

세 그룹에 속하는 모든 학생은 대략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몇 년간은 대략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비슷하게 연습을 했지만, 여덟 살이 될 무렵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자기 반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연습을 더 했던 것이다. 아홉 살 때는 일주일에 여섯 시간, 열 살 때는 열두 시간, 열네 살 때는 열여섯 시간으로 연습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스무 살이 되면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겠다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일주일에 서른 시간을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되면 엘리트 학생은 모두 1만 시간을 연습하게 된다. 반면 그냥 잘하는 학생은 모두 8,000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000시간을 연습한다. 피아니스트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다. 어쩌면 두뇌는 진정한 숙련자의 경지에 접어들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을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1만 시간이 엄청난 시간이라는 점이다. 성인이 아닌 경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 낼 수는 없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 되므로 가난해서도 곤란하다. 대개의 경우, 특수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종류의 기회를 붙잡아야 그 수치에 도달할 정도로 연습을 할 수 있다.


- 첫 번째 증거: 밤샘 프로그래밍의 기억, 빌 조이 
그러면 빌 조이에게 쏟아져 들어온 기회들을 살펴보자.
조이는 1970년대 초반에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그 무렵의 컴퓨터는 커다란 방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거대했다. 오늘날의 전자레인지만도 못한 메모리와 연산력을 가진 기계 한 대가 백만 달러를 넘었으며, 그것도 1970년대에 백만 달러였다. 그만큼 컴퓨터는 귀했고 접근을 허락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설사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빌려 쓰는 데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더욱이 프로그래밍은 카드에 구멍을 뚫어서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다. 미시건 대학은 1967~1970년 까지 공유시스템이 건설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카드와 컴퓨터 공유기의 차이를 아는가? 그것은 우편으로 체스를 두는 것과 속기로 두는 것과의 차이다. 운 좋게도 그는 미시건 대학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학교에 입학해(1971년) 펀치 카드 대신 공유시스템을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미시건 대학의 컴퓨터시스템에 버그가 발생해 원하는 만큼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학교 측에서 24시간 컴퓨터 센터를 열어두겠다는 결정을 내린 덕분에 그는 밤새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엄청난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조이는 유닉스 코드를 다시 쓰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것을 맡을 수 있었다. 물론 조이는 명석했고 무엇보다 배우고 싶어 했다. 이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가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시건에서 하루에 8~10시간이나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버클리(대학원)에 있을 때는 밤낮으로 프로그래밍을 했죠. 다 합하면 5년쯤 되네요. 그러면 얼추 1만 시간은 되는 것 같네요.”


- 두 번째 증거: 비틀스, 차별화된 밴드의 비밀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는 미국에 오기 7년 전인 1957년부터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거쳐 온 오랜 준비기간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키선수와 빌 조이, 세계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뭔가가 발견된다. 1960년, 비틀스가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고등학교 록 밴드에 불과 ->함부르크로 감.

함부르크에서는 과연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 급료가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음향이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귀를 귀울여 들어주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특별한 것은 단지 그들이 엄청난 시간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7일 밤을 연주했습니다. 우리의 연주 실력은 점점 좋아졌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밤새도록 연주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그곳에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고 노래에 마음과 영혼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여덟 시간씩 연주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곡들과 새로운 연주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력이 점점 좋아졌죠.”

비틀스는 1년 반 넘는 기간에 270일 밤을 연주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성공의 대박을 터뜨린 1964년까지 그들은 모두 1,200시간을 공연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 오늘날 수많은 밴드는 전체 경력을 통틀어도 그만큼의 연주를 하지 않는다.

“함부르크에 가기 전까지 그들은 무대 위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돌아왔을 때는 아주 훌륭해졌습니다. 지구력만 익힌 게 아닙니다. 수많은 곡을 익혔지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버전의 노래들을 소화하게 되었죠. 그 전까지 그들은 무대 위에서 숙달되어 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틀즈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 세 번째 증거: 행운의 여신, 빌 게이츠를 쏘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더라도 빌 게이츠는 빌 조이보다 독특한 기회와 행운의 연속 속에서 살아왔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의 부유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잘 나가는 은행가의 딸이었다.

