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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에 있는 글들을 다 읽은 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소설들 중에서 young goodman brown만 읽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겠다. 내용도 짧고 소재도 딱히 언급할 게 없는 만큼, 소개도 간략하게 할 예정이다. 글쎄다... 이번엔 좋은 글귀를 달지 않았다. 좋은 글귀를 달기에는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암울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다니엘 호손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여느 공포소설들에 견주어봐도 비교하기 힘들만큼 긴장감을 잘 사용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연을 광기의 측면으로만 묘사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불쌍한 숲을 다 태워서 요상한 악마주의적 잔치로 만든 건 마을의 기독교인들이지, 한밤중의 숲이나 혹은 야생동물 혹은 인디언의 짓이 아니다. 자칫하면 바쿠스의 잔치까지도 '인공적인 광기'로 오인될 수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항상 자연이나 신 탓을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불행은 우리가 자초했음을 명심해두어야 할 것이다.
일단 악마와 목사가 결탁하면, 인간들은 그 밑에 조아려서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멀게 만든다. 그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목사 밑에 있는 사람들의 목사에 대한 진술이 천차만별로 다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을 결탁시키는 데엔 비전 혹은 환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지만, 과연 설교가 성경의 올바르고 진실된 말씀에 합당한지 아니면 단지 목사의 의견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따져야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악귀나 마녀를 따르기 쉬운 입장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행실에 대한 변명을 해줄 순 없는 법이다. 우리는 어두운 숲을 해쳐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져 있다. 그러나 만일 좋은 사람 브라운을 신뢰하고 또한 브라운에게서 신뢰를 받는 동료가 있었다면 그도 쉽게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서는 브라운도 충격에 휩싸여 아내 페이트와 자신을 구하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않았고, 악마주의 제사에 참가한 사람들도 그 속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이미 중단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종교의 폐단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 또한 인간이 초래한 것을.
천국의 4대강까지 갈아엎으시려고 하는게 아닌가 몰라.
리뷰어 미나비리스(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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