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책을 빌려주셨다. 그런데, 그 분께 미안하지만 이 책에 주는 점수는 낮다. 일단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가끔씩 나오는 저자의 망언이다. 일단 자신이 여자의 양면성을 다루고 있으면서, 그리스에서는 성모에 견주어지는 아프로디테의 우아한 면모에 대해선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녀를 수다스럽고 뻔뻔한 아줌마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적인 종교는 맞지 않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세상 어느 천지에 있단 말인가! 그럼 반대로 동양 사람들에게 서양적인 종교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게다가 어디서 어줍잖은 동양신화의 껍데기만 줏어듣고 멋대로 변형시켜 책에 실어놓는지. 솔직히 누군가가 빌려준 책은 아무리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는다는 내 신조만 아니라면, 당장에 덮었을 책이다.
그렇다고 전반적인 내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는 프쉬케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성성(혹은 아니마)을 설명하고 있다. 역시 어려운 단어가 나왔다고 외면하지는 마시길. 좀 심하게 과장된 듯하지만 아무튼 프쉬케 이야기는 이미 책에서 실려 있고, 구스타프 융이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얇은 책 만큼이나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는 책이다. 신화가 진행되는 단계마다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설명을 제공한다. 융 심리학 이론을 채택한 듯 하지만,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개념에 살짝 발만 담그고 있다. 두껍고 상세한 심리학 책은 읽기 싫은데, 여성성을 알고 싶어서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이 책을 추천하고 싶기는 하다. 특히 여성이 남성에게 어떤 중요한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던 점에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카린 블렉센이 여성은 남자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소리를 했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프쉬케 이야기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더라. 남성들은 여성의 존재만으로 누구나 에로스가 될 수 있고, 여성들도 매우 힘들지만 일단 조이와 엑스터시를 느끼는 프쉬케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내 스스로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비를 보고 있는 에로스와 프쉬케. 프쉬케는 숨, 나비, 생명, 마음, 영혼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답고 있다.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
'이야기 Ⅱ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음의 징표' [그대, 청춘:김열규] (0) | 2011.09.07 |
---|---|
'말소리보다 뜻에 귀기울이기' [무소유:법정스님] (0) | 2011.09.07 |
[미나비리스] '유쾌한 분노, 참여의 분노, 폭력이 없는 분노'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0) | 2011.09.05 |
[소셜커머스랩]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NGO에 기회의 땅인 이유 (0) | 2011.09.04 |
[미나비리스] '환경을 지키지 못하면 인류가 손해보는 게 많다.' [자연과 생태 8월호: 자연과 생태] (0) | 2011.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