① 부유한 부모 덕분에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로 보내졌다. 세계 어떤 고등학교에서 1968년에 공유 터미널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겠는가?(미시건 대학도 1970년 초에나 가능했음.)
② 레이크사이드의 어머니들은 비싼 컴퓨터 사용료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③ 사용료가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에 부모중 하나가 C-Club의 공동창업자가 됐고, 그 회사는 주말에 코드를 확인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부모들은 주말 내내 프로그래밍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④ 게이츠가 ISI를 발견했고 ISI는 장부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⑤ 게이츠는 워싱턴대학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⑥ 워싱턴 대학에서 새벽 세 시에서 여섯 시까지 컴퓨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었다.
⑦ TRW가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⑧ 펨브로크가 알고 잇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었다.
⑨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가 학교에서 벗어나 프로그래밍에 매진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곳에서 그는 존 노튼의 지시를 받아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빌에 따르면 존은 그가 만나본 어떤 사람보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8학년에서 고등학교 졸업반까지의 5년은 빌 게이츠에게 ‘비틀즈의 함부르크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행운에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그 모든 기회를 통해 빌 게이츠가 추가적인 연습시간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기 위해 하버드를 중퇴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거의 7년간 쉼 없이 프로그래밍을 해온 셈이다. 빌 게이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10대가 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 특별한 기회, 그리고 부자들의 타이밍
조이와 게이츠, 그리고 비틀스는 모두 재능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그들이 지닌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이다. 만약 비틀스가 함부르크에 초대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펴본 모든 아웃라이어는 평범하지 않은 기회를 누렸다. 그렇다고 그러한 평범하지 않은 행운을 통한 성공이 소프트웨어 백만장자나 록 스타, 유명한 하키선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분야의 아웃라이어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하나의 법칙이다.


마지막으로 아웃라이어가 누리는 숨어 있는 기회의 예를 하나만 더 살펴보자.
최근에 <포보스>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을 살펴보자. 흥미롭게도 그들이 찾아낸 이름 중 20%가 한 나라의 한 세대에 속해 있다.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열네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답은 분명해진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미국 경제는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그 시기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가 태어났다. 공업생산으로의 변화가 확고하게 일어나는 동시에 전통적인 경제를 지배하던 규칙이 부서지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명단은 그 변환기에 그들이 몇 살이었는지가 관건임을 보여준다. 만약 누군가가 184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면 그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 시기의 이점을 누리기엔 그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1820년대에 태어났다면 너무 나이가 많다. 여기에 포함된 열네 명은 모두 비전과 재능이 있었고 동시에 1~3월에 태어난 하키선수가 누리는 특별한 기회를 누렸다.
( 존D. 록펠러 1839년생, 앤드루 카네기 1835년생, 제이 굴드 1836년생, JP 모건 1837년생,… )

빌 게이츠나 빌 조이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을 해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베테랑들은 개인컴퓨터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1975년이었다고 말한다. 그 무렵 앨타이어 8800이라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미니컴퓨터가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 컴퓨터는 미시건 컴퓨터센터의 베이지색 건물에 들어앉아있는 거대하고 비싼 메인프레임을 뜻했다. 만약 1975년이 개인컴퓨터 혁명의 여명기라면 그 이점을 누리기 위한 최적의 시점은 언제일까? 대학을 졸업한 뒤 수년 후에 1975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낡은 패러다임에 속해 있었다. 갓 집을 샀고 가정을 꾸려 자녀가 커 나가고 있던 터라 397달러짜리 컴퓨터 키트가 제시하는 그림의 떡을 먹기 위해 좋은 직장과 집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므로 1952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논외이다. 동시에 너무 젊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1975년의 무대에 뛰어들고 싶을 지라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58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도 빼자.

1954년과 1955년에 태어난 스물한 살에서 스물두 살에 이른 사람이 이상적이다.
게이츠(1955년 10월 28일생) 폴 앨런(1953년 1월 21일생) 스티브 발머(1956년 3월 24일생)
스티브 잡스(1955년 2월 24일생) 에릭 슈미트(1955년 4월 27일생) 빌 조이(1954년 11월 8일생
)...




3장 위기에 빠진 천재들

“한 소년의 높은 IQ는 수많은 영리한 소년과 만났을 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의 딜레마 
미국의 TV쇼 <1대100>은 2008년 시즌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 그리스토퍼 랭건(Christopher Langan)을 특별 게스트로 초청했다. 크리스의 IQ는 195. 그는 생후 6개월부터 말하기 시작했고 10대 초반에 농장에서 일하며 이론물리학 분야의 책들을 폭넓게 읽어나갔다. 열여섯 살에는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쓴 어렵기로 유명한 수리철학의 걸작 『수학의 원리』를 읽고 스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1대100>의 세트 위에 앉은 랭건은 침착했다. 그는 주제 근처에서 맴돌지 않았고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거나 이미 말한 내용을 번복하지도 않았다. 마치 행진하는 군인들처럼 밝고 명료하게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25만 달러 획득.
 

- 어린 천재 집단의 미래 
1921년, 루이스 터먼은 재능 있는 이들에 대한 연구를 필생의 과제로 삼고, 영연방 재단의 막대한 자원금으로 조사를 했다. 터먼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학생 25만 명을 검사해 IQ가 평균적으로 140이 넘고 200에 다다르는 1,470명의 학생을 추려냈다. ‘터마이트(Termites)’로 불린 이 어린 천재집단은 이후 역사상 가장 유명해질 심리학 실험의 대상자였다. 터먼은 터마이트들이 미래에 엘리트가 될 운명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직관에 위배되는, 지능과 성공의 상관관계 
IQ에 의해 분류되는 네 가지 주요 집단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정상적인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IQ50),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IQ75), 고등학교 정규 과목을 성공적으로 습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IQ105), 4년제 대학에 들어가 대학원 수준의 공부를 하거나 전문적 지식을 익힐 수 있느냐 없느냐(IQ115)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115를 넘어서면 지능지수는 성공의 척도나 성취의 판단 요소로써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사라진 상상력은 어디로 갔는가 


- 천재는 있다, 단지 꿈속에만
그는 터마이트들이 지능의 척도로 볼 때 1%중의 1%로 제련된 정예라는 사실에 매료된 나머지, 그 특별한 사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터마이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터먼의 실수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들 중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다수가 그저 평범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했으며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심지어 터먼이 실패로 보는 수준에서 경력을 마무리지었다. “실제로 천재들은 천재로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것처럼 지능과 성취도 사이에는 그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었다.”

다시 말해 이번 장을 시작할 때 등장한 크리스토퍼 랭건의 특별한 지능은 현실 세계에서의 성공에 필요한 기회를 설명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백만 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지능의 소유자이며 열여섯 살에 『수학의 원리』를 독파할 능력이 있었다. 또한 그는 명료하고 정확한 문장을 마구 쏟아낼 수 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만약 그가 진정한 아웃라이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충분히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4장 랭건과 오펜하이머의 결정적 차이
 
“장기간의 협상 끝에 오펜하이머의 정학 처분이 결정되었다.”


- 랭건의 비참한 어린 시절 이야기 

- 재능을 알리는 능력, 그리고 통찰력 

- 실용 지능, 사회가 사랑하는 인간의 요건

- 집중 양육의 최대수혜자, 오펜하이머 

- 터마이트 730인의 기록, 가정환경이라는 재앙
터마이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터먼은 730명의 기록을 보고 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20%)은 진짜 성공한 사람들로 변호사, 물리학자, 공학자, 그밖에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B그룹(60%)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C그룹(20%)에 대해 터먼은 엄청난 지적 능력을 살리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A그룹과 C그룹의 차이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터먼은 모든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살펴보고 취미와 직업, 흥미까지도 알아봤다. 이 연구에서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가정환경이었다. A그룹에는 중산층과 상류층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C그룹은 그 궤도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 천재성에 대한 최고의 역설 : (크리스토퍼 랭건)

랭건과 오펜하이머는 둘 다 천재의 지능을 지녔지만, 오펜하이머는 집안 환경에서 실용(사회)지능을 습득했고, 랭건은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그렇지 못했네요. 오펜하이머는 대학 퇴학의 죄를 짓고도 자신을 변론해서 위기를 모면하는데, 랭건은 별 실수도 아닌 것으로 대학교를 자퇴하는군요. 결국 오펜하이머는 유명한 물리학자로 랭건은 자신이 써 놓은 물리학 책 마저도 출판할 기회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회적 패자로 살아간다는 내용.



5장 조셉 플롬에게 배우는 세 가지 교훈


- 지독한 가난 속에 핀 성공, 그 흔해빠진 이야기 
조셉 플롬. 플롬은 대공황기에 브루클린의 보로 공원 근처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동유럽 출신의 유태인 이민자로 여성용 의류 수선업을 했다. 그들의 가난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맨해튼의 시티 대학에서 낮에는 일을 해가며 야간에 2년간 공부했고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다(1940년대 말). 대형 로펌의 채용에서 탈락하고, (작고 영세한) 스캐든 압스에 들어갔다. 1954년 플롬은 스캐든 압스의 관리자로 승진했고 그 로펌은 눈덩이 굴리듯 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캐든 압스는 2,000여 명의 변호사와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퍼진 23개의 사무실을 자랑하며, 한 해에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 환경의 중요성, 공짜 성공은 없다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 플롬은 어떤 기회를 누렸을까? 플롬의 실제 인생 이야기는 신화화된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단점으로 여겨지는 것들, 가령 가난한 의류업자의 아들이라는 것, 유태인이 심하게 차별 당하던 무렵에 유태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대공황기에 성장했다는 것이 예기치 않게 장점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조셉 플롬은 아웃라이어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로 아웃라이어가 된 것은 아니다. 이번 장의 끝에 이르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그 교훈을 뉴욕의 변호사들에게 적용해보면 추가 정보가 없어도 성공하는 변호사의 가정환경과 나이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플롬의 지능이나 인격, 야심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만한 자질도 갖추지 못하고 세계적인 로펌 회사를 키워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첫 번째 교훈 : 유태인이라는 정체성


- 끔찍하게 불평등한 현실과 스타 변호사 
그 시대에는 좋은 집안 배경과 종교, 사회적 계급, 그리고 로스쿨 졸업장이 없으면 번화가의 유명 로펌이 아닌 작고 영세한 로펌에 들어가거나 아예 직접 사무실을 내 ‘들어오는 사건은 뭐든 한다’고 내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개 번화가의 로펌에서 맡지 않는 일이 그쪽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것은 끔찍하게 불평등한 구조였지만 현실이 그랬다.


- 세상이 변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월스트리트의 고색창연한 로펌들은 기업변호사에 가까웠고 그들은 자신이 가장 크고 선도적인 기업을 대변한다는 독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변한다’는 것은 기업이 주식과 채권을 발행할 때 그것이 연방정부의 규제에 걸리지 않게 법률과 조세관련 사무를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법정 변론을 하지 않았다. 소송은 저잣거리에서나 하는 것이지 잘나가는 사람들의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하얀 신발 (=대형)로펌은 기업간의 적대적 인수 합병과 관련된 업무에 관여하려 들지 않았다. 기업 사냥꾼이나 사모펀드 회사가 기업을 연이어 삼키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1970년대까지도 서로간의 구매협약 없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로 여겨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브롱크스와 브루클린 출신의 유태인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되는 사건은 ‘하얀 신발’로펌에서 사양하는 것들이었다. 법정 소송이 그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적대적 인수합병의 핵심을 구성하는 ‘위임장 쟁탈전’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롭게도 위임장 쟁탈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변호사들 중 누구도 조셉 플롬과 싸워 이길 수 없었다. 하얀 실반 로펌들은 그들의 기업 고객을 향해 기업 사냥꾼이 달려들 때마다 플롬을 불렀다.

그런데 1970년대가 밝아오면서 하얀 신발 로펌들이 맡았던 소송은 모두 옆으로 밀려났다. 연방정부의 규제완화로 돈을 빌리는 것이 쉬워지고 시장이 국제화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던 것이다. 이때를 틈타 투자자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갔고 더불어 기업의 인수합병 건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 분야와 관련해 돌아가는 돈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기업 합병 및 취득과 관련해 월스트리트에서 운용되는 금액은 매년 2,000퍼센트씩 늘어났으며 총액은 2,5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면 플롬의 사례가 빌 게이츠나 빌 조이의 이야기와 얼마나 유사한지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겠다는 희망 따위도 없이 앞날이 뚜렷하지 않은 분야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분야에서 그야말로 붐이 일어났고, 그들은 이미 1만 시간의 훈련을 치른 다음이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플롬 역시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가 20년간 스캐든 압스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동안 세상이 바뀌었고 그는 완벽히 준비된 상태였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똑똑한 변호사여서가 아니다. 그가 수년간 일해 오던 중 갑자기 세상이 변했고 그 친구들의 기술 가치가 대단히 높아진 것이다.

** 두 번째 교훈 : 통계학적 행운


- 유태인이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가장 좋은 시대 


- 대공황의 통계학 
앞서 얘기한 루이스 터먼의 연구는 1903~1917년에 태어난 IQ가 아주 높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결과 아이들은 진짜 성공한 그룹과 진짜 실패한 그룹으로 나뉘었으며 그 그룹은 가정환경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그리고 터먼의 연구결과를 부정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는데, 그것은 터마이트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1903~1911년 한 그룹, 1912~1917년 한 그룹. 실패한 터마이트는 후자보다 전자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의 거대한 두 재앙을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1915년에 태어났다면,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면 이미 대공황의 정점이 지나간 다음이다. 3년이나 4년 정도 징집되어 군대에 갔다 올지라도 그만큼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만큼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반면 1911년 이전에 태어난 터마이트들은 대공황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대학을 졸업했고, 당시 취업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이는 본 궤도에 오른 그들의 직업과 가정생황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이들 세대는 통계학적으로 매우 불운했다.


- 성공을 결정짓는 마법의 타이밍 
1910~1950년까지 미국의 출생률을 살펴보면, 특히 1930년대의 그래프는 ‘절구형 그래프’로 불린다. 대공황기의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하듯 사람들은 아기를 낳지 않았고, 결국 해당기간에는 현저하게 출생률이 줄어들었다.
저출산 세대의 사람들은 품질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 다음 세대의 파도가 몰아치기 이전의 평온한 기간이다. 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잘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 반겨준다. 학생당 교사 수도 많고 그들은 학생들을 받아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대학 역시 교실과 생활관 공간이 넉넉하고 구내식당에 사람이 바글거리지도 않으며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깊이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다음 직업전선에 뛰어들면 공급은 낮고 수요는 높아 즐거운 을 지르게 된다. 그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줄 거대한 인구가 뒤에서 밀려오는 중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뉴욕 최고의 법정 변호사 테드 프리드먼
“저는 시립대학이든 미시건 대학이든 아무데나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시립대학은 무료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가장 교육비가 비싼 축에 속하는 미시건 대학은 1년에 450달러였죠. 그것도 첫 해가 지난 뒤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첫해만 돈을 내면 되는 거였죠. 미시건에 들어가서 수업료 450달러를 내고 나니 돈이 조금밖에 남지 않더군요. 그래서 인근의 포드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일자리를 얻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어요. 공장은 늘 사람을 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프리드먼에게는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 스스로를 책임지려는 자세, 그리고 교육받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열심히 일하고자 했을 때 일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책임지고자 했을 때 책임질 수 있었으며, 학교에 가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에서 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955년에 태어나는 것이나 기업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835년에 태어나는 것처럼,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1930년대에 태어나는 것은 마법의 시간대를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셉 플롬의 혜성 같은 등장이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탁월한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설사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을지라도 그가 속한 세대의 한계를 극복해낼 수는 없다.


** 세 번째 교훈 :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 “여보, 이건 우리 사업이야” 

- 신세계를 압도한 독보적 기술 

-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매일 밤 루이스는 지치고 힘들었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자기 삶의 주인이었고 자신이 내린 결정과 판단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그들 부부는 늦은 시간까지 재봉틀 앞에 앉아 앞치마를 만들수록 다음날 거리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자율성, 복잡성, 그리고 노력과 결과의 연관성이야말로 잎에서 만족을 느끼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에 동의한다. 연봉으로 5만 달러를 받는 건축가와 10만 달러를 받지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평생 일해야 하는 직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건축가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은 복잡하고 자율적이며 창의적인 데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은 바로 ‘가치 있는 일’이다. 가르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의사가 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사업가가 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처음으로 키보드 앞에 앉았던 날 빌 게이츠가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비틀스 또한 매일 밤 여덟 시간씩 일주일 내내 연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엉덩이를 빼지 않았다. 그들은 기회를 향해 뛰어들었다. 일에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을 때, 힘든 일은 감옥 같은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가치가 있으면 그 일을 찾아낸 사람은 오히려 아내의 허리를 붙잡고 지그(Jig:빠른 템포의 춤)를 추게 된다.


- 가장 우아하고 인상적인 가계도
 
-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
성공은 무작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빌 조이와 빌 게이츠, 프로 하키선수들, 천재들, 그리고 조셉 플롬의 사례를 모드 짚어본 우리는 성공이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으로부터 예측 가능한 형태로 떠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완벽한 변호사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그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절구형 인구 그래프가 잘록하게 들어간 시기에 태어나 뉴욕 최고의 공립학교에 들어간 후 아주 쉽게 직업시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또한 유태인이고 출신 배경에 제동이 걸려 번화가의 대형 로펌에게 거절당했을 게 뻔하다. 이들의 부모는 자녀에게 자율성과 복잡성, 그리고 노력과 결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일, 다시 말해 의류 제작업에 종사했을 터다. 이들은 위대한 학교가 아니라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반에서 가장 똑똑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똑똑한 정도였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좀더 자세하게 예측해볼 수 있다. 19세기 산업재벌들의 출생연도처럼 뉴욕의 유태인 변호사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연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출생인구가 적은 세대의 이점을 십분 누릴 수 있는 1930년이 그렇다. 그때에 태어나면 1970년, 즉 법률계에 혁명이 벌어지는 그해에 마흔 살이 된다. 그동안 그들은 15년간의 건강한 함부르크 시절을 보낸 다음이고, 그들의 경쟁자인 화이트벅스 변호사들은 마티니 두 잔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면서 세월을 낭비했을 것이다. 위대한 뉴욕 변호사에게는 아웃사이더였던 것, 부모가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것, 그리고 1930년대 초에 태어났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 특히 충분한 양의 열정과 추진력 위에 이 세 가지 장점을 얹으면, 멈출 수 없는 화학작용이 벌어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성공이 다양한 기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가, 양육되는 과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등의 요인에 따라 누군가가 세상 속에서 얼마나 잘 해나갈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이제 제2부를 통해 우리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관습 역시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문화적 유산을 진지하게 분석함으로써 성공하는 사람이 왜 성공하는지,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2부: 유산 (Legacy)



6장 켄터키주 할란의 미스터리



 
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8장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

“1년 내내 해뜨기 전에 일어날 수 있다면 어찌 부자가 못 되리.”


- 재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쇤펠트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스스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포기하기까지 몇 분간이나 시도를 해보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대답은 30초에서 5분까지 다양했는데 평균을 내보니 2분이었다. 그러나 르네는 끈질기게 도전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주제에 반복해서 접근했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수직선 긋기에 대해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완벽하게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르네는 수학을 잘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울기나 정의되지 않는 수 같은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쇤펠트가 보기에 르네만큼 인상적인 학생은 없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납득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이 있어요. 이건 정말 드문 경웁니다.”
우리는 보통 수학을 잘하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쇤펠트는 재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도하고자 하면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쇤펠트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 벼농사 문화와 수학실력의 놀라운 상관관계
우리는 어떤 나라가 노력과 끈기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를 통해 그 나라의 수학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 그 순위의 상위권에 어떤 나라가 놓여 있을까? 그 결과는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 한국, 대만, 홍콩, 그리고 일본이다. 이 다섯 나라는 공통적으로 논에 물을 대는 쌀농사를 지어왔고, 그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들이다. 그들 나라는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농부들이 1년에 3,000시간씩 수백 년간 질척대는 논바닥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1년 내내 해뜨기 전에 일어날 수 있다면 어찌 부자가 못 되리”라고 말해온 그런 곳이다.




 
역자후기

-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가르는 그 작은 차이
『아웃라이어』는 성공에 대한 책이다.
 1부에서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흔해 빠진 최루성 신파극’이나 ‘평범한 사람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영웅들의 무용담’대신, 성공하는 사람들이 누렸던 행운과 그들이 태어난 시대적 배경, 세대 등의 요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로인해 세기의 부자인 빌 게이츠가 노력하지 않고 성공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IQ가 높다고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2부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개인은 결국 ‘사회’라는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 글래드웰은 그것을 ‘역사ㆍ문화적 유산’으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